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CLE - 2024년 겨울 오픈

몇 년 전 보았던 일본의 드라마 "그랑 메종 도쿄"는 기무타쿠를 주연으로 한, 흔한 드라마였을지도 모르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몇 가지 있다. 파리의 그랑 레스토랑 랑부아지를 장소로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 외에도, 주연인 기무라 타쿠야가 이끄는 그랑 메종 도쿄의 라이벌격으로 등장하는 레스토랑의 오너가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

오트 퀴진이란 요리사의 손에서 탄생한 것 같지만서도 실은 그렇지 않다. 실은 요리는 환대(hospitality)의 일환이자 그 하위 개념으로 시작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역사적인 호텔이 '사보이'니 '조지 5세'니 하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오트 퀴진의 발전의 공 또한 고귀한 피를 물려받은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그 흐름을 획기적으로 바꾼 근대인이라면 바로 어떤 귀족이나 유명인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호텔을 경영한 세자르 리츠, 그리고 그 리츠의 상징이자 현대 프랑스 요리의 대부인 무슈 에스코피에라고 할 수 있다. 리츠와 에스코피에의 시대부터 손님들은 섬김을 받는 것을 넘어 그 경험, 섬겨지는 경험의 쾌락을 위해 분투하는 시대가 개막하였다.

리츠의 주방이 위대한 것은 에스코피에의 천부적인 감각와 끝없는 열정, 그리고 가혹함에도 있지만 그러한 발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인 호텔 리츠의 지원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요리사가 대단한 발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실행할 인적, 물적 인프라가 없다면 세월이 지난 뒤 "내가 그 때는 상상을 했다니까" 하는 공상으로 남을 뿐이다. 오늘날 위대한 요리로 주로 박수를 받는 것은 요리사이지만, 요리사와 레스토랑 경영자-restauranteur-의 공동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철학자가 없는 시대 요리사가 철학자 흉내를 난다고 할 정도로 요리사의 인적 개성만이 강조되는 요즘이지만, 레스토랑의 이념적 방향성이나 실천의 방향성은 오히려 경영자의 역할이 더욱 큰 지점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두 파트너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완성해 나가는 것이 레스토랑의 일생이라고 하겠다.

도입부부터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마우로 콜레그레코라는 거인이 도쿄에 레스토랑을 내게 된 배경에 그러한 경영자의 솜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CYCLE의 모기업은 주식회사 그라나다로, 대표가 피자 나폴레타나에 반해 피자 전문점을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파인 다이닝 사업에 도전, 라스트랑스의 수셰프로 활약한 기시다 슈조를 영입해 캉테상스를 오픈해 프랑스 요리계에 한 획을 그은 바 있다(현재의 캉테상스는 기시다 셰프가 인수하여 독립점이다). 어쩌면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에 선뜻 손을 내밀고 또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 대해 생각하며,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르헨티나 요리사라고 할 수 있는 마우로 콜레그레코의 요리에 대해 논한다.

예약 전에

CYCLE의 예약은 전화 또는 온라인으로 가능하며, 방문 전 한 번의 확인을 거치나 별도의 당일 확인은 없다.

요리

이름에서 내거는 CYCLE의 모토는 순환이지만, 순환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추상화라기보다는 결국 20세기를 넘어 21세기까지도 계속되는 식탁의 물신주의적 흐름에 대한 반항, 즉 귀하기 때문에 귀한 것이 아닌 감상의 고귀함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허울뿐인 말은 내려놓고 요리에 대해 논하자.

초기 미라주르에서 마우로 콜레그레코의 요리는 결국 두 알랭-파사르와 뒤카스-의 그림자에 있었다면, CYCLE을 통한 도전은 새로운 시대의 중추 역할을 맡은 요리사로서 그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고 방향성을 내보내느냐 하는 점에 있으리라.

단순히 "야채를 사용한다"는 점에 천착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것은 인경인가 괴경인가, 열매인가 꽃인가.. 하는 학술적 논의에도 부합하지 않는 어쩌면 감상적인 진행으로 이루어지는 첫 '시클'에서는 윤회와 순환에 대한 발상보다도 단맛으로 시작해 짠맛과 신맛을 지나 다시 단맛과 쓴맛으로 돌아오는, 식사의 흐름에 대한 명쾌한 예고편을 보여주었다. 특히 신맛에 있어서는 고등어의 발효에서 얻은 신맛과 과실미에 가까운 신맛을 섬세하게 배치하였고, 우하단의 밤 휘낭시에에서는 단맛보다는 밤이나 도토리가 가진 어두운 뉘앙스의 흙향을 내세우는 등 선명성에 중점을 둔 조리의 방향을 읽을 수 있었다.

곧이어 빵은 결국 CYCLE의 작업이란 미라주르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선언하게 되는데, 다른 이유 없이 이 빵은 미라주르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심지어는 함께 제시되는 시구마저 같은 것. 물의 비중이 상당히 낮고 천천히 반죽해 얻은 특유의 질감은 다소 부담스럽지만 올리브 오일의 경쾌함과 화사함을 담아낼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망통에서는 망통을 상징하는 레몬향을 사용하지만, 일본에서는 시소를 쓴다는 점 정도가 다른 점.

지중해가 아닌 태평양의 패류에 도전하는 이 요리는 고수와 칠리를 전면에 내세워 굴의 조리법을 살짝 떠올리게 하면서도 홍합의 선이 굵은 내장맛과 전면으로 부딪히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대합의 부드러움과 단맛, 홍합의 밀도감은 연속적으로 어울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었고, 이 요리에서도 조금은 그랬지만, 고추의 매운맛으로 부딪혀 오는 점만큼은 요리사의 담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호지소로 마무리해낸 점은 역시 일본인 셰프 드 퀴진의 감각일까.

사실 이 요리에 대해 가타부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었다. 어쩌면 이리 완성에 이른 미라주르, 마우로의 요리관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요리, 비트, 크림 그리고 캐비어. 소금으로 덮어 천천히 익힌 비트를 얇게 포뜨고 크림과 캐비어를 알라미누트로 섞어 완성하는 단순함의 극치인데, 크림이 더하는 묵직한 지방감, 그리고 캐비어가 얹는 강한 감칠맛과 대지(earthy)의 느낌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흙에서 충분히 오래 키운 비트가 이 요리의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존재감을 발한다. 캐비어는 동일한 아키텐의 것을 쓰지만 크림과 비트는 일본의 것이므로 같지만 같은 요리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짧게 말하자면, 같은 요리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비트 뿌리가 가장 맛이 오르는 계절은 아니었으므로, 분명 더 나은 다음을 기대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더해서.

식사 중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미라주르 같은 것-일본적인 것의 배치가 반복되고 있는데, 이 요리는 그렇다면 그 후자라고 할 것이다. 타로와 감자라는 두 전분을 전면에 내세우고 관자로 중심을 잡으면서, 튀일같은 느낌이 날 정도로 말리듯 바싹 익힌 감자 껍질과 커피 그레인으로 "땅"이라는 흐름의 마침표를 찍는다. 전분을 활용한 점도보다도 놀란 점은 커피와 펜넬을 통해 양쪽으로 잡아당겨 펴듯 그려낸 발향의 감각. 수 년 전 맛본 피에르 가니에르식 '대지의 향기'의 기쁨을 떠올리게 하는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요리 역시 근 십 년간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미라주르의 카탈로그에 포함된 요리인데, 지중해 오징어가 아닌 매오징어(일칭 "호타루이까")로 냈는데, 이탈리아적 발상(calamari con piselli)에서 봄철 북해도에서 잎을 틔운 산마늘과 유채로 이른 봄의 절경을 그려냈다. 마침 첫 벚꽃이 피는 계절이었는데, 앞선 요리에서는 겨울 눈 덮인 땅의 깊은 곳을 보았다면 이 요리는 그 다음, 청록의 계절을 그려내 눈부신 대비를 만들어냈다.

자바리는 고귀한 껍질을 십분 활용한 필필 소스에서 기술과 집념 두 가지를 모두 느꼈다. 바스크 요리가 현대에 내린 축복이 아닐까. 그 속에서 핑거 라임과 같은 포인트로 경쾌함마저 연출하는 감각은 역시 책임자의 재량이 탁월한 것이라 하겠다.

아직 계절이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피어나는 감각에 대한 것은 역시 제한적이었는데(사슴에 대한 점은이 글을 참조하라) 히비스커스의 꽃향을 당겨내기 위해 활용한 발상은 훌륭했는데, 마치 보색대비와 같은 발상으로 고기를 익히는 과정에서 훈연향을 강하게 입혀 그만큼 가볍고 화사한 향이 돋보이도록 하는 것. 고기 요리에 그런 그림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으나, 지금까지의 흐름에 비추어서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었다.

크렘 샹티와 머랭으로 지탱하는 딸기는 아쉽게도 완성된 요리라고 할 수 없었다. 딸기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계절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느낌, 지금까지 보여준 흐름을 이어 화려하게 열매를 맺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장미로 향을 덧입혔지만 피에르 에르메의 리치같은, 차원을 뛰어넘는 감각이 없는 이상 국면을 뒤집을 무기는 되어주지 못한다.

종결을 의미하는 초콜릿에서는 다시 어둡고 무거운 대지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충격이 도사리고 있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알게 되면 그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그 점만은 묻어두고 가자. 봄이 오다가도 꽃샘추위가 오듯이, 어둠 속에서도 봄날을 떠올리게 하는 푸르름이 있다.


총평: 히트곡을 낸 가수는 좋든 싫든 그 곡의 존재에 자신이 구속되기 마련이다. 미라주르로 스타덤에 오른 마우로 콜레그레코 역시 이제는 미라주르의 요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심지어는 그 장소가 지구 반대편이 되더라도. 하지만 시클이 내세우는 이상은 미라주르 도쿄도, 그렇다고 이름만 빌려주는 '피에르 가르뎅 수건'같은 레스토랑도 아니다. 시클은 미라주르의 연속형으로, 그의 요리 인생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이 나아가는 무대와 같은 공간이 될 것이다. 물론 미라주르와는 달리, 셰프 드 퀴진인 미야모토 유헤이 또한 이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데 더욱 많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피가 흐르는 아르헨티나 요리사가 그린 프랑스의 꿈은 일본을 만나 또 어떻게 피어오를 것인가? 시클은 미라주르의 성취보다도 그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게 만드는 레스토랑이다. 흥미본위를 위해 점수를 부여했지만, 분명 재평가의 기회가 있을 것이고 그 때의 숫자는 다르리라 믿는다.

서비스: 이날은 레스토랑 홀 전체를 혼자 사용했기 때문에 논할 수 없다.

공간: 오테마치 원의 공간을 만끽할 수 있는 막대한 층고. 하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선보이는 산림처사의 꿈은 아무래도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음료: 젊고 실험적인 생산자가 여럿 섞여있지만 페어링으로는 익히 알려진 지역의 익히 알려진 생산자를 제안하는 보수성을 보인다. 미라주르의 꿈을 꾸는 방문객을 위한 남프랑스의 와인은 역시 충실히 구비되어 있다.

가격: 세금 포함 저녁 35,200JPY. 음료 포함 인당 약 50,000JPY 권장.

https://cyclerestaura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