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amasa Shuzo, Cosmos, 2022
오테마치의 CYCLE은 긴자 이마데야에서 아라마사를 공급받는다. 메뉴에는 두 종류밖에 올라와 있지 않지만, 재고 상황에 따라 다른 종류도 등장하곤 하는데, 그래, 지긋지긋한 그 일본술의 축복이자 저주, 아라마사에 대해 따지고 들어볼 시간이 되었다.
뭇 한국인들이 일본 곳곳을 쑤시고 다니며 "쥬욘다이 지콘 아라마사"의 주문을 외우지만 쥬욘다이와 지콘이 가지는 맥락과 아라마사가 가지는 맥락은 다르다. 굳이 나누자면 앞의 둘이 가까운 편이고 아라마사를 분리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는 단순히 아라마사가 6호 효모로 과거에 히트를 친 적 있는 "왕년의 스타"라는 점에서가 아니라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여기서 아라마사에 대한 전부를 읊어댈 수는 없으므로, 2022년 빈티지 코스모스에 대해서만 다뤄보자.
카이료신코(改良信交)는 사케 쌀의 아버지 품종이라 할 수 있는 카메노오에서 유래한 신코190호를 개량한 것으로, 육성이 원활한 타 개량종에 밀려 거의 사장되었다가 아라마사가 들고 나와 부활시킨 존재이다. 아라마사가 위치한 아키타는 높은 위도로 인해 밥 짓는 쌀에 있어서도 냉해가 주요 문제가 되는 까다로운 지역인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품종이 반드시 어떠한 특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지만, 아라마사는 특유의 제법으로 그 당위를 그려낸다.
이날은 소믈리에의 권유에 따라 정말 온갖 방법으로 이 한 병의 코스모스를 맛보았다. 첫째는 빙온 상태에서 꺼내 잠시 온도를 높인 다음 레이슈(冷酒)로, 그 다음에는 레드 와인과 유사한 상온에서의 히야자케(冷や酒), 50도~52도를 유지하며 데운 칸자케(燗酒) 그리고 이렇게 달구었던 술을 다시 차게 식힌 칸자마시(燗冷まし)의 순서로, 잔으로는 도자기 잔을 비롯해 잘토 샴페인, 리델 오크드 샤르도네, 튤립 형태의 버건디 등 여러 잔을 바꿔가며 사용했다.
일본술은 밀누룩을 사용하는 한국의 양조주와 달리 강하게 정미한 쌀으로 누룩을 빚어내는데, 그러한 누룩에서의 차이에 더해 저온숙성으로 한껏 산의 특징이 피어난 근현대식 일본술의 강점은 통상 배나 메론과 같은 캐릭터로 대표되는 과실향이라 생각한다. 주 경쟁자인 와인과 달리 껍질에서 오는 색이나 타닌 등의 특징을 가질 수 없지만, 곡류의 탄수화물이 가지는 감칠맛을 무기로 삼을 수 있다.
냉장 기술의 존재가 당연한 요즈음 일본술도 차게 마시는 것이 당연해졌지만, 와인이라는 꿈을 내려놓고 나면 술의 진정한 매력은 오히려 온도가 올랐을 때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약 50도정도의 칸자케로 마셨을 때가 가장 극적인데, 유산이나 석신산이 자극하는 발효 뉘앙스의 신맛과 살짝 무게가 있는 감기는 마우스필이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 술의 강점을 드러낸다. 칸자마시는 단맛이 좋아진 느낌은 있지만 데운 것과 비교하면 가벼운 느낌으로 조금은 비어있는 느낌을 전달한다.
잔의 경우 풀바디 와인을 위한 아주 큰 잔까지는 필요로 하지 않았는데, 일본술의 발효에 쓰는 목통인 키모토는 오크와 달리 나무의 향을 입힌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집향이 필요할 정도로 노즈가 강하게 피어오르지 않는 데 반해 온도를 잃음으로써 느껴지는 변화는 크기 때문에 원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쓰더라도 좁은 잔이 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뜨겁게 데워 마시는 경우에는 아예 쓸 수 없는 경우도 상정해야겠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좁은 화이트 잔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긴죠즈쿠리의 보급이 일본술에 향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모던 스타일의 일본술은 탄레이카라구치 시대를 지나 한 잔 고유의 만족감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입안을 닦아내고 목을 축이던 역할을 하던 음료에서 맛보는 대상으로, 식사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포부가 드러난다. 식사에 곁들이는 술이란 마땅히 그런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