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 플리즈 - 밀크셰이크와 치킨 버거
네이버 블로그 시절 버거 플리즈를 두어 번 글감으로 써먹었지만 이곳에서는 처음이다. 여러모로 버거에 대해 논하기 참으로 좋은 곳임을 부정할 수 없으므로 또 재탕하는 것을 양해를 바란다.
쇠고기 패티 햄버거에 대해서는 할만큼 했으므로-사실 많이 부족하지만 귀찮다- 한동안 햄버거 타령을 접었다가 이 사진이 남았다. 날짜가 그렇게 지나지 않은 날의 치킨 버거와 밀크셰이크.
먼저 버거 플리즈의 밀크셰이크 이야기를 해보자. 참으로 잘 만든 그 밀크셰이크 말이다. 먼저 밀크셰이크라는 음료에 대해 나는 설득하고 싶다. 나는 적어도 10년 이상을 햄버거에는 밀크셰이크가 필요함을 말해왔다. 햄버거의 음료의 짝은 종류도 많은데, 콜라를 필두로 한 탄산음료가 가장 앞서겠으나 무수히 많은 종류의 맥주들, 그리고 레드 와인이 따라붙으며, 미국적 전통으로는 이 셰이크가 자리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역할로 구분이 가능한데, 음식을 씻어내어 주거나 향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알코올쪽의 역할이라면 진한 단맛으로 맛의 짝을 맞추는 역할을 도맡는 것이 밀크 셰이크, 또는 탄산음료다. 그러나 두 종류는 판이하게 다르다. 탄산음료의 핵심은 탄산 가스가 주는 청량감으로, 단맛이 열쇠같지만 사실 그만큼이나 신맛이 경험의 중심을 잡고 있다. 단맛의 폭탄이지만 청량감의 끝에는 시트러스 계열의 흔적이 드리워, 입안에 남는 것이 없이 다시 식사를 시작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마시는 동안의 즐거움에는 단맛이 있지만 음식의 맛에 단맛을 얹지는 않는다. 콜라는 햄버거와 감자를 끝내는 원동력이다.
그렇다면 밀크셰이크는 어떤가? 밀크셰이크라는 음료에 대해 이해해보면 어렵지 않다. 탄산이 없지만 대신 잔뜩한 유지방이 있다. 그야말로 크림과 같이 진득한 질감은 입안에서 녹아내리면서 그를 매개로 단맛을 쏟아붓는다. 우유와 바닐라의 밑그림은 맛과 향을 담아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도화지이므로, 식사의 경험에 다양한 향을 더할 수도 있다. 열대 과일부터 초콜릿, 증류주까지 다양한 풍미들이 셰이크 위에 어우러진다. 셰이크는 잊히지도, 씻겨 내려가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 스스로의 맛만큼은 가득해서 음식과 호흡을 이룬다. 그리고 이미 햄버거와의 호흡은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햄버거의 빵이 바로 최고의 파트너가 아닌가.
그렇다면 햄버거를 위한, "좋은" 밀크셰이크는 무엇일까? 역시 밀크셰이크라는 음료는 태초부터 매일 먹을만한 물건은 아니므로 유지방이 높은 아이스크림으로, 우유보다는 아이스크림이 많도록 빚어낼 수록 좋다. 우유보다는 아이스크림을 마시듯한 느낌이라면 가장 좋다. 그만큼 차고 그만큼 달다면 기름진 고기를 베어무는 경험에도 맞설 수 있다. 햄버거는 엄청나게 기름지고 짭짤할 것이며, 셰이크는 엄청나게 달 것이다. 그야말로 자극이 충만하다. 이런 식사가 건강에는 별로 좋지 않지 않느냐고? 당연한 말씀이다. 자주 먹지 않아야 한다. 일탈적인 맛, 꿈속에 넣어 두었다가 가끔씩 현실로 꺼내 먹으면 족한 맛이다.
"버거 플리즈"의 밀크셰이크는 단연 이런 기준에 상당히 근접해 있었다. 밀크 셰이크가 버거의 환상적인 짝꿍이 되어준다. 사용하는 아이스크림에서 나오는 것인지 얼음을 넣고 기계를 돌려서 나오는 지 짚이는 데는 없는, 미미한 꺼끌거림이 있지만 진득하고도 달콤한 밀크셰이크 한 컵의 행복에 비하면 감안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애초에 이런 밀도 있는 밀크 셰이크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서울에서 나는 거의 모른다. 여의도에는 아예 없다. 이 날 이 밀크 셰이크가 더욱 빛났던 지점은 치킨 버거와의 호흡이었다. 치킨 버거는 일반적인, 쇠고기 패티에 치즈를 녹인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음식이다. 첫째로는 부드러움이 핵심이 아니다. 튀김의 겉은 부서지듯이 바삭하며 프로세서를 거치지 않는 닭고기 또한 씹히는 질감이 있는, 전반적으로 단단한 음식이다. 그에 더해 맛의 구성도 다르다. 스스로의 기름의 풍미에 기댈 수 있는 소고기 버거는 기름에 짠맛 정도만 더해내는 것이 축이지만 닭고기를 이용할 경우 제아무리 닭다리라고 해도 그런 역할을 자임해주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양념이 주인공이 되는, 매콤하고도 짭짜름한 양념한 튀김이 중심부에 위치한다. 이러한 자극은 옅으면 재미만 없어질 뿐이므로 아슬아슬할 정도로 매콤해야 한다. 훌륭하게 튀겨낸 튀김 조각에 코울슬로, 그리고 빵의 구성인 샌드위치는 그 스스로 완전체지만 씹고 부수어야 하는 음식이며 매운맛은 중간중간 호흡을 필요로 한다. 그 자리에 마치 공산품이 조립되듯이 이를 물리며 맞아떨어지는 게 이 밀크셰이크다. 촘촘한 유지방은 매운맛을 일시에 가라앉히며 자신의 맛을 뽐낸다. 맛있다. 한껏 탐닉하다 보면 베어물다 만 버거가 다시 머릿속을 사로잡는다. 버거에게 덤벼들면 다시 처음처럼, 강렬하게 매콤하고도 또 맛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리오, 감자는 감히 둘 사이에 끼어들 자리가 없다.
이렇게 끝낸 한 끼 식사는 그야말로 다시 꿈속에 넣어둘만한, 일상의 행복이다. 가끔만 꺼내보아도 좋다. 맛있는 요리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많은 것을 잊게 해준다. 맛이라는 것은 그만큼 강하고, 또 그래서 강해야 한다. 여의도를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식사 시간은 피안의 시간이다. 적어도 이때만큼은 맛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버거 플리즈의 셰이크와 햄버거는 눈물을 닦아주는 한 끼 식사다. 다시 일어나 일 주일을 살아갈 수 있다. 다음 주에는 다시 햄버거를 먹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