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렛피자 - 언이탈리안
원래도 한국 사람들은 이탈리아 요리에 친밀감을 느꼈지만, 근래에는 진짜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진 것을 느낀다. 교과서에도 국물 이야기가 실려있는 한민족의 얼을 담은 깊은 접시의 흥건한 파스타와 토핑의 양 많음으로 경쟁하는 한상차림식 피자에서 베수비오 화산을 파내어 만든 화덕에 천주교 성당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의 조리사들이 구워주는 피자와 꾸덕한 생면 파스타의 시대가 열렸다.
나는 이탈리아 요리와 이탈리아 사람, 이탈리아 사람이 하는 이탈리아 요리를 모두 사랑하지만 이탈리아 요리의 절대적 기준이 이탈리아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느낀다. 아니, 된다고 하면 어떨 것인가? 이탈리아 반도 사람들의 기준은 얼마나 다채로운가? 밀라노의 루이지, 시칠리아의 베아트리체의 기준은 같은가? 그렇지만 우리는 외지인으로서 현지인의 꿈을 꾼다.
브렛피자의 라구 블루멘탈은 이러한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요리라는 점에서 나를 매혹한다. 먼저, 당연히 독자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라구 알라 볼로네제를 끼얹은 스파게티는 좁은 의미의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다. 볼로냐가 위치한 북부는 만두 형태를 띈 파스타나 달걀이 들어간 넓은 면의 관습을 가진 곳으로 중남부의 스파게티와 쇠고기를 뭉근히 끓인 라구는 친하지 않다. 이러한 조합이 일반화된 장소는 이탈리아가 아닌 영국으로, 이후 미국에서는 이른바 미트소스 스파게티,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는 스팍볼(Spag Bol)같은 이름으로 퍼져나간 영어권의 이탈리아 요리이다. 엄밀하게 말해, 이 요리는 이중국적자인 셈이다. 한국식 중화 요리가 중국의 조리법에 기반하고 있지만 중국의 것이 아니듯, 스파게티 볼로네제 또한 개별 요소가 모두 이탈리아의 것이지만 이탈리아의 요리가 아니다.
브렛피자의 스파게티는 여기에서 더 나아간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름부터 갈퀴가 긴 포크로 말아내어 또아리를 튼 다음 라구를 얹어내는 프레젠테이션까지 명백한 헤스턴 블루멘탈에 대한 레퍼런스를 드러내지만, 그의 취향은 헤스턴은 물론 이탈리아와도 단절한다. 라구라는 조리법을 내보이지만 헤스턴이 이 완벽한(그가 직접 붙인 명칭이다) 스파게티를 만들 때 오래 끓인 라구의 고기맛, 진득한 질감에 주목했다면 브렛피자의 라구는 샐러리를 필두로 한 미르푸아의 화사함이 앞서 볼로네제의 뼈대가 되는 토마토보다도 이목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식초로 감아내는 발효 뉘앙스의 신맛이 탐닉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일깨운다. 헤스턴은 와인을 사용해 라구 팬의 바닥에 늘어붙은 감칠맛을 쥐어짠다면, 브렛피자 주방에서는 와인 식초 그 자체가 주제가 된다. 검어지도록 끓이는 토마토 라구의 반대편에 선 밝고 화사한 라구 비앙코의 아름다움.
파스타의 심이 조금은 더 아슬아슬하게 단단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점, 라구의 양에 비해 면이 넉넉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금 더 일찍 건져 한 가닥의 존재감은 높이되 양은 줄여 라구를 더욱 강조하는 방향이라면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테이스팅 코스의 구성이 아닌, 일상의 식사를 위한 요소라는 점에서 이는 반영되지 않는 것이 나은 바람이 되겠지만.
이 요리 하나로 브렛피자는 스스로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식당임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불과 칼을 손에 쥐었지만 이탈리아의 족쇄를 차지 않은, 유명한 요리사의 이름에 짓눌리지도 않은 자유롭지만 섬세한 자기표현과 일상의 역할 수행 사이의 절묘함. 찬바람이 부는 눈 내리지 않는 나폴리 대신 알자스와 노르망디의 포근함을 덮을 수 있는 피자가 있는 곳. 나는 추운 계절에 브렛피자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