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칼리노 - 2022년 여름 단품

황당하게도 7월 말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보칼리노의 여름 메뉴는 전부가 나오지 않았었는데, 보통 Fiscal year처럼 거의 정해진 때에 정해진 행동을 하는 기업의 주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적어도 원하는 결과는 아니리라고 믿는다. 그래도 큰 얼개는 보여줄 정도로 요리들이 나온 상황이므로 이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볼 수 있다.

방문 전

보칼리노의 예약은 자체 웹사이트와 전화를 통해 가능하다. 예약 관리 시스템으로 테이블체크를 사용하고 있으며, 예약 여부는 프로그램의 문자 알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방문 전 한 번의 확인 전화가 있으며 당일에는 확인 전화가 없다.

요리

이전 보칼리노 리뷰 이후 소비자들에게 가장 크게 느껴질 변화가 있었다면 바로 이 <식전빵>의 제공 횟수에 제한이 생겼다는 점이다. 식전빵이 미우니까 잘됐다, 그래도 호스피탈리티가 중요한데 아쉽다 이런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실 자체가 이 장소가 소비되는 현실적 맥락을 탄로하고 있다. 하여간 피자 반죽으로 만든 임기응변에 가깝고 완전히 제대로 된 레스토랑이 되기 위해서는 기반이 될 빵이 새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피자 화덕이 공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설비 문제, 그 덕에 항상 메뉴에 몇 가지 피자가 있어야되는 문제로 이런 어정쩡한 상태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레퍼토리의 반복인 아뮤즈에 대해서도 한 마디 보태자. 벨리니 칵테일은 그야말로 레퍼토리였다 치더라도 초당 옥수수 같은게 올라오는 일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있다. 초당 옥수수, 샤인 머스캣, 애플 망고... 익숙함과 낯섦 사이를 파고드는 이런 움직임들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지나치게 한결같다. 하나 보탤 필요까지는 없는데.

Crudo di tonno, malonese di bottarga, lime

기존 메뉴에 있던 요리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여름 매뉴로 나온 요리들에 대해서만 다루겠다. 본래는 우설 요리까지 세 종류를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한 점은 양해를 구한다.

아예 크루도 섹션을 차린 메뉴가 못내 반가웠는데, 타지에서 온 셰프가 낯설어할만한 영역인 생선 중 세계적인 유통망 내에 있는 참치를 선택한 것은 현명한 처사였다. 이 요리는 요리사가 맛을 설계하는 방식을 아주 전형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명과 암이 뚜렷이 살아있었다. 잘 무른 다랑어 적신은 과하지 않은 치감을 더하면서도 날것의 찌르는 맛이 없어 훌륭한 바탕으로 기능하고, 그 위에서 살짝 씁쓸한 노트가 있는 라임의 신맛, 마요네즈의 지방과 짠맛과 소금의 짠맛이 이어진다. 사족 느낌의 샬롯을 제외하면 이러한 맛들은 굉장히 잘 정렬된 모습을 보이는데, 각각 맛을 담은 매개의 점도의 차이가 확연한데 기인한다.

크루도, 혹은 좋은 요리로서는 어떤가? 크루도는 기본적으로 산을 통한 단백질 조리, 식초나 올리브 오일 등 점도 낮은 액체가 가진 맛에 기대는 것을 골자로 하는 요리로 보는데 마르코의 크루도는 조리된 단백질의 질감을 구현하는 데는 성공적이었으나 지방과 감칠맛을 더해 놀라움을 주려는 시도는 중간에 부러진 느낌이었다. 좋게 말하면 굉장히 논리적이었지만, 다르게 말해 업스케일 레스토랑에서 보여주어야 할 예상 외의 지점은 없었다. 어란 맛의 농도가 어떤 이유에서건 높지 못했기 때문에 맛의 중심은 보타르가로 완전히 이동하지 않았으며, 라임으로 기존의 레몬즙과 올리브 오일을 대체하는 아이디어는 흥미로운 것이기는 하나 실행에 있어 충분한 설득력을 보여주는 지점은 없었다.

Pappardelle ripiena di ricotta ed erbe, salsa al piselli, burrata

녹차, 완두콩, 시금치를 한데 엮어만든 파파르델레 파스타는 마르코의 보칼리노가 추구하는 요리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요리라 할 수 있는데, 시금치 리코타spinaci e ricotta같은 라치오 윗쪽의 맛, 역시 북부식의 파파르델레 파스타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완두콩으로 그의 주무대인 시칠리아와의 연결고리를 잇는다. 여기에 녹차까지 녹일색의 역만을 표현한 것은 상당히 과하다는 생각이 있었는데(보라-면조차도 녹색빛이다) 요리의 맛은 의외로 과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속을 채운 파파르델레(pappardelle ripiene)를 바탕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면서도 콩과 부라타의 지방이 서로 나름의 고소함을 더해주어 요리는 상당히 그럴싸한 맛으로 다가온다. 녹차의 덕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썩 당기는 맛이 있으면서도 소스에 흠뻑 젖으면 떫은 맛을 포함한 푸르름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라 마치 여름이 아닌 봄 요리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파파르델레의 속이 굉장히 잘 다져져 있어 전체의 맥락을 해치지 않는 바탕으로 기능하는 점은 썩 인상적이었는데, 두부를 넣는 아시아식 스터핑-만두소가 떠올랐다. 라비올리 등에 쓰이는 레시피를 크게 개량하지 않았을 텐데도 큰 용량에서 조리의 흠결이 없었다는 점은 굳이 주목해도 좋을 지점.

  • 디저트는 계속 그대로이므로 굳이 다루지 않겠다.

총평: 마르코의 새 보칼리노는 노선을 확실히 정했다. 기본적으로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 요리를 큰 컨셉으로 가져가되, 바탕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은 형식의 요리들을 가져가면서도 맛의 특정 단계에 일반적이지 않은 맥락을 개입시켜 특정 지역이 아닌 추상적인 인상의 이탈리아 반도풍을 느끼도록 만든다. 여러 나라에서 "이 나라에서 생각하는 이탈리안"을 접해본 요리사의 경험이 묻어나는데, 에 보였던 요리들에 비해 노선을 더욱 확실히 정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다만 이러한 유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정도 이상으로 정교함이 요구되는데, 프레젠테이션이나 질감의 선택 등은 완전히 자유로워보이지 않는다. 정해진 가격대와 정해진 운영 방식 속의 새로운 지혜가 필요하다.

서비스: 직원들의 숙련도가 고르지 않은 점은 여전히 포 시즌스를 비롯한 한국 호텔들의 큰 취약점이지만 COVID-19가 한창이던 시절에 비하면 굉장히 보강되었다.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포 시즌스가 제안하는 평균적인 호스피탈리티를 만날 수 있는 정도. 굉장히 고무적이다.

가격: 단품 메뉴 약 4만원부터. 이날 식대는 음료 포함 인당 KRW 120000 근처였다.

음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