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Sapiens, Phaidon, 2019
"커피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차를 준비해드릴까요?"
대한민국에 있는 거의 모든 레스토랑에서, 가장 슬픈 대사는 항상 이 한 마디이다. 아름다운 식사가 끝나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현실로 다가와버린 계산서 때문에? 그보다도 문제는 그 어떤 요리를 내더라도 커피는 기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새 어느 식당에서나 서버들에게 소금 이외의 재료는 전부 달달 외게 교육을 시키면서도 커피는 그냥 커피다. 무수한 레스토랑 리뷰가 각종 매체들을 뒤덮고 있지만 마지막의 미냐디스를 다루머 커피와 어떤지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가 있었던가. 그 반대로 커피 전문점에서는 우리는 또 한없이 작아진다. 큐그레이더는 커녕 전문적인 테이스팅 훈련도 받지 않은 소비자는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의 폭격에 폭사한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에콰도르 아시엔다 라 파파야 티피카 메호라도 내추럴"같은 문구 하나면 대부분의 고객을 겁에 질리게 할 수 있다. 이런 표기가 정확하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에콰도르"라고만 써있는 이정표는 사실상 랜덤과 다름이 없다. 물론 정 반대로 내 입맛만이 근거인 돌부처 고객들도 많지만, 알려고 해도 끝이 없으니 말 꺼내기가 무섭게 "맛있어요"만 연발하다 의문을 남기고 퇴장하기가 여러 번이다. 그럼에도 커피에 대해서 도저히 포기할 수는 없는데, 그러기에는 확실히 맛없는 커피들이 이 도시를 너무 촘촘히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elBulli 재단이 스페인어로 무수히 많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와중 두 번째 영어 책이 나왔는데, 바로 이 Coffee Sapiens다. "이해를 통한 혁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본서를 검색해보면 네이버에서는 커피 프랜차이즈 기업이 나온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쓴다.
먼저 책에 대한 좀스러운 소개를 하자면, 여러분이 미식가로서 어디서 아는 척좀 하고 살고 싶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페란 아드리아와 그의 팀이 집필했는데,-나는 결코 그런 행위를 추천하지는 않는다만 그것이 중요한 사람들도 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라바짜社와 공저이다. 라바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볼 수 있는, 별볼일 없는 대기업 중 하나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아무튼 그 라바짜와 페란 아드리아의, 많은 이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콜라보"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던 Sapiens라는 방법을 커피라는 세부 항목에 적용한 모양새인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새로울 것 없다고 하겠으면서도 이렇게 모두 다룬 경우가 있었냐 하면 또 잘 없다.
커피, 나도 하루에 적어도 한 잔은 커피를 마시고, 거의 모든 도시인들이 물처럼 들이킨다. 퇴직자들은 또 커피를 팔고 커피 교육을 한다. 어떤 커피 가게들은 또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데, 대체 커피가 뭔가?
elBulli 재단의 책이 그러하듯이, 이 책은 커피에 대한 완성된 답이 아닌 논쟁을 촉발하고,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풍성한 객관성과 단호한 주관성 덕이다. 이를테면 책의 구성을 이야기해 보자. 크게 세 갈래로 나누자면 커피가 재배지를 떠나기 전, 즉 커피의 육종부터 재배, 그리고 현지에서의 가공까지의 이야기가 있다. 그 다음이 커피가 음료로 변화하는 가공의 세계, 마지막은 그 커피가 현실로 제공되는 세계, 즉 커피의 음용의 때와 장소 이야기이다. 첫 부분에서 책은 과감하게 커피가 자연이라는 명제를 부정하며 시작한다. 그들에게 커피는 자연스럽지 않다. 다만 정교하지 못한(unelaborated) 정의일 뿐이다. 커피의 세계는 한 단어 안에 압축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커피 콩의 세계의 넓이를 재고, 또 실제로 커피 콩 뿐이 아닌 잎, 뿌리, 흙과 접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잔 속의 커피에서는 보이지 않는 커피의 질병, 커피 재배에 필요한 비료, 커피 재배의 시기 등의 정보는 전부는 아니지만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후에 커피는 가공의 세계를 거치는데 이 부분을 생략하자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마지막 장이다. 많은 커피 애호가들에게는 열려있지 않았던, 사업으로서 커피 말이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바에서의 커피와도 다른 커피 전문점의 커피란 무엇인가? 페란은 장장 100페이지 이상에 걸친 담화를 통해 커피 바의 거의 모든 요소를 미분한다. 페란 아드리아가 운영하던 엘 불이를 바라보듯이 커피 바를 바라보라. 그곳에 가기로 결정하기부터, 예약과 교통편을 통한 여정, 외관의 목격, 입장과 자리 안내, 메뉴 선택, 음료 제공과 서비스.. 그리고 그곳을 떠나서 그 사람이 주변에 퍼뜨릴 반응까지. 그리고 페란은 이곳에서 미식으로서의 커피는 어떤 형태로 제공되는가를 살핀다. 우리도 종종 카페에서 마주치듯이, 어떤 곳에서는 원두의 원산지를 추상적으로 표기하고, 좀 더 나아가 특정한 품질 인증이나 일정한 신념에 걸맞는 커피를 제공하기도 하며, 비음료와의 합을 제시하거나, 외관과 결합하여 보았을 때 음료가 다르게 느껴지는 등, 단순한 한 잔의 음료 이상의 것을 발견하곤 한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제공되는 커피를 마시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것들이 본인이 생각하는 고찰할 만한 커피인가? 책은 이러한 요소들에 대해 가치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 판단은 우리의 몫이다.
커피도, 사람도, 자연도 계속하여 변한다. 그 중에서 우연은 없다. 이제는 커피 전문점이라면 어떤 발효 과정을 거친 어떤 품종인지, 지역의 기후와 고도 등이 어떠한지 추적 가능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그리고 어떤 온도에서 추출하고 얼마나 곱게 분쇄하는지에 대해 묻는 일이 일상적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맛있는 커피 한 잔의 여유와 감동을 기억하기 때문이리라. 페란 아드리아는 이 책을 통해 커피에 대한 대화를 끝내는 대신 새로 시작하려 한다. 비록 700페이지에 이르는 영어가 한국 독자들에게 거대한 벽으로 다가오겠으나 한 명의 커피族으로서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