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펙션즈 바이 포 시즌스 - 레거시
대공위시대Interregnum가 계속되고 있는 포 시즌스 호텔 서울의 케이크 가게에는 이전의 유산들이 혼란스럽게 도열되어 있다. 물론 같은 케이크가 나오는 것 같더라도 결코 예전같지는 않지만-이곳의 케이크는 필연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누군가 사랑과 열정을 담아 세계적인 호텔의 명성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 흔적은 느낄 수 있다.
초창기에 세팅한 비에누아즈리나 기념품용 제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바뀐 컨펙션즈에서 특히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케이크가 바로 이 건강한 초콜릿 레이어드 케이크다. 발로나의 실험실을 이끌고 있는 프레데릭 보 셰프가 주도한 건강한 식도락Gourmandise raisonnée의 흐름을 받아들여 발로나의 최신 R&D의 결과물을 적극 수용한 저당 케이크를 선보였는데, 크림의 비중이 상당히 적어진 점을 빼면 영락없는 미국 가정식 초콜릿 레이어드 케이크다. 하지만 아주 약간의 쓴맛과 둘러싼 초콜릿의 질감이 이 케이크가 럭셔리의 최소한도 내에 있을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달지 않아서 좋은' 서울에서 먹힐 만한 콘셉트라 생각하지만 이 제품의 끈질긴 생명력에도 불구하고 야심찬 행보는 담당 셰프의 타 지사 발령으로 초라하게 끝을 맺었다.
컨펙션즈에서 고생하고 있는 팀원들을 나무랄 생각은 없지만, 여러 실력 있는 여러 파티셰들이 거쳐갔음에도 컨펙션즈는 이 아슬아슬한 상태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물론 호텔 주방의 목표는 음식 애호가들 따위를 신경쓰는 것에 있지 않지만, 외국인의 비중이 높고 상용 수요가 많은 호텔, 그것도 포 시즌스라면 이름에 맞는 수준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위한 커피 미팅부터 기념일의 홀 케이크, 여름철의 '망고 빙수' 전쟁과 늦겨울의 '딸기 뷔페' 난리통 속에 케이크가 맛있기는 어려웠던 것일까. 미래애셋과 포 시즌스의 알다가도 모를 동업관계 속에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포 시즌스의 다이닝 옵션은 유독 서울에서만 표류하고 있다. 도쿄에서 포 시즌스가 새로 3스타를 거머쥐었다는 소식은 남일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