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 Gâteaux et du pain
야채나 과일을 강조하는 스타일로 한때 명성이 높은 부티크였으나 2023년에 마주한 클라레 다몽의 모습은 현상유지였다. 물론 좋은 가게에게는 현상유지가 목표라는 것 자체가 의미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과거의 위인들에게 헌화하기 위해 파리를 들른 게 아니다.
제과의 제국을 건설한 스승 피에르 에르메와는 다른 방향의 비즈니스지만 단절이라고 하기에는 그 영향의 연장선상에 있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재료들보다 발달한 현대의 유통망을 적극 이용할 수 있는 재료를 강조하는데, 하나의 재료에 포커스가 먼저 맞춰지는 식의 설계가 돋보인다. 예컨대 몽블랑 카시스에서는 카시스가, 카슈미르에서는 사프론이 주인공이다. 그 뒤로 일반적인 디저트의 뉘앙스가 따라오기 때문에 만족감이 있으면서도 새롭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일부러 불균형한 제과를 만드는 등 불필요한 기교 대신 정교한 균형으로 이러한 연출을 해낸다. 이러한 요소를 시각적으로 과장하지 않는 점 또한 좋은 자세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20년째를 향해 가는 그 스타일의 놀라움은 예전같을 수 없다. 오히려 뻔하게 만든 바바의 설득력이 눈부셨다. 상단의 크림까지 사탕수수 뉘앙스를 당겨 럼의 여운을 길게 연출하는데 정교한 질감과 더불어 하나의 재료에 집중하게 하는 그 스타일이 빛난다고 느꼈다. 단맛에서 단맛, 지방에서 지방, 부드러움에서 부드러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바이다보니 반전의 놀라움은 없지만 안도감은 더 크다.
디저트를 만들기 좋은 파리, 프랑스의 막강한 유통망과 인력 구조로 여전히 일상을 영위하기에는 충분한 조각들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격 역시 7유로 언저리로 한국에서 비슷한 비용을 생각하면 비교가 불가하다. 그러나 나는 시대의 위인들의 그림자에 짓눌려 오늘날 나아가지 않는 것이 더욱 두렵다. 그녀가 다시 새 시대를 선도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좋은 예술가들은 원래 훔치는 재능이 있기 마련이다. 그녀가 에르메에서 자유롭지 않듯이 이미 그녀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무수히 많은 제과사들이 비슷한 것을 만들고 있다. 정교함이나 발상의 즐거움은 조금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발상 자체는 공유되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르노트르의 시대가 있었다. Succès, Feuille d'Automne, Opera와 같이 르노트르의 레시피는 그의 손을 떠나서도 맛과 경험에 대한 아이디어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피에르 에르메나 클라레 다몽 역시도 시대가 지나 그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피에르 에르메의 무수한 카피에 비해 그녀의 카피가 없다는 점이 걸리지만, 사실 카피가 존재한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내려온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서울에 질식하리만큼 있는 에르메 카피중 에르메의 발상에 대해 적절한 존경을 표하는 제품은 거의 없다. 하물며 그녀의 의견은 누가 물려받을 것이며 누가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할 것인가. 나중에 그녀는 어떤 제과의 이름으로 기억될 것인가? 오늘날 그녀에게 주어지는 권위는 과연 어디까지 합당한지 나는 여러분에게 의문을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