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maine Ravaut Gaston et Pierre, Ladoix 2017
본에서 위쪽, 몸값이 한참 비싼 알록스-코르통의 바로 위인 라두아-세리니Ladoix-Serrigny의 와인은 한결 접근 성 있는 가격대이다. 영국에서는 20파운드,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18유로. 기억하기로 구매가격은 그 두 배 언저리를 주었던 것 같다. 거의 모자이크 수준으로 나누어져 있는 프랑스인들의 지도를 더 이상 이야기할 재미는 없을 것 같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쪽이 유명한 건 애당초 화이트 와인이 아닌가.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를 보면 흔히 짙은 화사함이나 실오라기처럼 이어지는 부드러움을 떠올린다. 그것이 부르고뉴와 피노 누아가 보내는 유일한 신호라면- 이 와인은 틀렸다고 할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부르고뉴 와인이 이런 가격대에서는 실패가 당연하다고 하는게 맞을 지도. 적은 오크의 사용이 느껴지는 가운데 다가오는 풍미에서는 우리가 전형적으로 부르고뉴라고 불러야 하는 특징들의 존재를 제외하면 마시기 좋은 와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점인데, 발효 정도가 다른 원액들을 섞어서 만들었다는 점이 이러한 특징을 만들었던 듯 하다. 출고가가 정해진 상황에서 그랑 크뤼나 프리미에 크뤼와 같은 가격 포인트를 소유하지 않은 대지의 포도에게 쓸 수 있는 비용과 역량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러한 선택은 소비자가 흔히 바라는 방향으로는 흔하지 않을 지언정 틀린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
짙지 않은 산도, 짭짜름한 팔레트와 모자라지 않은 쓴맛. 이 와인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듯 하다. 그 자체로 잔에서 탐닉할 수는 없어도 식사에서 제 역할을 올바르게 해낸다. 동물들이 으레 가진 풍미에 곁들인다면 완성된 식사를 위해 차고 넘친다.
안그래도 짙은 과실미를 지닌 피노 누아를 침용과 발효를 통해 천천히 올바르게 빚어낸 맛을 당연히 좋아한다. 그러나 세계는 넓고 가능성은 무한하다. 피노 누아 같지 않은 피노 누아, 아니면 이게 피노 누아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