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반점 - 기억과 추억
오늘날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제대로 된 중국집이라는 유령이. 20세기의 모든 세력들, 맛집 블로거들, 기자들, 유튜버들, 인플루언서들, 대형 커뮤니티이 (...)
유치한 농담은 그만두자, 하지만 그런 유령이 이 골목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과거 맛있었던 중국집에 대한 추억을 찾아 화상, 노포, 몇대 어쩌구 등등 제각기 키워드를 아직도 쫓고 있다. 물론 나도 종종 그 행렬에 선다. 인천, 부산, 군산 등 서울 외 지역에서 볶음밥 한 그릇, 간짜장 한 그릇을 찾아 뙤약볕을 쐬던 인파에서 여러분은 나를 목격했으리라. 사사로운 삶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지 않지만, 내게도 그런 추억이 있다. 배달하지 않고 가서 누추한 홀에서 먹어서 더 맛있었던, 어린아이에게도 한 그릇을 전부 비우고 싶게 만드는 기름 촉촉히 머금은 밥알과 훌륭한 짭조름함을 갖춘 그런 볶음밥이 말이다. 오늘날 게살이니 새우니 들이미는 번화가의 유명점들과는 달리 달걀과 파에 뻔한 소금만으로 하나의 작품이 되었던 그런 기적에 대한 기억, 나도 하나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아름다운 중국집과 반대개념이 되는 못되먹은 배달 중국집을 가르는 기준은 전적으로 각자의 기억이다. 라드로 볶아야 맛있다느니, 미리 볶아넣은 것을 쓰지 않아야 한다니 하는 것들은 아름다운 추억 속 중국집 주방의 어두운 뒷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인 경우가 많다. 차라리 올바르게 기억하려면 요리사들이 주방에서도 담배를 물고 주먹다짐이 오가던 시절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한 추론이 될 것이다. 맛과의 인과성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그 추억 속 중국집 요리(단순한 중화요리라고 부르기에는 한국적이고, 그중에서도 서민적인 것)의 편린을 간직한 식당들이 종종 있고, 그 목록에서 서울의 안동반점을 빼놓을 수 없다.
안동반점의 요리와 식사는 모두 그러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 속에서 모든 것이 환상적이었던 것은, 역시나 다소간의 왜곡이었다는 깨달음을 가지게 만들어 준다.
안동반점의 고기튀김은 적절한 두께로 잘라낸 고기를 소금과 후추에 의존해 먹는, 단순하고 파괴적인 추억의 음식이지만 이제는 이것이 중국식 튀김 요리의 이상향이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같은 분과 내에서도 '팔선' 계통 스타일처럼 고기의 진한 맛이 튀는 방향도 좋다고 생각한다(최근에 '맛이차이나'에 다시 간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잡채밥의 볶음밥은 잡채와 조미의 역할을 안분하고 있어 점잖은 와중에도 텍스처는 좋지만, 이제는 '홍명'처럼 당면은 체면치레 수준으로 비중을 줄인 잡채가 이 요리의 발전 방향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당면과 밀가루 뭉쳐 만든 각종 가공품은 현대 한국인의 주적이다.
십 년 전에도 늦게 올수록 조리의 상태가 극적으로 악화된다는 농담을 주고받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늦은 시간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냥 영업을 하지 않는 날도 많다. 결국 안동반점류의 요리는 이제 마지막을 앞둔 것일까. 근처에 위치한 '홍릉각'도 비슷한 방향으로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으니, 머지 않은 미래에 20세기 중식의 최후세대가 퇴장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라지기 전에 가봐야 한다는 FOMO를 채우기 위해서, 혹은 부풀어오른 추억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어떤 이유라도 안동반점은 갈 수 있을 때 가봐야 하고, 또 다시 가고픈 식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