190

190

여러 서문을 쓰다가 다 접었다. 어쨌거나 햄버거 한 끼 아닌가. 거두절미하고, 햄버거 이야기를 해보자.

댓 종류 이상의 햄버거가 메뉴로 올라와있는 가운데 부실한 음료의 종류, 그리고 셰이크와 아이스크림의 부재가 뼈아프다. 아, 나는 또 왜. 머뭇거렸다 하더라도 내 의지였으니 내 탓이오.

점원의 도움을 얻어 매장을 대표하는 두 가지 메뉴를 먹었다. 가격도 대표하는 값이 더해졌는지 음료를 제하고도 거진 2만원을 지출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교통비까지 꼭 2만 원이 되었으리라.

마요네즈를 곁들였다는 가지튀김은... 말할 의지가 나지 않는다. 버거로 지면을 메우고 나면 이 글은 끝날 것이다. 혹시 기다려보시라. 사천요리의 어향과 마요네즈를? 어향의 매력은?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햄버거를 베어무는 순간 모든 꿈은 산산 조각이 났다. 만 이천 몇백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접시에 담긴 샌드위치 하나의 가격 말이다. 엊그제 소중한 사람과 먹으려고 포장해갔던 맥도날드의 새 점심 세트 메뉴 두 개를 합친 가격에 필적했다. 내가 바나나맛 아이스크림을 더했으니 가격이 조금 더 얹히긴 했지만. 이 햄버거의 가격은 "무언가 보여드리겠습니다"는 메시지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패티 가게"라는 매장의 부제를 보아하니 햄버거의 주인공은 패티인가보다. 그렇다면 190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패티의 무게-맥도날드의 "쿼터 파운더"같은 작명이리라. 생각의 연쇄가 이어졌다.

햄버거에 대해 머리를 좀 굴려본 사람이라면 단번에 문제를 느낄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두꺼운 베이컨, 아니 베이컨이라 불리고픈 어떤 햄의 존재 말이다.
햄버거는 단연코 부드러운 음식이다. 지방을 한껏 더해 다진 패티가 궁극적인 주인공이다. 매장의 이름도 그러하듯이. 패티는 살이 가진 결에 따라서, 또 결과 반대 방향으로 잘리는 바람에 이음새란 이음새는 모두 갈라져 이가 가는 대로 부스러지는 물건이다. 힘을 이용해 모양을 빚고 열을 통해 이를 다시 굳힌다. 굳히는 와중에 고온에 노출된 겉면에서는 독특한 풍미도 얻을 수 있다. 일전에 다룬 「버거 파크」부터 주변에서는 「노스트레스버거」같은 곳을 자꾸 권하지 않는가. 신기할 것이 없는 경향이자 틀릴 일 없는 방향이다. 그만큼 잘 다져내고 지져낸 패티는 충분히 맛있으니까. 그런 햄버거에 왜 베이컨 따위를 더하는가?
결코 내가 베이컨이 들어간 버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니 안심하시라. 햄버거의 베이컨의 자리는 당연히 얼마든지 있다. 그 이전에 베이컨이 무엇으로서 자리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베이컨을 패티 대신 넣을 것인가? 아니면 KFC의 더블 다운처럼 빵 대신 쓸 것인가? 혹은 버거의 모양을 유지하는 끈으로 쓸 것인가?
생각건대 베이컨의 버거 내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역시 베이컨의 고유한 풍미이다. 사과나무에 훈연한 베이컨은 그 자체로 매혹적이다. <모모푸쿠>가 베이컨을 우려서 육수를 뺀다는 이야기는 이제 놀랍지 않다. 염지와 훈연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가공육은 수명에 더해 고유의 풍미가 있다. 파스타 면과 판체타를 함께 곁들이듯이, 빵 요리라면 베이컨의 풍미는 항상 더하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베이컨을 끼워넣는 것만으로는 그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 그것이 둘째 측면으로 이어지는데, 베이컨이 햄버거에서 가질 수 있는 질감은 통상 단단함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바삭함crispness인데, 일견 단단하되 이가 가는 대로 "톡"하고 끊어져야 한다. 어째서? 햄버거는 앞서 말했듯 총체적으로 부드러운 음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튀김 따위를 패티 대신으로 넣은 샌드위치 등의 예외가 있겠지만, 쇠고기 패티를 쓴다면 통상 그렇다. 덜 익은 베이컨은 쉽사리 끊기지 않아 햄버거 전체를 망친다. 기껏 기분을 내서 추가한 베이컨 토핑이 국수처럼 후루룩 빨려 나오는 기분의 불쾌함을 여러분도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느껴보셨으리라. 맛의 측면에서도 베이컨을 덜 익힐 실익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내전보다도 긴 역사를 가진 바삭함이냐 쫄깃함이냐(crispy or chewy)의 문제라지만, 햄버거에서만큼은 베이컨은 단단히 익어야 한다. 물론 현대 조리에서는 극복할 수 있지만, 덜 익힌 베이컨은 주로 더 많은 수분을 보존하고 있는데다가 마이야르 반응 또한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해 맛이 묽기 십상이다. 한껏 짭짜름하게 맛이 오른 패티와 그 패티를 덮은 치즈 따위의 강렬함을 감안하면 묽은 베이컨은 없느니 못하다.

<190>의 버거는 어떠했는가? 완전한 실패였다. 일단은 베이컨이라 부르기 어려운, 단순한 삼겹살에 가까운 고깃덩이 덕에 나는 곧바로 셀프 서비스 바에서 집기를 준비해야 했다. 칼질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접시(칼질을 감안한 요리를 담는 경우, 접시는 가장자리(rim)가 솟아오르지 않은 것이 좋다. 운동방향을 가로막기 때문. 이런 경우 날의 각도를 올리게 되고 사람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햄버거의 맛은 놀라울 정도로 놀랍지 않았다. 패티와 베이컨이 겹쳐 염도의 과포화를 일으키지 않는 대신 두 종류 모두 염도가 모자란 지경이라는 점만이 눈에 띄는 차이점이었다. 음료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였다(그래서 거른 것은 아니다-아이스크림을 제공하지 않는 곳에 대한 나의 신념의 실천이다). 삼겹살은 불필요하게 두꺼우면서 불행하게도 말랑했다. 베이컨의 결의 수직방향이 아닌, 베이컨의 결에 따라 수평방향으로, 한 입에는 상단의 지방층을 물고 마지막 입 즘 하여서는 안쪽 끝자락을 먹는 이상한 방법으로 먹을까 순간 고민마저 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얻은 베이컨의 맛은 공허였다. 염장육의 자랑스런 향도, 고혹적인 짠맛과 기름의 길티 플레져도 온데간데 없었다. 단지 어색한 삼겹살 한 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불패신화를 이어가는 삼겹살의 신화를 생각하면 이건 결코 아니올시다.

미군 진주 역사가 백년을 바라보지만 아직도 코스트코나 미군 식당(DFAC)같은 곳이 베이컨의 첨단 취급을 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어쩄거나 오스카 마이어나 커클랜드 따위의 가공해서 먹어줄 수 있는 베이컨들이 있는 이상 햄버거에 베이컨의 자리는 있다. 베이컨을 어떤 모양으로 정렬해서 햄버거에 고르게 베이컨의 맛을 흩뿌릴지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고 폭식 유튜브였던 EpicMealTime(나는 이런 부류의 매체에 대해 썩 좋지 않은 말을 이전에도 남겼다)에게서 배운 베이컨 직조법도 도전해보았다. 그야말로 쌓기 위한 방법에서 시작되었지만 아이디어만큼은 훌륭하지 않은가. 다만 손길이 조금 가기에 한가한 가정의 주방에서나 해볼만한 도전이라는 감상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들을 하는 것은 아무튼 베이컨과 빵은 도저히 놓칠 수 없는 조합이기 때문이 아닌가. 세계는 오늘도 빵 사이에서 가능성을 찾아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다. 켄지 로페즈-알트의 "완벽한 치즈버거"가 벌써 10년이 되어가는데, 이 햄버거는 놀랍게도 그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올바르지 못한 두께, 올바르지 않은 익힘, 올바르지 않은 컨셉트, 올바르지 않은 가격.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선명한 그림을 그린다. 이건 버거가 아니라 정물이다. 사진을 위해서, 혹은 바라보거나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그런 버거 말이다. 건물을 수놓은 수많은 상표들, 다시 문 앞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스티커들처럼, 시선을 붙잡았으면 거기서 이 모든 것들의 역할은 끝난다. 감히 먹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햄버거인데 패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무너진 햄버거를 썰다가 보통은 위아래로 덮여 가려져 있을 패티의 겉면을 보았는데 색이 참으로 정직하게 밝았다. 하단 온도가 176도인 맥도날드보다 살짝 더 밝은 느낌이었다(매장의 조명으로 인한 인지 오차를 감안하시라). 이렇게 구운 패티에게 어떻게 더 많은 맛을 바랄 수 있을까. 착잡했다.

  • 귀가하여 널브러져 있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이버에 검색해보았더니 홍보 업체를 쓰는걸 넘어서 직접 서포터즈라는 이름으로 블로거들을 고용하고 있지 뭔가. 진작에 알려줬더라면 서로 좋았을 것을.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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