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 플리즈 - 가을 회고

타코 타령을 했으니 가까운 시일 내에 블로그에 바치는 햄버거를 한 끼 먹을 요량이었다. 타이 없는 점심시간. 볼링장에 가서 햄버거를 먹는다. 이 볼링장에서 햄버거를 먹는 사람이 항상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볼링장에서 먹는 마지막 햄버거가 되버릴 줄 몰랐다.

경험의 복제라는 본 블로그의 방향성이 또 좌초한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아직 가을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이 햄버거를 포장해서 먹을 수 있다. 남들에게 경험을 말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제공되었을 때의 맛을 경험해야 겠지만, 복제된 경험으로서 맛의 기본적인 논리구조를 즐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 사먹을 이유가 있는 계절 메뉴를 내는 곳은 서울에서 쉐이크 쉑과 버거 플리즈 정도 뿐이다. 그럼 왜 쉐이크 쉑을 말할 일이지 버거 플리즈인가? 두고 보시라.

버거 플리즈의 메뉴는 생각보다 자주 바뀌기 때문에 나도 먹어보지 못한 쪽이 더 많지만, 가을 버거는 놓칠 수 없었다. 서울에서 오가고 있는 패티 게임을 벗어났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버거의 주인공은 단연 버섯이다. 버섯을 크게 가공하지 않는다. 기름을 둘러 적당히 익혀내는데 소테라고 부를 만큼 바짝 볶은 느낌은 아니다. 충분한 휴식을 주었기 때문에 다행히 버섯에서 물이 줄줄 새지는 않지만, 결이 그대로 남은 버섯은 강제로 버거를 취식하는 방향(버섯 머리를 옆으로 두고 몇가닥씩 입에 우겨넣듯 베어물어야 한다. 어금니로는 끊을 수 있지만 앞니는 나이프의 역할만을 한다고 생각하라)을 정한다. 버거 플리즈의 기존의 버거들이 가지고 있는 잘 정형된 씹는 횟수에서 이탈한다. 버섯이 몇 번의 씹는 횟수와 아슬아슬한 수분감을 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역시 버섯을 먹기 위함이다. 왜 햄버거에 버섯을 넣는가. 버섯은 조리하는 방식에 따라 단맛부터 짠맛까지 골고루 흡수할 수 있으며 폭발적인 향기가 사람의 입맛을 돋구는데 제격이다. 끝? 그러한 버섯의 성질은 최근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버섯의 다음과 같은 특징을 주목한다. 감칠맛(umami)의 원료로서의 가능성이다. 열에 충분히 가열하는 것으로 버섯은 많은 감칠맛을 선사한다. 그러면서도 영양 균형을 개선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동시에 축산업에 쌓인 문제의 고민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다. 특히나 미국같이 이러한 문제가 앓아버릇해 곪아버린 곳에서는 이러한 해결책은 일견 탁월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래서 육류가 경험의 중심축을 잡는 일상적인 요리에 버섯을 사용하는 도전의 물결이 거세다. 이 도전에 성공한다면 고작 햄버거 하나가 한 사람의 건강을, 인생을, 나아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빵 사이에 버섯을 넣는다. 개중 가장 일반화된 접근으로는 다진 고기를 이용하는 미국의 일상 요리, 햄버거나 타코의 고기 반죽에 버섯을 섞어넣는 식의 방식이 있다. 이미 각 비율별로, 조리법 별로 감각에 대한 측정이 전부 이루어져 있으며 기호와 목적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 Dermiki et al., 2013a 및 A. Mydral Miller et al., 2014 등 특히 소고기와 버섯의 궁합에 있어서, 버섯을 함께 갈아넣는 것을 통해 감칠맛의 풍미를 강화하는 한편 소고기를 먹는 감각을 무디게 하지도 않을 수 있다. 그야말로 잃을 게 없는 파레토 개선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논할때 제임스 비어드 재단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다. JBF는 매년 쇠고기의 일정 비율을 버섯으로 대체한 햄버거 대회를 열고 있으며, 매년 수백 개의 햄버거 가게들이 이 대회에 참여한다. 서울에서 치즈 버거를 파는 셰프가 갑자기 햄버거에 버섯을 넣는다는건 이런 의미를 내포한다. 세계 버거 씬의 최전선에 도전한다. 생각이 있고 맛이 있는 버거를 쌓는 도전이다.

연구 자료가 버섯의 가능성을 제시하더라도 실제로 버섯을 넣는다고 갑작스레 모든게 좋아질 리는 없다. 실행의 몫은 온전히 주방에 있다. 버거 플리즈의 버섯 버거가 눈에 띄는 지점은 역시 버섯을 패티에 다져넣는 방식이 아닌 거의 수분마저 보존한 상태로 올렸다는 점이다. 그만큼 버섯에 자신이 있었거나, 패티에 다져넣는 데 어떤 장애요소가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조리 환경이 마땅치 않거나, 버섯이 들어가는 행위 자체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이 존재하는 등의 경우가 떠오른다.
버섯에서 큰 반전은 없었다. 버섯의 상태보다는 조리에 아쉬움이 남았다. 충분히 강한 불에 조리하는 것이 최선이었으리라 느꼈다. 충분한 소테가 기본적인 해답이 되주겠지만 수분을 보존하고 싶었다면 숯에 굽는 방법 등으로 향을 더할 수 있는 방편도 있다. 다만 주방 설비가 이러한 조리를 감안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치즈의 선택에 있어서도 버섯에게 일정 역할을 맡긴 흰 치즈를 썼다는 점은 설계에 있어 명석함을 보여주지만 역시 버섯이 기대에 못미칠 때는 아쉬움으로 돌아온다. 고전적인 버섯과 크림의 조합을 떠올리게 하지만 버섯에 가해진 화학 변화를 위한 에너지의 총량이 모자라다.
나머지는 명불허전이었다. 기존의 버거플리즈에서 설정한 씹는 횟수에 두 세번은 더해지는 느낌이므로 전체적인 맛이 무너질거라는 우려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역시 버섯이 만족스럽게 맛의 농도를 채워주지 않는 점이 걸리지만 두터운 치즈가 커버한다. 패티의 레시피와 나머지 등은 원체 훌륭한 상태이므로 평소처럼 맞아돌아간다. 소스의 맛이 버섯의 수분을 적당히 덮어 총체적으로 좋은 버거로 마무리되지만 버섯 버거로서 고민이 남는다.

여전히 버거 플리즈 다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총체적으로는 여전히 서울에서 찾아 먹고 싶은 버거였다. 눈에 띄게 이상하거나 호들갑을 떠는 버거, 뜨거운 불덩이나 젖은 풀같은 버거들을 제외하더라도 부드럽게 입안에 밀려들어오며 짭짜름하게 당겨오는 기름의 풍미를 주축으로 각 재료가 균형이 맞아돌아가는 햄버거로서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높은 단계의 도전을 할 수 있는 주방인 만큼 책임이 따른다. 모짜 머쉬룸 버거가 조금만 더 성공적이었다면 서울의 햄버거 축이 조금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이 느타리로는 패티 게임을 끝낼 수는 없었다. 가을의 끝과 함께 홀에서의 식사도 버섯 버거도 모두 날아가버릴 생각을 하니 완성도에 대한 이러한 아쉬움을 말하는 스스로가 밉다. 양송이 버섯을 쓰는 햄버거 따위가 있지만 그들과는 다른 단계로 도전한 버거다. 기본에 대한 이해가 충분한 점이 보이는 가운데 이 땅에 가장 어울리는 버섯을 찾고 도전했다. 그러나 이미 일상의 좋은 버거에 대해서는 훌륭한 답변들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 햄버거의 존재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를 기대했는데 기대에는 살짝 어긋난 감이 있다.

결과적으로 말해, 여전히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대체 불가능하다. 홀을 닫으며 완전히 여의도만의 맛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더더욱 존재 자체가 빛난다. 그러나 나는 이곳의 주방 정도면 서울의 햄버거 씬의 축을 움직일 힘이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모짜 머쉬룸을 먹은 이들에게 충격을 선사해주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주방의 요리 욕심이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있다는 점 또한 버거 플리즈를 대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다. 유지방이 경험을 전체적으로 지배하며 패티의 짐을 덜어준 버섯 버거에는 강렬한 짠맛과 기름과 고추의 호흡을 즐기기 좋은 이런 조각이 당연히 먹고 싶기 마련이다. 이런 선택이 가능한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구색에 가까운 감자에 소스는 어떻게 화려한 색이나 풍성함을 연출할 지의 고민은 있어도 맛은 적당히 타협하고 마는-어차피 인스타그램에서 중요한건 햄버거니까-식의 접근의 범람 속에서 완성된 한 끼의 행복은 좌초한다. 이날은 할라피뇨 잼을 먹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먹고 싶을 것이다. 버거 플리즈는 그날 한 끼 식사를 구상하는 재미가 있다. 감자가 필수이던 시절에서 벗어난 이유가, 행복이 있다.

쉐이크 또한 쉐이크를 먹기 위해 프랜차이즈 햄버거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에서 논하기 무안하지만 이번 콜드브루 스무디는 완성된 디저트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빨대가 젖어 더 이상 마실 수 없다면 빨때로 긁어서라도, 다소 추하게 컵의 밑을 두드려서라도 나머지를 맛본다. 쉐이크가 아닌 스무디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이 한 잔은 한 끼 식사의 그림을 완성한다. 서울에서 그 어디도 아닌 버거 플리즈의 한 끼 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