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âteau Bel-Orme, Tronquoy de Lalande, Haut-Médoc 2011
포이약 지방 북쪽, 오메독의 30헥타르정도의 포도밭을 소유한 샤토 벨 오르메는 대단한 전통과는 약간은 거리가 있다. 네고시앙으로 활동하던 Quié 부부가 구입한 보르도의 자산 중 하나로, 마고에 위치한 그들의 그랑크뤼 포도밭, 로장-가시의 이름을 딴 파미에 로장 가시의 이름으로 소유하고 있는 포도밭 중 한 곳이다.
2020년 여름, 즉 약 십 년이 지난 뒤 맛을 보았다. 65%의 메를로와 35%의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보르도 블렌드의 일종으로 바라볼 수 있는 구성이다.
신선한 블랙커런트의 향과 과실미가 풍족한 가운데 익숙한 질감이었다. 적당히 가벼운 무게감(medium-bodied)이 맛을 훌륭하게 전달하는데, 일전에 몰아마시기를 통해 체화한 콘크리트의 감각이었다. 바닐린을 입혀주는 오크 나무의 담배향과 바닐라향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훌륭하게 잘 만든 가운데 거슬리는 것은 크뤼 부르주아라는 딱지였다. 프랑스 와인업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등급 딱지인데, 그랑 크뤼, 퍼미에 크뤼도 아닌 것이 크뤼 부르주아다. 공정성의 논란에 휩싸여 법원이 무효를 선언하기도 한 말 많은 인증이다. 2003년 법원의 판결 이후 다시 만든 2010년 기준에 따라 선정된 2011년 빈티지이므로, 그렇다면 어느정도의 품격을 보여줄까? 이번 병에서만큼은 맛에 있어서는 그랬다. 그러나 최근 빈티지도 그럴까에 대해서는 긍정하기 쉽지 않은데, 올해의 크뤼 부르주아 재선정 과정에서 이 와이너리는 탈락했다. 그러나 이번 크뤼 부르주아를 두고도 말은 엄청나게 많다. 크뤼 부르주아 인증을 받은 와인중 가장 훌륭한 축에 들었던 롤랑 드 비가 인증에 얽힌 비화를 풀며 인증을 거부했다. 누군지도 모를 심사위원들이 재심사를 위한 비용(500유로)를 지불했더니 심사 결과를 바꿔주었다는 것에 격분한 것이다. 독립적인 심사관들이 다섯 빈티지를 통틀어 평가한다지만 그들의 전문성에 대한 의문은 지속되고 있으며, 크뤼 부르주아의 상위 등급인 슈페리어와 엑셉시오넬에는 와이너리 방문에 대한 프로모션과 마케팅, 포도밭에 대한 기술적인 관리의 수준 등의 기준이 적용되는 등 생산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은 기준이다.
왜 이런 기준을 두고 이렇게 논란이 계속되면서도 또 이런 인증이 계속 등장하는 것일까? 그만큼 지롱드 강 유역의 와인이 전세계적으로 너무나도 큰 사랑을 받기 때문이라 느낀다. 확실히 잘 만든 보르도 와인은 탐스럽다. 그러나 그 인기 때문에 보르도의 와인은 너무나도 많아졌다. 벨-오르메-트롱쿠와-드-랄랑드라는 이름을 단박에 알 사람이 그렇게 많겠는가. 이곳의 포도밭이 라피트 로실드로부터 차타고 10분이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만큼 보르도 와인은 엄청나게 미세하게 분류되고 있고, 또 그 와중에 그 가치에 반하는 프리미엄을 누리려고 하는 욕심들 또한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런 틈새를 벌리는 원인은 구대륙에 대한 환상도 한몫 한다. 다행히도 이 와이너리는 큰 인기가 없어 이마트 한켠에 3만원 정도로, 가격 대비 맛의 만족도가 그야말로 행운의 단계까지 올라왔지만, 이러한 행운을 만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생산자들은 몇 가지 인증으로 '믿고 드샤보세요'라는 방법으로, 우리와 쉽게 만나려고 하지만, 의사소통이 영 되지 않는 느낌이다. 사실 소비자가 이런 딱지 하나에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한 병의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틀어서 그 사람과 만난다면 이런 기호는 전혀 필요가 없을 텐데, 그러기에 구대륙은 너무 멀고 프랑스어는 어려우며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그렇게까지 열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롯데칠성음료 수입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