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ry Bros. & Rudd by Selbach-Oster, Mosel, Riesling Kabinett, 2019
OEM 상표라도 젤바흐-오스터가 만들었는데 2만원이라니 생각도 없었던 물건을 곧잘 집어버렸다. 뻔한 리슬링 카비넷이라고 하지만 진짜 싸구려들의 리그가 5유로 미만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13파운드(!)에 달하는 물건을 감히 싸구려로 몰아세우기는 곤란하다 하겠다.
풍성한 단맛과 입맛을 돋우는 신맛, 가벼운 과실향은 비교적 낮은 온도와 어울리면 그야말로 들이키기 좋은 음료수를 만든다. 어찌 생각하면 리슬링 카비넷이 탄산음료의 자리를 넘볼 수는 없을까? 캐러멜과 바닐라가 빚는 향이 주된 콜라와는 다르겠지만 과실향을 넘보는 사이다와 리슬링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하지만 콜라의 뻔한 짝인 햄버거와 감자튀김만 준비해보아도 이러한 짐작은 들어맞지 않는다. 탄산이 없어서, 혹은 탄닌이 적어서, 어떤 이유들이 스쳐지나가지만 편하게 마시는 음료를 두고 생각은 편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리슬링은 고추를 위시로한 매운맛이 중요한 아시아 요리 전반에 짝으로 권해지고 있는데 과연 이 경우는 어떠한가? 고추를 이용한다고 해도 그 맥락은 아시아 안에서 천차만별이다. 광동 요리의 고추가 한국 요리와 다르며, 태국 요리는 또 다르다. 고추장부터 두반장, 삼발, 남 프릭까지 하나의 와인으로 관통할 수 있다고 하면 지나치게 무례한 일 아닐까? 와인 짝짓기가 기본적으로는 맛(taste)의 흠을 메우고 좋은 점을 빛내는 것부터 시작하지만 오늘날 맛(flavor)을 단위로 한 짝짓기 역시 결코 낯설지 않은 상황에서, 아시아 요리에 대해서는 그러한 기회가 지나치게 적게 주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여기에 또 아시아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간장이나 어장 등의 프로필을 추가로 고려하면 술과 함께 상을 차리기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마트에서 소비자가 마주하는 현실은 어떤가. 레드는 보르도 클라렛 모방품인 신대륙 카베르네 소비뇽 일변도. 화이트는 이런 편한 술 아니면 발포주.
먹거리 문화의 지혜를 위해서는 때때로 탑-다운 방식이 도움이 된다. 수 비드가 유럽 가스트로노미의 가장 큰 승리임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카렘과 에스코피에가 정립해둔 레시피들은 각종 공산품에서, 또 가정의 주방에서 그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제 "퓨전"을 넘어 "모던 한식"이라는 수식어도 어느새 잊히고 서울에 먹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미쉐린 가이드의 별을 먹어본 일을 자랑하곤 한다. 그 어느 곳에 새로운 지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식당들은 으레 전통주 페어링 따위를 갖추었지만 과연 한식 먹는 사람으로서 기억에 남는 배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