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H. - 보라카이 올드 패션드

원칙적으로는 정해진 장비로 촬영한 이미지가 없을 경우 그에 대한 글을 작성하지 않는다. 내 취재의 원칙에서 어긋나는 경우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 날은 잠깐의 예외를 인정해주자. 원칙이 있다면 예외도 있어야 원칙이 바로선다. 이 날은 취재의 다른 요건들이 만족되고 있었고, 평소 사용하는 카메라도 장비하고 있었지만 단지 당시 공간의 분위기에 그런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쓰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에 빨리 그림을 기계에 담고 음식에 집중하기는 이쪽이 더 좋은 선택이기도 하고. 이것은 비겁한 변명이지만, 하여간 입이 근질거려 못참아 글을 남겨보려 한다.


"보라카이 올드 패션드"는 찰스 H.의 클래식에 대한 답변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바에 앉아 보이는 풍경을 보나 사람들의 후기나 방문기를 살펴보나 절대 인기있는 메뉴는 아니다. 나도 이 메뉴의 팬은 아니었고, 누군가의 추천으로 그래 한 번 쯤은 하고 마셔보게 되었다. 현장의 메뉴판에서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틀릴 수 있다- 온라인의 설명에서는 "Manila 1926"이라는 멘트가 발견되는데, 바의 서재에 잔뜩 꽂혀있는 교재 "The Gentleman's Comapnion"에서 마닐라, 1926이 맞는 칵테일은 마티니에서 베르무트를 달콤한 이탈리아의 것으로(이는 드라이 베르무트를 쓰는 마티니와의 차이임을 굳이 밝힌다), 그리고 앙고스투라 비터와 크렘 드 멘트로 완성한다. 마티니의 기주를 생각하면 19세기 미국을 상징하는 올드 패션드와는 다소 거리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이 칵테일은 현재 헤드 바텐더가 개발한 메뉴가 아니라, 2017년 즈음 만들어진 메뉴가 "클래식"으로 자리잡은 것이므로 그에게 답을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속에서 수십 분을 태워가며 이 칵테일에 대해 고민했다.

우선적으로, 배경을 다 지우고, 단지 칵테일로 돌아가보자. 보라카이라는 이름은 큰 설득력을 갖는다. 음료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코코넛의 풍미가 이국적 풍경을 완벽하게 연출한다. 팔레트에서는 올드 패션드지만 노즈에서는 보라카이다. 첫 인상은 올드 패션드의 변용이라는 데 동의하게 되면서도 코코넛 향이, 그리고 설탕이 아닌 곳에서 출처를 한 단맛이 색다른 인상을 그리는데 성공한다. 비록 나는 그것이 반드시 마닐라 혹은 보라카이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도에서 썩 떨어진 서울이나 뉴욕 같은 도시에서 그리는 남국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다. 햇빛에 대해서 딱히 집착하지 않는 나같은 아시아계와는 달리 전형적인 유럽의 서양인들에게 이러한 남국의 풍경은 더욱 각별히 다가오곤 한다. 굳이 들먹이자면 내 머릿속에서는 니체같은 종류의 사람이 떠올랐다. 굳이 이 인물을 들먹이는 것은 이 블로그가 서울을 탓하듯이 그가 글에서 제 나라를 탓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독일의 미식과 식문화가 전반적으로 형편없다는 많은 독일 출신 인물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서도, 니체의 저술에는 흥미를 느낀다. 그는 이 적도 인근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남쪽에서im Süden"같은 시도 썼다. 그의 세계관에서 독일은 걷는 곳이지만 남쪽에서는 바다를 향해 날아갈 수 있는본문은-Nach Süden flog ich über’s Meer. 곳이다. 진리와 사랑에 빠지는 곳이기도 하고, 「바그너의 경우」에서도, 바그너가 축축한 북방feuchten Norden이라면 비제-메리메의 카르멘은 남쪽에 속하는 모든 것들, 공기의 건조함 그리고 맑음이 있다zur heissen Zone gehört, die Trockenheit der Luft, die limpidezza in der Luft고 하여 남쪽을 찬양한다. 본격적으로 습도가 높아지는 요즘 계절을 맞으면 지독한 도시의 사랑꾼인 나도 이러한 마음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고위도의 틀에 박힌 듯이 쫓기는 일상에 비해 남쪽의 휴양지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쉬고 놀고 먹고 잘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을까? 이야기가 저세상으로 새버렸으므로 이 백 년도 넘은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자. 글의 이후에 다룰 옛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았다.

하여간, 그만큼 코코넛이 그리는 남국의 풍경은 긍정적이다. 물론, 전술한 바와는 달리 보라카이는 상당히 습한 곳이지만, 어쨌거나 큰 틀에서 그 영혼은 통한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그 감정이 한 잔의 술에서 떠오른다. 코코넛이라는 과일이 이토록 아름다웠는가! 물론 나는 원래 이렇게 아름다운 물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설령 남국의 신선하고 품질 좋은 코코넛이 아닌 깡통에 담긴 코코 로페즈여도 이러한 꿈을 이루는데는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코코넛에 절여버린 기주와 코코넛 얼음은 올드 패션드라는 도시적 음료를 열대의 그림자로 품는데 성공하는데, 기술적인 훌륭함의 지점은 바로 시간에 있었다. 커다란 얼음이 가운데 자리하기도 하다보니 알코올의 강도가 부담스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음료는 필연적으로 천천히 마시게 된다-얼음을 코에 부딪혀가며 들이키는게 아니라면-. 그러다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얼음이 녹으며 음료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코코넛의 향이 휘발하기는 커녕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이는 얼음을 제조할 수 있는 주방의 덕이다. 긴자의 바들에서도 그렇지만 서울에서도 훌륭한 바는 통상 얼음을 거래처(서울에서는 주로 아이스팜 선호)로부터 납품받는 것으로 아는데, 코코넛향을 입힌 얼음은 음료의 팔레트를 해치지 않을 정도로 썩 괜찮은 속도로 녹으며 코코넛향을 덧입히는데 성공한다. 물론 결과적으로 위스키가 선사하는 도시적인 감각은 더욱 흐려지고, 음료의 끝자락에 다다를 즈음이면 이미 이 칵테일은 한 잔의 휴양지 음료로 변해있다. 코코넛 주스같은 단맛과 짙은 코코넛향만이 잔에 남는데, 마시는 이의 술버릇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칵테일이라는 음료에 있어 시간에 따른 변화는 곧 열화라는 지점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믹싱 글라스부터 푸드 프로세서 심지어는 원심분리기 비슷한 물건까지 현대적인 바의 주방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재료들에게 특정한 물성이나 질감을 부여하는데, 보통 그런 것들은 아슬아슬한 상태로 제공된다. 마티니나 올드 패션드 잔이 한 손에 휘감길 정도인 만큼, 딱 그 정도 마실 동안 버틸 까 말까다. 시간의 여유를 두고 마신다면 균형은 무너질 수 있다. 그런 음료에 얼음까지 띄운다면 문제는 커진다. 얼음이 남은 음료의 온도 상승을 적당히 막아줄 지는 몰라도 얼음은 지속적으로 녹으며 음료를 희석한다. 의도한 맛과 향이 묽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뜨거운 주방에서 요리할 때 통상 수분을 어떻게 날려보려고 하는 요리들을 생각해보면 이 비극의 크기를 감히 짚어볼 수 있다.

이 음료에서는 이러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음료의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해냈다. 얼음에 미리 맛과 향을 더해 음료의 희석이 아니라 마치 두 번째 음료로 탈바꿈하는 듯한 경험으로 진행한다. 미국 위스키가 선사하는 도시적 풍경으로부터 출발하여 코코넛을 타고 남국에 도착한다. 슬프게도 여전히 이곳이 도시라는 기억이 환기되는 순간, 결제를 위해 카드를 맡기는 때까지의 짧은 여행이지만, 알코올이 아닌 코코넛에 취한 듯한 감각은 코코넛의 매력을 아는 사람에게는 황홀경이다. 그 어느때보다도 그리운 풍경들이 많을 요즈음 꿈이라도 꿔볼 수 있었다니. 이런 경험을 가능케 하는 것은 얼음과 코코넛에 절인 위스키처럼 미리 준비된 재료의 아이디어의 힘도 있겠지만, 생각건대 그 균형을 어느 지점에서 잡는데 성공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인퓨징을 하더라도 코코넛이 너무 옅었거나 혹은 너무 강해 위스키의 중요한 개성들을 가릴 수준이 된다면(그렇게 좋은 코코넛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바람이다)? 혹은 올드 패션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위스키와 비터스의 풍미가 코코넛을 덮어버릴 정도로 강했다면? 이러한 목적 달성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음료를 완벽히 이해할 만큼 여러번 마셔보지 못했고, 또 비슷한 종류를 만나본 적도 없기 때문에 내가 경험한 균형의 위치가 가장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기주를 바꿔보거나 음료의 세기를 조절해보는 등, 아마도 두세 번 더 마시면서 영점을 조절할 지 모른다. 다만 거기서부터는 이제 주방이 아니라 내 영역이 되어버리므로, 여기서는 논하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창작의 맥락을 배제한, 인상에 의존한 경험이었다면 이제 칵테일에 대한 이해는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이 바의 이름은 내 이름이 아니고, 작가이자 그 시대의 블로거였던 찰스 베이커 주니어의 이름을 땄다. 사실 이곳의 칵테일들을 흝다보면 여기는 찰스 베이커의 팬클럽이 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그의 책 한 권이 번역되기는 커녕 서재에 꽂힌 영문본도 읽은 사람을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바의 창작은 그를 통해서 만들어지는데, 이는 단지 이 바의 사람들이 한국 기준 무명의 작가에 불과한 베이커의 팬보이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바를 처음 오픈했던 바텐더는 크리스토퍼 라우더였다. 그 크리스토퍼 라우더가 오픈 팀의 헤드를 맡기 전 가장 오래 근무한 공간이 뉴욕의 「The NoMad」다. 3년으로 크게 긴 시간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그곳에서의 경험이 그의 직업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곳은 여느 곳보다도 특별하니까. 무엇이 특별한가. 우리는 다행히도 2019년 출간된 노마드의 칵테일 북을 통해서 뉴욕으로 향하지 않고도 노마드가 주도하는 믹솔로지 씬의 영혼을 흡수할 수 있다. 「The NoMad Cocktail Book」의 서문과 소개에서 EMP의 두 바텐더들은 EMP가 인수되어 새로이 단장할 00년대 중반 당시 파인 다이닝을 지향하였던 이 레스토랑의 칵테일을 두고 "진정한 칵테일 문화가 없었다"고 평한다. 바텐더들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현대 요리의 즐거움이 없었다고 보았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금주령 이전 시대의 기록을 탐독한 경험을 소개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당시 뉴욕에는 호텔 건너 호텔마다 바가 있고, 그 바 건너 바에는 각각의 바텐더들이 자신의 창작 세계를 펼치고 있었다. 새롭고 놀라운 음료를 만들기 위해 바텐더들은 경쟁하고 또 나누었다. 바마다 자신의 삶을 갈아넣은 독특하고도 훌륭한 메뉴들이 있었고 뉴욕의 호텔에 머무르는 행복이 있었다. 아무래도 세계가 지금처럼 좁지는 않았으므로, 호텔에 머무르는 손님들에 따라서 바의 주방에 무엇이 들어가고 어떤 아이디어를 채택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반영되곤 했던 것 같다. 동양인의 눈에는 다 비슷해 보여도 나름의 정체성들을 유지하고 있던 이민자들의 나라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러한 인간찬가는 금주령과 함께 거의 대부분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금주령이 끝나고도 지루한 시대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20세기가 끝날 즈음하여부터 바텐더들은 다시 이러한 아메리칸 바텐딩의 위대함을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기술도 사람도 새로운 시대가 올 때가 되었지. EMP가 인수될 즈음하면 뉴욕에도 훌륭한 바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파인 다이닝 씬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러한 지점에 갈증을 느끼고 EMP 팀은 The NoMad 호텔을 통해 이 호텔 바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한 것이다. 20세기의 오해가 빚은, 단지 이미 만들어진 음료-주로 증류주-를 따르고 말동무를 해주거나, 고전적인 레시피들만을 수행하는 바가 아니라, 주방 요리에서 셰프가 보이듯이, 바텐더가 보이는 요리를 하는 곳. 다만 음료가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독특한 주방에서만 볼 수 있는 재료들로, 주로 액체를 핵심으로 하는 요리를 만드는, 통상 저녁 식사 이후 즐기는 독특한 요리세계가 있는 곳. 일상의 공간이자 일상 바깥의 공간이기도 한 곳.

이러한 미국의 믹솔로지 씬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하필 포 시즌스 서울이 「찰스 H.」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가 대충은 이해가 된다. 그는 평생을 감탄스러운 칵테일을 맛볼 때마다 만든이와 장소, 그리고 만든 사람의 사연 등을 기록해왔다. 그 시절의 바가 지닌 낭만과 꿈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까지 추켜세울 수 있다. 우리는 바텐더들이 그의 족적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을 보면서, 현대 믹솔로지 씬의 전술한 배경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 그의 역할은 이 도시에 아메리칸 바텐딩, 정확히는 이제는 일본 제외 세계의 바텐딩의 매력으로 우리를 이어줄 연결다리의 역할이다. 세계를 여행하며 세계 각지의 바와 바텐더들과 즐거움을 나눈 이 복받은 인물의 삶을 스리슬쩍 훔쳐보다 보면, 우리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를 이해하고 또 그 쪽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욕심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뉴잉글랜드의 바들을 떠올리게 하는 절묘한 인테리어는 이런 내 주장에 적당한 설득력을 얹어줄 수 있다고 감히 주장해본다.

그래서, 이러한 바텡딩 씬의 지향은 어떻게 이 칵테일에 녹아있는가? 찰스 H.는 과거와 현대를 어떻게 이어줄 수 있는가? 그 비밀은 이 서재에 꽂힌 책이 아닌 한참 후에 출간된 「The South American Gentleman's Companion」에 있다. 당시 브라질에는 코코넛에 카샤사를 채워 보관한 뒤 코코넛 향을 입혀 마시곤 하는 사람들을 기록한 바 있다. 6~12개월간 보관하고 이후 코코넛은 버려버리면 완성이다. 코코넛을 재활용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치밀한 미식가인 베이커 주니어는 버리라고 권한다. 코코넛의 운명은 제쳐두고, 이러한 관행은 브라질 출신의 바텐더에게 물어보니 아직도 부분적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다만 기록된 것에 비해 짧은 시간동안만을 숙성한다고. 그렇다면 이 음료의 지혜는 베이커로부터 전해졌으되, 이름의 보라카이는 어찌 생각하면 맞지 않을 수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살펴보라! 이 음료는 카샤사는 커녕 럼도 아니다. 지극히 미국적인 위스키의 풍미는 베이커가 사랑하기도 했던 여행지인 필리핀을 떠올리게 하는 길이 된다. 필리핀이 어떤 나라인가, 미국의 식민 통치기를 거쳐 미국 요리의 영향이 묻어있는 곳이다. 물론, 스페인의 영향이 더욱 짙다는 생각은 들지만서도, 기주를 바꾸는 순간 럼을 필두로 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인상보다는 실제로 미국 도시의 풍경이 우선하여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점점 코코넛이 잠식하는 경험을 하면서, 열대지방의 어딘가, 그렇지만 마이애미는 아닌 무언가를 떠올리다보면 필리핀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나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남국의 풍경은 필리핀이 아닌 지중해에 있지만, 코코넛의 단맛에 취한 때에는 코코넛이 자라는 곳이라면 지중해를 제쳐두고 갈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난다. 이렇게 우리의 꿈을 잘 이해해줄 수 있는 과일이 있을까, 감히 그 대적자가 별로 없다고 말해본다! 찰스 H.의 메뉴에는 코코넛향이 묻어나는 즐거운 칵테일들이 참 많지만, 시간에 더해 변화의 즐거움을 담은 이 한 잔은 또 다른 매력을 보인다. 물론 높은 복잡성을 보이는 음료들이 제공하는 재미를 추구한다면 그 방향성과 꼭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시간을 주제로 잡은 칵테일! 클래식 레시피를 다룬다면 이런 위트는 특히나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