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렛 피자 - 2020년 가을

이 글을 쓰는 날에도 피자를 먹었다. 피자, 이름만으로도 우리를 흥분케 하는 존재이다. 우리말로 밀가루로 쑨 요리를 빵과 국수로 나눌 수 있다면 빵을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로 불러주어도 손색이 없다. 산간벽지에서마저 만날 수 있는 빵요리가 있다면 피자이고, 이 문화권에서 가장 부유한 공간에서도 여전히 굶주리는 게 있다면 피자이다. 피자 이야기를 해보자.

방문 전

예약이 가능하지만 워크인도 가능하다. 예약은 구두로 가능하며 별도의 시스템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요리

브렛 피자는 전채Antipasti와 피자, 그리고 파스타와 디저트를 제공하며 이 날은 전채와 파스타를 생략하고 피자만 두 종류를 맛보았다.

화이트 클램 파이 / White clam pie

브렛 피자를 다시 찾고 또 다시 찾는 이유는 역시 이 땅의 재료들을 해석하는 피자를 내기 때문이며, 그와 동시에 세계의 피자를 가장 자유롭게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흰색 조개 파이 피자는 위키피디아에 항목도 있지만 한국어로 검색해서 찾아내 맛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자하> 시절에는 가리비를 쓰기도 했는데, 2019 A/W에 돌아온 시점부터 피자의 핵심이 되는 조개가 국산의 것으로 바뀌었으며, 이 뿐 아니라 사실 거의 브렛 피자식의 변주에 가깝다. 첫째로 이 피자는 파이가 아니고, 피자이다. 한껏 뿌려진 치즈는 한국에서 피자의 정체성을, 비교적 듬성한 듯한 구성은 "빵을 맛보라"는 나폴리 어른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듯 하다.

원형에 대해서 짧게라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레퍼런스가 되는 원본은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어떻게 말하면 미국식 피자에 대한 반동으로서 인기를 얻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아무리 이름이 나폴리식 피자 가게를 표방하더라도, 풍요로운 신대륙에서 이탈리아 남부의 요리는 매우 다르게 발전했다. 지중해의 올리브유와 토마토같은 과실들의 역할이 제한되고 소고기나 흰 치즈와 같은 풍성한 지방질들이 담긴 이탈리아 요리가 남, 북을 가리지 않고 아메리카 대륙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피자를 미국식이라고 부르면 한껏 짠맛과 지방의 두께가 실린 물건이 생각나는 이유이다. 지역마다 다른 환경에 요리를 적응하는 법이다. 그러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러한 내러티르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프랭크 페페는 그런 사람이었다. 로드 아일랜드 근해에서 잡히는 조개들은 지중해의 요리를 먹고 자란 피자 요리사를 사로잡았고, 곧 작은 요리를 넘어 피자에도 오르게 되었다. 조개를 먹는 방법대로 올리브 기름과 오레가노, 페코리노 치즈가 둘러지며 그 섬세한 향을 가리는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 소스는 내쳐졌다. 묵직하고 기름진 미국식 피자 사이에서, 교외 한 켠의 빛나는 새로운 나폴리식 피자가 생긴 순간이다.

반죽의 맛이 강조되는 브렛 피자 특유의 빵과 모짜렐라 위에 이러한 영감을 얹으므로 맛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흔히 시장에서 칼조개라고 불리는 조개를 선택해, 대서양의 모방이 아닌 존중만을 담는다. 고온에 빠르게 익히는 방식을 택해 겉은 충분히 구워진 고소한 풍미를 풍기며, 빵을 씹는 이 사이에서는 빵 반죽이 주는 맛이 충분히 살아난다. 페코리노 로마노 특유의 짠맛을 중심으로 하는 맛의 균형이 나쁘지 않다. 다만 요리로서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조개를 비롯한 지중해의 감각을 맛본다는 "클램 파이"의 맛보다 여전히 피자라는 요리의 형식미가 크게 잔존한다. 물론 이러한 맛은 다른 것이지 결코 "정통 클램 파이가 아니니 틀렸다" 따위의 주장으로 일축할 수는 없다. 치즈의 맛과, 그를 따르는 빵의 풍성한 맛은 좋았다. 다만 고온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틴 조개의 풍경은 쉽사리 혀 위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특별한 가공을 거치지 않고 올린 조개는 압도하는 풍미들 사이에서 지중해 요리의 감각을 재현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렇다면 이 요리에 담긴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바다의 조개는 번뜩이는 주인공은 되지 못하는 듯 했다.

브랑다드 / Brandade

브렛 피자를 가장 잘 보여주는 피자는 역시 이 피자라고 할 수 밖에는 없다. 마르게리타만을 피자로 인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문 앞에서 사람보다 먼저 객과 마주치는 여러 책들을 보면 브렛 피자의 맛은 브랑다드다.

감자와 흰살 생선, 우유로 이루어진 이름처럼 그야말로 피자에 두터운 무게감에 어울리는 압도적인 지방과 부드러운 풍미가 입안을 가득 감싼다. 사프란이나 트러플과 같은 호화로운 향들이 오르는 맥락은 전형적이지만 아름답게 어울린다. 무게감이 가득하지만 중성적인 맛을 가진 만큼 고혹적인 향신료들의 무대로 더할 나위가 없다. 레스팅의 여유를 만족스럽게 거친 만큼 대화를 멈추고 동그란 판 안에 빠져들어도 좋다.

피클 / pickle
Teuta Ulisse, "Sogno di Ulisse", Montepulciano d'Abruzzo (Vintage Undisclosed)

두터운 탄닌을 두른 젊은 몬테풀치아노는 그만큼 강렬한 브렛 피자의 요리와 두루두루 훌륭히 어울린다.

티라미수 / tiramisu

사진이 당황스러운 티가 나는데 지나치게 젖어, 액체 상태에 가까운 질감의 티라미수였다. 티라미수라는 디저트를 부드러움과 단맛에 치중한 요리로 본 것일까, 커스터드를 마시는 듯한 질감 속에 나머지도 모두 비슷한 정도로 맞추어져 있었다. 단 맛이 쉬이 입을 적시고, 술이나 향신료의 손길이 스치듯 지나간다.

현재 한국의 이탈리아를 표방하는 곳들이 가장 취약한 지점이 역시 디저트다. 열에 예닐곱은 이 티라미수를 벗어나지 않는다. 티라미수를 미워하지 않지만 티라미수만 있는 현실은 아프다. 그러다보니 티라미수가 신묘하게 변한다. 마치 아이스크림을 꿈꾸듯이, 전체가 젖어서 사보이아르디라는 쿠키가 고체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주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향을 내는 재료가 풍성해 과연 탐스러운 디저트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단맛 이외의 맛들이 살아남지 못하니 여운을 끊는 역할을 온전하게는 수행할 수 없었다.


총평: 피자를 왜 먹는가. 아래의 탄수화물을 무대로 위를 맛본다. 앞서 살폈듯 장소에 따라 올라가는 맛도, 또 양자 중 무게를 두는 곳도 다르다. 그 속에서 브렛 피자는 견실하면서도 자유로운 피자를 만든다. 브렛 피자의 정체성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피자 도우는 그들의 자랑이다. 나폴리의 알다가도 모를 9일~2주짜리 훈련만이 마치 나폴리식 피자의 유일한 기준처럼 우뚝 선 이 도시에서, 타지 않고 고소한 맛만을 머금은 도우의 맛은 피자의 다른 가능성의 존재를 홀로 지키고 있다. 빵을 맛보기 위해 다시 찾아도 후회하지 않는다. 이 땅과 바다에서 맛볼 거리들을 활용하는 솜씨도 발군이다.

브렛 피자는 스스로만의 피자를 펼칠 솜씨가 있고 또 그것을 한다는 점에서 여느 피제리아보다 한 단계 높은 공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에 어울리는 색의 매력을 갖췄으며, 특유의 고온의 화덕에서만 이끌어낼 수 있는 피자 맛의 기본이 되는 빵과 치즈의 궁합의 즐거움을 꿰고 있다. 그 위에 위대한 요리사들의 유산을 적절한 방식으로 소개하는 일이 현재는 브렛 피자의 대부분의 요리의 기초가 되고 있는데, 다양한 지혜를 빌리고 있으나 재현과 재창작의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빵과 그 위 재료의 조화에 대한 고민이 깊은 가운데, 현실 속의 치즈나 고객과 같은 사정 때문인지 필요한 마지막 발자국을 떼지 못하고 있는 점은 나를 슬프게 한다. 그의 가능성이 만개하는 때를 재차 기다려볼 가치가 있다.

분위기: 반지하 공간에 음향은 객간의 대화에 개입하지 않는 수준이다. 카운터 좌석과 테이블에서 느끼는 경험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어느 쪽도 경쾌한 대화에 더 어울린다. 과음하는 객이 잘 없다는 점은 이 지역에서 큰 가점요소.

서비스:

가격: 피자 한 판에 최대 KRW 29000, 기타 요리들도 KRW 20000 안쪽. 여러 사람이 방문할 경우 인당 KRW 30000 안팎에서 무난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음료: 페일 에일을 위시로 한 맥주 목록이 눈에 띈다. 와인은 필수적인 정도로 구비되어 있지만 보편적인 구분 가운데 대중적이고 또 모난 데 없는 것들이 필요한 자리를 채우는 데 만족해야 한다. 식사 간의 클렌져나 식후주로 증류주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도 강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