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버터
버터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결국 묻어두었는데, 잠깐의 짬을 내서 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유명하고 값비싼 레스토랑을 가는 것보다, 멋진 풍경을 찍거나 대단한 인상을 주는 작품을 보는 것만큼이나 내게는 유제품에 대한 갈증이 컸다. 치즈와 버터의 그 내음을 맡고 싶었기에 점심을 가볍게 해결하고 호텔 방에 숨어 시드르나 와인에 치즈를 씹어대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소화 능력에 한계가 있고, 단지 많이 먹는 것은 스스로 지향하는 자세가 아니므로 파리에서는 단 두세 곳의 프로마쥬리를 들렀을 뿐이며 주로 대표적인 치즈 두세 종을 맛봤을 뿐이다. 이에 대해 가타부타를 따질 환경이 되지 않는다.
버터에 대해서도 사실 그렇지만, 이 버터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지난 겨울 나는 많은 종류의 버터를 먹었다. 호텔 바라이스에서 내주었던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브르타뉴 버터였고, 이외에도 노르망디 아니면 에쉬레로 브르타뉴 인접 지역의 버터였다.
"최고의 버터"가 무엇이었냐고? 나는 답할 수가 없다. 모든 버터가 비슷하게 좋았느니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맛본 최고의 버터에게는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르디에로 르 퐁클레도 아닌 브르타뉴의 이름 모를 농협에서 쑤어 만든 그런 버터였다. 추운 계절이라 그 노란 빛이 절정에 달하지는 못했지만 지방에 따라오는 맛이 쏘아붙을 때 나는 그 속에서 프랑스 (도시) 여행의 절경을 보았다.
낙농제품의 가공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배경으로 인해 한국에서 좋은 버터에 대해 따져드는 것은 어렵지만, 아이디어가 있어야 나중에 생각으로도 퍼진다고 생각한다. 생각과는 다르게 좋은 버터에서 느낄 수 있는 차이는 아주 크지는 않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빵으로 만들었을 때에는 아예 차이를 느낄 수 없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특징적인 차이점에 주의를 기울이면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차이가 있는데 그 점이 사람을 갈구하게 만든다.
프랑스인들이 떼루아를 강조하지만 정말 지리적 위치 차이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차이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노르망디부터 보르도까지 기후가 달라도 한반도의 여름 겨울만 못할 것이다), 결국 거의 왕도가 정해져 있는 길을 얼마나 고집스럽게 유지하느냐에 달린다. 기본적으로 우유의 지방이 5%를 넘어가는 끈적한 우유를 만드는 종자를 고집하고, 여름에는 풀이나 꽃을 먹고 겨울에는 짚을 먹는 소의 식생을 지켜주어야 한다. 크림을 떠낸 뒤에는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발표를 거친다. 과거에는 단지 생산 속도가 느려서였지만, 오늘날에는 일부러 기다려야 한다. 자연 균을 사용해도 좋고 균을 별도로 넣어주는 것도 많다. 그리고 충분히 교반하여 지방과 물을 꾸준히 분리하고 반죽을 통해 질감을 다듬는다.
그렇게 얻어낸 결과물을 가장 잘 맛보기 위해 어떻게 써먹어야 할까. 퍼프 패스트리를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가정용 덩어리라면 빵 속에 펴바르는 것만한 방법이 없다. 너무 차갑지 않도록 꺼내둔 버터를 펴바른 다음 빵 껍질이 갈라지며 피어오르는 그윽한 빵맛 다음으로 버터의 맛을 취한다. 지방이 채워주는 충만함 속의 주로 단맛, 버터의 종류에 따라 살짝의 신맛이 톡 쏘는 느낌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부패의 불쾌함은 아닌, 시트러스 껍질을 떠올리게 하는 내음이 지나가는 착각을 일으킨다.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행복과 마주할 날을 그릴 뿐이다. 정말이지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워도우 한 조각에 샛노란 발효 버터를 발라 먹으면 음식에서 신맛이 난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빵도, 버터도 분명 단 음식이 아닌데도 신맛이 마냥 반갑다. 위대하다고 치켜 세워지는 조리사들이 앞다투어 발효 전통 타령을 하는 한민족의 핏줄이 흐르기 때문인가?
- 내가 유럽에서 먹은 식별 가능한 버터는 다음과 같다.
- 보르디에, 가염
- 르 바라트 뒤 크레미에(Le Baratte du Cremier), 가염
- 라 그랑데 에피세리 파리(보르디에 별주), 무염
- 뵈르 드 마담, 가염
- 르 가슬롱드 망슈, 가염
- 에쉬레, 무염, 가염
모두 경험할 가치가 있는 버터이나, 버터를 사냥하고자 한다면 이 버터들을 찾아 헤매지 말고 치즈 냄새 풍기는 가게의 찬장을 둘러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