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엔슈테파너 헤페바이스비어 둔켈 - 공산품의 극의
팔츠 선제후, 뷔르츠부르크 대공의 프랑코니아 강, 슈바벤의 통치자였던 호엔슈타우펜의 사자, 정점으로 바이에른 그 자체가 된 비텔스바흐 가문의 상징이 정렬된 문장은 프랑코니아의 각 지역들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래, 독일이 오죽 넓은가. 바이엔슈테판의 바이에른 문장에는 북바이에른의 사자가 없는데, 바이에른 자유국 시절 문장이기 때문인데, 벨덴즈의 사자라고 불리는 청사자는 왕국의 상징이라 빠진 것이다. 지금은 다시 복위(?)되었다. 하여간 바이에른, 프랑코니아가 오죽 넓고 깊은가. 라거의 패권 시대는 좀처럼 끝나지 않지만 밀맥주도 이제는 여러모로 즐길만한 세상이 왔다. 그렇다면 밀맥주도 이제 각론에 들어가야지. 남독일의 밀맥주중에도 흑맥주가 있다. 국산 밀맥주를 이야기하고 나니 한동안 놓고 살았던 수입 밀맥주를 물처럼 마시고 살았다.
상태가 좋은 바이엔슈테파너 맥주를 마신다면 사실 밀맥주라는 전형적인 장르에 있어 더 이상을 기대하지 않게된다. 밀맥주 특유의 바나나향과 패랭이꽃의 향도 좋지만, 익은 바나나의 진한 달콤함과 이어지는 흑맥주 특유의 몰트 가공에서 나오는 구수하게 올라온 몰트향과 캐러멜 뉘앙스가 더해지면 행복에 겨워진다. 극단적인 동물 요리부터 감자같이 향을 잘 품는 요리까지, 남독일을 대충 떠올려 만든 요리라면 어떻게든 짝이 되어준다. 본래 밀맥주는 입구가 좁고 긴 형태의 잔을 통해야만 할 것 같지만 두터운 거품층을 품어주는 형태의 잔이라면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게 통한다. 바이엔슈테판 앰버서더도 튤립 잔에 헤페바이젠을 따라마시곤 하니 너무 개의치 마시라. 물론 거품 층을 저정도로 두껍게 따르는 것은 진지한 자리에서는 고민해봐야 하겠지만,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바이엔슈테판을 마셨다.
먹자마자 입안 가득차는 풍미의 감각을 영어로는 full-bodied라고, 독일말로는 vollmundig라고 한다. 프랑코니아에서 온 맥주이니 그 동네 사투리로 하자면 voi-mundig라고 해야할까. 우리말로 비슷한 말이 튀어나오지는 않지만 이 용례를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맥주처럼 다가온다. 사과라는 단어를 몰라도 열매를 보고 연상할 수 있듯이 들이치는 풍미에 그 표현을 익힌다. 좋은 맥주는 으레 이렇다.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맛과 향이 느껴져야 한다. 바이엔슈테판의 맥주는 이취가 없을 뿐 아니라 각 공정의 이유가 선명하고 마진을 위해 지나치게 희생하지 않는다. 대규모 공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QC 문제, 즉 덜 발효된 풋사과향, 잘못 만든 밀맥주의 매콤함 따위가 없이 안긴다. 몇 번 마셔보아도 그렇다. 이런 맥주가 언제나 적은 수요로 인해 마트 구석에서 울고 있다. 홈플러스는 그나마도 치워버렸다. 밀맥주가 우리 식문화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런 이유는 내가보기에 절대 아니다. 네 캔 만원의 강자 크로넨버그의 '블랑'은 뭐 메밀로 빚었나. 모두가 예약 곤란한 식당, 예약 필수인 맥주를 찾아 헤매지만 바이엔슈테판을 대형 마트에서 사마실 수 있는 한 다 웃고 넘어갈 일이다. 세계는 넓고 기다리지 않고 붙잡기에도 즐길 시간은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