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ûches, Martiniere BL, 2017
지금이 아니면 이 책 이야기는 못 할 것 같다. 더 늦어서도 곤란하고 더 일러서도 좋을 게 없었다.
"겨울 통나무"라는 이름의 디저트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진심이었는가? 또 이맘때 즈음이면 딸기만큼 지겨운게 파네토네니 슈톨렌이니 남의 전통을 좇기에 급급한 나머지 맛의 전통은 잊어버린 것들의 향연이다. 어떤 것들은 적절하게 먹을만 하지만, 맥락이 없다. 이 땅에서, 이 문화권의 사람들과 나는 성탄이 어찌 다른 곳들과 반드시 동기화를 목표로 해야만 하는가. 게다가 그네들의 성탄부터가 그렇게 한 가지의 획일적은 모습이었던 적이 없는데. 이 통나무 케이크도 마찬가지다. 통나무 모양의 케이크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은 크리스토프 펠더 셰프의 수많은 저작 중 하나로, 셰프는 디저트 및 패스트리 분야에서 특정한 종목을 깊게 파고드는 단행본을 여러 권 낸 바 있다. 국내 역본으로는 마카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이외에도 갈레트, 아이스크림, 슈나 그라탕까지도 있다. 솔직히 다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부쉬만큼은 자신있게 이야기해볼 수 있다.
서문만으로도 나는 겨울 메뉴를 내기로 작정한 파티셰라면 펠더 셰프의 이야기를 반드시 들어보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가 부쉬를 다루기 전 하는 이야기는 부쉬의 맛이나 만드는 방법, 또는 모양새가 주는 의미 따위가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성탄 전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먼저 살핀다. 이 케이크가 언제, 어떤 장소에서 누구에게 제공될 것인지가 모든 설계의 기초다. 사람이 먹기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위고하 성별 나이 등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모여 나누어 먹는 음식이다. 신앙의 깊이나 존재와 무관하게 기독교적 세계관의 사람들이 나누는 음식이면서, 먹는 순간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는 케이크다. 그 이야기가 있고 나서야, 펠더와 르세크 두 셰프의 부쉬는 시작될 수 있다. 고작해야 백 년 단위밖에는 되지 않은, 전통이라기보다는 근래의 습관에 가까운 케이크는 그 자체로는 영원하지 않다. 셰프는 그렇기에 그것을 영원의 경지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도전하는 역할을 도맡는다.
이 책은 그야말로 부쉬 드 노엘의 가능성에 대해 갈 때 까지 갔다. 가장 첫 장의, 제누아즈를 켜켜이 쌓은 뒤 초콜릿을 적셔 만드는 고전적인 부쉬 드 노엘부터 반원의 기둥 모양이라는 틀 안에서 우주가 펼쳐진다. 독후감이 아니니 내용에 대해 스포일러를 늘어놓는 대신, 두 셰프의 영감만 훔쳐보자. 기본적으로 부드럽게 썰리는 것을 전제로 하되 바깥 켜를 먹는 순간과 한 입 베어문 뒤 중앙으로 향하는 감각의 존재, 즉 한 사람에게 덜어진 조각을 총 두 번에서 네 번까지 잘라서 먹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맛의 층을 다양화한다. 기본적으로는 바닥과 연한 맛을 지닌 외벽을 처음 맛보고, 심부에 반전이 되는 풍미나 맛을 배치해 놀라움을 연출하는 식의 구성이다. 아니면 원통 위에 작은 마카롱과 샹티 크림 등 장식적 요소를 더하여 장식의 층을 한 켜, 아래의 케이크를 두 켜로 삼는 방식도 있는 등 응용법이야 다양하다. 전체를 관통하는 아이디어는 역시 각 풍미간의 궁합, 그리고 그러한 풍미의 시공간적 배열이다.
프랑스에서야 이 책의 대접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서울에서는 이 책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혁신적이다. 널리 알려진 맛의 궁합을 토대로 시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저자는 책을 통해 부쉬 드 노엘을 자유롭게 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책의 뒷쪽 절반은 창작, 즉 기존의 모양을 변형하거나 질감을 극단적으로 변주하는 등 편견 속의 부쉬 드 노엘의 위치를 흔드려고 시도하는 것들이 있으며, 또 아예 콜드 섹션, 즉 아이스크림이나 소르베를 포함시켜 완성하는 케이크를 제안한다. 프랑스에서야 어떨지 몰라도 서울에는 베스킨 라빈스가 거의 유일하게 아이스크림을 이용한 케이크나 과자류를 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은 제과 교재나 쿡북보다는 소설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서 더욱 볼 가치가 있다. 따라하거나, 비견할만한 창작품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우리는 자연스레 부쉬 드 노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 나누어 먹는 크기의 케이크에서는 어떤 맛을 선택해야 할까? 또 맛을 선택했다면 어떻게 배치할 것이며, 이러한 실행을 통해 어떤 것을 보여줄 것인가? 두 셰프와는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마주앉아 댓 시간은 떠들어댄 것처럼, 그들의 크리스마스 사랑에 대해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