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tshaus - 2023년 겨울

전설적인 독일 셰프 디터 뮐러(Dieter Müller)가 이끌었던 레스토랑 디터 뮐러의 3스타 시절 수셰프이자 그의 직접적인 후계자였던 닐스 헨켈이지만 정작 그는 지금 굉장히 저렴하고 편안한 요리를 하고 있다. 레어바흐에서의 계약 만료 이후 새 둥지에서 다시 2스타를 따냈던 그이지만 COVID-19 판데믹으로 인해 다시 새 주방을 찾아야만 했는데, 그를 품은 곳은 여느 럭셔리 호텔이 아닌 뤼데스하임 페리로 유명한 빙엔의 파파 라인 호텔이었다. 한때 고미요의 '올해의 셰프'에 뽑히고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2스타를 따기도 했던 그는 지금 59유로짜리 저녁 식사를 만들고 있다.

방문 전에

부트하우스의 예약은 이메일과 전화, 온라인 모든 방식으로 가능하며 본인의 경우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진행하였다. 예약 확인 안내 메일이 있지만 별도의 확인 전화는 없다.

요리

이날 식사는 모두 알라카르트로 구성하였다.

무언가와 함께 치대어 가벼운 질감과 신맛이 발효된 크림에 가깝게 느껴지게 만드는 버터와 두 종류의 빵부터 기대를 가지게 만드는데, 특히 빵이 그렇다. 빵 껍질이 제 노릇을 하는 빵과 신맛이 입맛을 당기는 버터로 식사 전에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한 입 먹고 나서 그렇게 할 걸 하는 후회를 들게 만든다.

Boothaus Fischsuppe, à la bourride

부리드풍으로 냈지만 걸쭉함도, 아이올리도 없이 낸 생선 스프인데 그 감격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껍데기도 제거하지 않은 소박함, 혹은 투박함이 돋보이지만 맛이 가지는 두께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흰살생선이 선보이는 지방부터 패류와 야채에서 뽑아낸 맛이 겹겹이 쌓여있는 스프 국물에 빠져들 것 같은 매력이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낼 수 있는 요리에서 더 바랄 게 없는 완성도였다.

Zanderfilet

비슷하게 부이야베스풍인 생선 요리가 있지만 중복을 피하기 위해 라인 강의 민물고기인 잔더를 선택했는데 부리드에서는 전형적인 수법이 빛났다면 잔더 요리에서는 전위성이 빛났다. 본래 부드럽지만 생명력이 강한 맛으로 홀랜다이즈와 같은 소스를 매치하는게 일반이고 알자스부터 바이에른까지 독일 문화권 전반에서는 화이트 와인을 기반으로 한 소스를 내는 방식도 쉬이 찾아볼 수 있다. 헨켈 셰프는 이걸 레드와인을 쓰는 방식으로 비틀어냈다. 레드와인의 탄닌은 파니에렌panieren, 즉 슈니첼과 같이 튀기듯 구운 송아지 머리를 얹어 잡아낸다. 부드러운 감촉이 뼈까지 제거하고 뇌와 살코기만으로 빚은 느낌인데 바싹하게 잘 구워낸 잔더 껍질과 튀김옷의 바삭함에서 다시 송아지로 넘어가는 질감의 가락이 가히 아름다웠다. 보리 리조토마저도 허브로 고양감을 이끌어내니 두 접시에서 이미 라인 강의 전부를 맛보았다고 생각했다.

gerösteter Schweinebauch

그리고 천천히 익힌 삼겹살에서는 다시 한 번 K.O. 당했다. 삼겹살 부위를 각 켜가 갈라질 정도로 철저하게 저온에 익힌 뒤 리버스 시어링과 유사하게 껍질의 촉감을 마지막에 완성하는 방식인데, 지방은 잘 녹아서 다양한 사료를 먹고 자란 돼지의 즐거운 향을 더하는 와중에 완성은 먹물로 낸 소스가 맡는다. 오징어 뉘앙스의 짠맛과 돼지 지방의 호흡은 고추장이나 양파의 개입 없이도 마리아주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듯 하다.

전체적인 짠맛과 지방, 맛과 매개의 균형감각이 더할 나위 없는 지점에 이르른 와중에 오징어 내장과 콩으로 화룡점정까지 찍으니 생각지 못한 재미까지 더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Tagesdessert: Gläschen auf schwarze Johannisbeere

굳이 부드러운 아랫배라고 칭할 지점이 있다면 디저트인데 호텔 특성 상 제과제빵 주방이 넉넉하지 않은 듯 보이는 디저트였다. 초콜릿과 블랙커런트에 재밌는 소르베를 얹었지만 요리에서 보여주는 균형감각과는 거리가 있는 물건이었다.


총평: 수백 유로의 가격과 미쉐린 스타에 빛나는 화려한 무대를 떠나 하이킹과 낚시를 즐기는 한가한 고객들이 찾는 조용한 레스토랑으로 적을 옮겼지만 닐스 헨켈의 요리는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적절할 정도로 훌륭했다. 디터 뮐러부터 이어지는 아시아 요리에 대한 동경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호텔의 컨셉에 맞춰 남프랑스부터 독일 서부까지 전원적인 풍경을 선보이면서도 이름값에 걸맞는 완성도, 그리고 식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반짝이는 아이디어까지 갖추고 있다. 라인 강에서 와인으로만 배를 채울 작정이 아니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좋은 요리를 한다. 라인 강과 언덕의 포도밭을 볼 수 있는 훌륭한 경치가 있지만 음식 맛 때문에 쳐다볼 새가 없을 지경이다!

분위기: 개방감이 좋지만 다소 간격이 좁은 공간, 나무와 강이 만들어내는 여유로움

서비스: 최선을 다하는 티가 역력하나 애초에 높은 수준을 설정하지 않은 서비스 레벨. 직원들은 요리의 디테일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 않으며 그나마도 독일어로 대화가 가능해야 정확한 전달이 가능하다. 이외의 일반적인 서비스는 영어로도 해결 가능한 수준.

음료: 철저한 지역 와인 위주. 독일도 아닌 뤼데스하임 근방 수준의 상당한 집착을 보여준다. 예외적인 생산자가 몇 있기는 하지만 장단에 어울리는게 도리가 아닐까. 라인의 화이트는 전형적인 리슬링이지만 레드는 재미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가격: 3코스 메뉴 59유로. 단품으로 구성할 경우에도 글라스 와인 포함 100유로를 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