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e - 2022년 여름
아메리카에 간 이유의 절반 이상은 타코를 비롯한 멕시코 음식이다. 물론 다른 남미나 카리브 음식은 물론, 미국에서도 각 지역의 매력적인 요리가 많지만 미국에서의 유행을 등에 업고 한국에서 어설픈 형태로 재현되고 있는 타코들을 보다보면 미국 생각이 절로 났다. 타코의 고장인 멕시코를 두고 왜 미국이라고 하겠냐마는 미식으로서 멕시코 요리의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는 곳은 아무래도 소득 수준이 높은 미국 쪽이다. 비단 소득 뿐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접점을 빚고 잘 교육된 견습 조리사들을 수급할 수 있는 환경 역시 그 이유일 것이다. 쉽게 생각해서 Atomix가 왜 맨해튼에 있겠는가.
방문 전
Cosme의 예약은 전화, 이메일 또는 Resy로 가능하다. 본인은 Resy를 이용해 예약했으며, 프로그램상 확인 문자를 거치지만 별도의 확인 전화는 하지 않는다. 워크인 역시 가능하다.
요리
기본적으로 인당 두 장을 제공하는 토르티야는 블루 콘 위주의 마사를 사용했음에도 단맛이 튀지 않는 편인데, 진한 옥수수향과 더불어 튀긴 듯 하면서도 완전히 건조하다. 사진에 보이는 두 종류의 칠리는 전통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데,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검은 칠리였다. 스페인 요리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식처럼 고추를 완전히 그을려 만든 칠리였는데, 토르티야의 미세한 훈연향과 어울려 입맛 당기는 안주로 제격이었다.
르 베르나르댕에서도 비슷한 레퍼런스를 가진 요리를 먹었지만 코스메의 문어는 단백질의 조리 정도를 제외하면 판이하게 다른 음식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정직하게 손질 및 조리를 거친 문어의 텍스처는 썩 비슷했는데 르 베르나르댕이 조금 더 전위적이라면 코스메의 것은 타코에 어울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하드 쉘보다도 단단하게 구운 토르티야 위에 산처럼 쌓은 문어는 전형적인 타코처럼 먹을 수는 없고, 불경하게도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해 요령껏 잘라먹어야 한다.
하지만 아래에 깔아둔 붉은 살사와 토르티야, 그리고 단백질로 이루어져 이날 먹은 음식 중 가장 전형적인 타코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이 요리는 그야말로 타코의 왕도를 걷고 있었다. 짠맛이 돌게끔 잘 조리된 단백질에 살사의 감칠맛으로 이미 충분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어찌 보면 문어의 대비를 이끌어내지 않은건 이미 토르티야가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짝짓기로는 와인보다 기왕이면 칵테일을 주문했는데, 셰이크한 칵테일을 이렇게 연출하는 바텐더들은 정말 감각이 무디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재료의 힘으로 부족한 완성도를 메꾸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진+베르무트의 마티니(!) 향을 풍기지만 기주인 메즈칼의 강렬한 탄향과 그을린 과일 뉘앙스, 그리고 라임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멕시코 음식이 가진 지배적인 향들과 지나치게 유사한 가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짝짓기로서는 성공했다.
태평양에서 낚은 잿방어를 파스트라미로 만드는 레시피는 2010년대 초부터 몇군데에서 보이던 것인데, 이곳에서는 이를 통해 뉴욕에 대한 헌사를 보냈다. 기본적으로 틀은 멕시코 요리인 소페(Sope)지만 단백질의 비중이 아득히 높은 점은 카츠의 파스트라미를 닮았다. 이 요리에는 두 가지 측면의 즐거움이 있었는데, 하나는 소페와 파스트라미라는 형식의 만남에서의 즐거움, 둘은 잿방어에서 실릭 팍, 튀긴 마사로 이어지는 텍스처의 합일이 주는 즐거움이었다. 향신료에 재운 뒤 살짝만 익힌 정도로 썰어내는 잿방어는 전형적인 파스트라미 양념이 아닌 고추 바탕의 멕시코 향을 품었으면서도 겨자씨와 어울리면 다시 그 그림을 떠올리게 만든다. 향이 썩 좋은 겨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틀이 되는 소페와 결합하면 다시 또 하나의 요리가 된다. 텍스처에서는 그 샌드위치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팔레트에서는 알알이 하나하나가 멕시코스러우니 푸욜이 아닌 코스메이기 때문에 가능한 맛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요리의 짝짓기로는 앞선 칵테일의 기주인 메즈칼을 니트로, 이건 온전히 내 결정이었는데 정말 틀리지 않았다. 올라가는 도수와 함께 분위기가 고조되면서도 파스트라미의 훈연향과 메즈칼의 향의 가락이 구성지게 들어맞았다. 싱글 오리진 메즈칼 중에서는 나름 캐주얼한 편인데도 이미 미국이 우주로 느껴지는 한 잔의 맛이었다.
메인 요리는 원래라면 당연히 오리 카르니타스여야 했겠지만 2인용인 관계로 야채 요리를 골랐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일단 틀라유다의 틀을 빌리지만 토르티야가 업싱 아예 샐러드 비슷하게 버무려 내서 전위적인 느낌을 강조하는데 콩 따위가 메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주방은 그렇다고 답하는 듯한 맛이었다. 후무스와 비슷하면서도 콩의 차이, 조미에서 오는 강렬한 신맛이 고소함을 당기고 토르티야의 역할은 신선한 잎채소들이 맡았다. 모모푸쿠의 데이비드 장이 토르티야를 이용한 타코와 상추쌈의 연결고리를 떠올렸듯이, 코스메의 틀라유다는 토르티야를 야채로 치환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지중해와 태평양의 양안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들면서도, 콩맛으로 성공했다. 감칠맛을 얹기 위한 버섯은 사족 수준이었지만 이미 충분했다.
오리 카르니타스를 생략했으니 그래도 코스메의 시그니처를 하나는 챙기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디저트로는 이미 이 머랭을 맡겨두었는데, 과연 자랑할만한 물건이었다. 하나의 커다란 머랭처럼 연출하지만 실은 머랭 껍데기를 제외하고도 세 부분 정도로 나뉘는 느낌인데 기술적으로 분석할 의지를 잃게 만든다. 그저 취해야 하는 맛이다. 콘허스크(옥수수를 감싼 잎) 머랭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절대 아니다. 말이 머랭이지 흐르는 모양의 무스케이크에 가까운 수준인데 바닐라와 유지방, 단맛의 균형이 훌륭하면서도 상단의 노란 옥수수 무스의 강렬한 옥수수향과 절도 있는 짠맛이 방점을 찍는다. 크림에 마스카포네 치즈를 더해 차갑게 내는 방식은 티라미수로부터 교훈을 얻은 듯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들어간 옥수수의 향이 층을 이루는 디저트보다도 한 단계 진보한 느낌을 준다. 진실로 디저트이면서 멕시코로 단박에 왜 이게 이 레스토랑의 얼굴이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뉴욕 시의 파인 다이닝 멕시칸. 셰프가 지향하는 멕시코 요리의 고금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성공했으니 이 이상이 있겠는가?
총평: Cosme는 멕시코 요리의 미래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레스토랑이다. 기본적으로 타코와 토르티야를 바탕으로 하지만 거기에 묶여있지 않고, 거대한 유산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도 장소를 옮겨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요리의 강점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제 40대 중반인 이 젊은 요리사가 보여줄 앞으로의 미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지 더더욱 기대된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분위기: 플랫아이언의 여유로움보다는 조금 부산스러운, 하지만 흥겨운 파티 뉘앙스
서비스: 서버들의 교육 수준이 일정하지 않은데 그래도 주방이 아니라 FoH 선에서 대부분의 대화가 해결될 수 있는 수준
가격: 단품 요리당 $20~$30 정도로 별도의 코스 메뉴는 없다. 위 식사는 음료와 세금, 20% 이상의 팁을 포함해 $120을 결제했다.
음료: 와인 리스트가 있기는 하지만 마가리타를 필두로 한 칵테일이나 메즈칼이 제대로 된 선택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