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CUT - 2023년 겨울

농경에 진입한 이래 우리의 식탁에서는 무엇이든 우리의 손을 거친 것이 우선한다. 양에서도 질에서도 압도하는 인공생산물은 현대 과학과 만나 이전과는 비견할 수 없는 압도적인 풍요, 그리고 그에 걸맞는 압도적인 위기감을 동시에 가져다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자연의 우연 속에서 행운을 기대한다. 인공적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유기농법마저 맛과는 기본적으로 무관한데도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맛까지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나 더 나아간 것은 자연산이다. 산나물 따위에까지 이런 영광의 칭호를 내리지는 않지만, 생선의 경우 자연산이라는 것은 크나큰 가능성으로 여겨진다. 인간의 경제논리를 초월한 몬스터같은 생선 따위가 '원물'이라는 이름을 달고 가장 인공적인 도시인의 만찬 위에 오른다.
겨울에 주로 맛볼 수 있는 수렵육에 대한 기대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먼저 시인해야 한다. 분명 수렵육은 매력적인 재료이지만 그 낯섦으로 인해 과도하게 꺼려지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추앙받는다. 허나 단지 덜 통제된 재료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수렵육을 이용한 요리 문화에는 분명한 매력이 있다. 겨울이라는 계절에 수렵을 하는 이유와도 연관된다. 겨울은 뭇 생물들에게 시련과 극복의 시간이다. 생태계 피라미드의 정점에 오른 이들도 장기적인 생존 전략을 실행에 옮겨야 하며, 자연 상태에서 가장 고귀한 지방이 그 존재의 빛을 발하는 타이밍이다. 우리는 바로 그 점을 요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혹독한 계절에 감사를 느낀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적응한 동물은 열조리를 통해 광휘를 내뿜는다. 이 날의 식사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았다.

방문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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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오토시
Pâté en croûte au foie gras / 푸아 그라, 멧돼지, 닭다리살 등을 넣고 만든 파테 엉 크루트

이 글에서 티가 났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요리를 좋아한다. 프랑스 요리의 전채 중에서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요리에 대해 불필요하게 관대해지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이유를 타협하고 싶지 않다. 이 요리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차갑게 굳은 지방이 절묘하게 녹으며 바싹 익은 반죽과 함께 입안에서 녹아드는 쾌락이다. 그리고 이 주방의 파테는 이것을 멋드러지게 해낸다. 요리의 특성상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면 단면에서 예상되는 경험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상상이 현실로 되는 쾌락을 즐겼다. 기분 좋게 커다랗게 썰어낸 간의 지방이 먼저 녹고 특징이 짙은 고기를 씹는 느낌이 뒤따른다. 까다롭게 굴자면 바르고 남은 뼈로 소스를 만들지 않는 이유를 찾겠지만 두 명이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주방을 보고 그런 마음은 일찍이 접어두었다.

Soupe de poisson

샤퀴트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식당이라면 당연히 상당한 고급이고, 유럽 식문화에 어지간히 빠져들 정도로 주머니나 문화 생활 사정이 넉넉한 사람의 그것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색안경을 모두 내려놓고 일대일 대응을 한다면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내장 일체를 취급하는 순대국 전문점이 가장 유사한 장소라고 하겠다. 기본적으로 저렴한 내장이나 부속으로 펼쳐지는 세계관으로 이곳에서는 존귀함의 기준이 뒤바뀐다. 잡내라는 표현은 종종 개성으로 변하고, 그것을 참을 수 있는, 혹은 심지어 그것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요리가 만들어진다. 물론 그런 냄새만 나는 요리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탁자 위의 들깨나 후추가 왜 있겠는가. 핵심은 공존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주방에서 내는 바다 요리도 참으로 샤퀴트리다운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푹 끓여낸 스프 속에 고아져 버린 생선은 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지만 香보다는 臭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독특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넘치는 기름만이 그 파란만장했던 생애가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하게 한다. Cuisine impromptu의 정신에 걸맞는 그런 요리. 접시가 작은 것이 고마울 때도 있는 법이다.

대구 정소, 사우어크라우트, 케이퍼, 당근 라페, 풋콩, 후추, EVOO

메뉴에 없는 일일 오스스메 안주거리였기 때문에 정말 큰 기대가 없었지만 차가운 정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이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본의 프렌치 문화가 가진 힘이 아닐까. 정소는 일반적으로 따뜻하게 조리하는 것을 높게 보는데, 앞선 푸아 그라와 같은 경우와 달리 빠르게 입안에서 녹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을 모두 펼치기도 전에 삼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간단한 조미만으로 강한 화이트 와인에 견줄만한 힘을 가지게 되리라는 발상은 하지 못했다. 재현의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에 자세히 따지고 들지는 않겠지만, 공간의 개념에 어울리면서도 개인성까지 갖춘 훌륭한 발상이었다.

Plat du Jour, 사슴의 대퇴(外モモ), 팬 프라이한 다음 졸인 것

사슴은 분명한 철분감 덕분에 내가 가축이 아닌 것을 먹는다는 감각은 분명하게 전해주지만, 실은 강한 양념을 사용했을 때 더 빛을 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덕션에 가까운 소스가 아니고서야 지나치게 많은 고기의 씹는 횟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 자체로 씹어대기로 꼭 유쾌하기만 한 재료는 아니다. 만약 그랬겠다면 왜 이렇게 계절에만 맛보는 재료가 되었겠는가.

바바 오

구워둔 바바에 마지막으로 증류주를 그냥 부어 완성하는 방식은 레스쁘아 뒤 이부의 게시글에서도 밝혔듯이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랭 뒤카스가 의도치 않게 업계에 나쁜 선례를 남기고 말았는데, 뒤카스식 바바는 위대한 역작이지만 그렇다고 현장 조립식 바바가 모두 위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애초에 맛 대신 이런 재미(위스키도 선택이 가능하다)로 선회해버린 점, 그리고 샹티 크림만큼은 아주 기가 막혔다는 점을 감안해 살아남았다고 하겠다. 그래도 바바는 아주 푹 적셔주는 것이 더 좋다. 뻔한 럼을 쓰더라도. 아니, 그럴 때 더 빛나기도 하고.


총평: 망원동의 '라바즈'를 가면 1층에서부터 프랑스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바로 그 간판 때문에. 그리고 계단을 따라가며 맡는 향으로 오늘의 기대를 가진다. 라바즈를 갈 때는 계단을 오르고, 샤큐에 들어갈 때는 계단을 내려가지만, 나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샤퀴트리란 편안하고 서민적인 음식이지만, 동시에 열정과 사랑의 산물이라는 점을 고루 갖춘 훌륭한 식당으로 기억한다. 시간적 한계에 시달리는 관광객이 찾는 놀라움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프랑스 요리에 대한 열정, 그리고 겨울이라는 계절에 대한 경험을 찾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영감과 만족을 선사할 수 있다. 더 많은 샤퀴트리를 맛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데, 나는 이 여행의 아쉬움을 참으로 좋아한다.

분위기: 생각보다 높은 층고, 하지만 지하이기 때문에 조용하리라는 기대는 접는게 좋다.

서비스: 인력 부족으로 기대할 상황이 아니다. 전문 서비스 인력 없이 요리인들이 전부 수행하는 그런 공간.

가격: 인당 6000엔 내외로 적당히 맛볼 수 있고, 와인까지 곁들인다면 10,000엔 내외 예상.

음료: 뻔한 유명 생산자를 갖출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프랑스 남부에 대한 사랑으로 뒤집어낸다. 그리고 그 와중에 키르까지 주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