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칼리노 - 셰프가 바라보는 지금

여느 날 포 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간단히 요기를 할 요량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보칼리노에서 바바를 먹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낮의 코스에서는 디저트로 제공이 되고 있지 않고 알라카르트로 주문해야 하는데 그러한 의지를 왜 만들지 않았을까. 그 의지가 불타올라 일부러 점심 식사의 자리를 만들었다.

포 시즌스 호텔 서울이 오픈하던 때 공간의 레스토랑을 설계할 때는 광동식 중국 요리와 이탈리아 요리, 그리고 스시 바를 준비했었다. 그러나 광동식 레스토랑은 북경 오리 레스토랑이 되었으며 스시 바는 「아키라 백」이 되었다. 이는 포 시즌스의 오판이었을까? 아니면 거꾸로 말해 적절한 판단이었을까? 의지만 있다면 홍콩에서 「스시 사이토」같은걸 운영하는 포 시즌스가 서울의 F&B, 나아가 문화적 역량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게 느껴진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TRUFFLE AND POTATO SOUP / 트러플 감자 수프, 호박, 표고버섯, 블랙 트러플 쉐이빙

수프는 세이지가 아닌 파슬리 오일을 곁들였다는 멘트가 따라붙지만 곧바로 고전적인 감자 수프를 떠올리게 만든다. 감자와 트러플, 흙속에 숨은 두 진주는 식탁 위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대우를 받지만, 요리에서는 아름답게 어울린다. 우리에게는 가을이라 불리지만 따사로운 지중해의 눈으로는 너무나도 차가운 우리의 가을에 바치는 주방의 헌사다.
그렇다면 때에 맞춰 고전적인 이탈리아의 레시피를 내놓았다. 그게 주제라면 해석은 무엇인가, 즉, 셰프를 읽을 수 있는 지점은? 첫째로는 질감이다. 전분을 이용한 수프라고 생각하기에는 점도가 아슬아슬한 가운데, 어떤 형태의 증점제(현대 요리 재료부터 크림까지)를 더하지 않은 것은 식전이라는 역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입안을 촉촉히 적시지만 지방이 더해줄 무게가 모자라다는 인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감자의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는 현실에서 감자를 주인공으로 내모는 대신 조명은 다른 곳을 향한다. 트러플의 향? 아니, 절묘하게 주사위로 썰린 야채와 표고버섯이었다. 브루누아즈라 부를 만큼 세심한 크기는 아니었던 듯 하지만, 고체로서 형태를 유지하되 자르는 이가 아닌 뭉개는 이로 씹는 순간 표고가 풍기는 고유의 향과 감칠맛이 우리 정서속 겨울의 맛을 떠올리게 한다. 시간차를 두고 이태리 북부의 겨울과 서울의 가을이 잠시나마 교차한다.
허브를 오일 형태로 냄으로서 서로 다른 버섯이나, 야채의 단맛이 접시에서 튀어나가는 것을 막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릇을 박박 긁어 먹기에는 역시 경험의 일체감이 모자란데, 마치 한국의 현실을 탓하는 기분이었다. 쓰고 싶을 정도로 좋은 크림이나 매혹적인 농도를 지닌 야채같은건 없잖아요. 게다가 사람들은 수프에 관심이 없는 걸. 당신도 알잖아. 감자가 무언가를 비추어야 하는데 고민 끝에 표고버섯을 그렸다. 사르데냐의 전형적인 궁합으로 메르카 치즈를 그리기에는 재료가 없으며 점도를 높여 기본 재료들을 주인공으로 삼자니 정서에 거스른다. 그 속에서 셰프가 비치는 장소는 바로 땅이었고, 그 답은 틀리지 않았지만, 야채가 맛이 옅은 만큼 나머지도 뿌옇게 만든다는 설정은 동의하기 힘들었다.

SODA BOCCALINO
SPAGHETTINI, ”BAGNA CAUDA” / 스파게티니, 바냐카우다 소스, 마늘, 엔초비, 새우와 조개

잔반 바냐 카우다를 해치우기에 딱 좋은 레시피로, 이태리의 유튜브 스타 셰프가 소개하기도 했던 바냐 카우다 스파게티는 앞선 감자 스프에서 찾지 못한, 바로 기대하는 모습이 있었다. 호두 대신 헤이즐넛이라는 선택마저 존재하는 레시피의 합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가운데 파스타는 그야말로 완성되었다. 앤초비가 전하는 강렬한 짠맛이 유지방의 풍미와 앤초비의 감칠맛을 춤추게 한다. 절묘하게 익은 스파게티 면은 소스를 위한 매개체 역할을 넘어선 또 하나의 주제다. 셰프를 그려내지 않는 방식으로 그의 손길은 가장 투명하게 드러난다. 일상의 완성,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한다는 것의 아름다움. 어떤 맛도 타협하지 않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BABÀ BRIOCHE / 밤 크림과 럼에 적신 바바, 카시스 마멀레이드

밤과 바바라는 두 주제를 버무린 디저트는 오늘 식사의 목적과도 같았다. "럼에 적신 바바"와 밤 크림을 어우르기 위해 카시스를 곁들인다. 앞서 짚은 적 있는 맥락 가운데 바바가 가세했으니 한층 더 복잡한 시도에 감격할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뀐다. 럼과 바바 반죽의 궁합의 질감은 여전히 잘 살렸으되, 고동하는 심장부인 럼의 향이 없었다. 럼이 없었기 때문에 럼 향이 나지 않은 것이다. 사탕수수와 나무통이 빚어내는 치명적인 향은 어디에 갔는가. 그 자리를 매꾼 요소들은 적절하게 빛나지 못했다. 카시스의 신맛은 풍성하지만 신맛이 단맛이 될 수는 없고, 카시스의 향은 럼의 향이 될 수 없다. 사탕수수의 발효로 얻는 과하게 익은 열대 과일이나 야생동물과 같은 정제되지 않은 풍미, 럼의 훵키(Funky)한 향은 바라지도 않는다. 기성 럼이 가진 분할 정도의 단맛과 캐러멜, 그리고 바닐라! 우리는 그것을 원한다. 그러나 이 바바에서는 아예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카시스의 향이 적절히 배어있을 뿐, 럼이 나쁘고 좋고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다. 가사 존재하더라도 내 지각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만큼의 비중이다.

서울에서 럼은 여전히 가격부터 황당하므로 일반적인 주방에서는 두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포 시즌스정도의 격을 가진 주방이라면 쓰는데 가격으로 주저해서는 안된다. 적당히 타협이라도 하자고 하면 몰라도 럼을 제외한다는 것은 굉장히 의아한 결정이다. 아예 바바를 하지 않으면 몰라도 바바와 럼이라는 맥락을 제시한 다음 놓아버릴 정도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요리를 만들었을까? 밀도감이 높지만 적신 질감에 따라서 즐기기 무난한 빵, 다양한 맛을 어우를 수 있도록 한껏 풍성한 지방을 머금고 달지 않게 준비된 크림을 보면 어떠한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완성도를 갖췄다. 바바가 단맛을 더하고 카시스의 신맛이 보좌하는 가운데 향들이 피어오른다. 그러나 그 향의 자리가 비어있다. 이것 또한 하나의 맛의 주제인걸까? "이 도시에서 디저트를 할 때 럼은 도저히 쓸 수가 없는 현실"이 바바의 본명일까.

GELATI

이런 아이스크림에서마저 질감의 대비, 향의 밀도와 다양함이 주는 행복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바에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이탈리아 음식이 가져야 할 보편적인 맛있음이 셰프의 머리에, 주방의 손에 배어있는데 그것이 묻어나는 정도는 요리마다 일정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제는 썩 오랜 세월을 서울에서 버텨온 보칼리노는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으로 이탈리아 중북부의 전통을 크게 수정하지 않고 계승하는 방식을 택했다. 개별 재료에 대한 인상을 재조명한다거나 화학적 변화를 극단적인 방향으로 몰고가는 등 흔히 현대적인 요리의 영역에 크게 발을 들이지 않는다. 현대 요리의 기법이 전통적인 결과물을 내기 위해 쓰인다. 그럼에도 결과물이 일정하게 좋지 않다면 이는 곧 위기이다. 위기의 이유는 알 만하다. "바냐 카우다"같은 요리는 주문 전에 스탭이 경고를 하고 식사 도중 체크를 복수 회수로 들어온다. 바냐 카우다가 겪었을 무수한 민원들이 떠오른다. 하필 스파게티 면을 썼으니 오죽했으랴. 거기에 더해 홀을 지키는 직원들은 결코 호텔업에 오래 종사하지 않은 것이 보인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의 나이가 곧 경력을 말해주고 있기에... 바바의 럼향을 앗아간 도둑은 서울 도심 곳곳에 잠복하고 있는 듯 하다.

  • 저는 보칼리노에서 개인적인 자격의 할인 프로그램이 적용된 가격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