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Celler de Can Roca, Grub Street, 2016
레스토랑 뉴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엘 세예르 데 칸 로카」에 대해 한 번 쯤은 들어봤으리라. 미쉐린과 월드 베스트 50 등의 평가들 덕에 한글로 "엘 세예르"같은 검색어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주방에서도 한국인 견습생들을 볼 수 있고 한국어로 된 언론 보도들도 풍성하다. 대통령의 초청으로 셰프가 방한하기도 했다. 과연 그러나 엘 세예르 데 칸 로카의 요리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는가.
요리를 축으로 하는 문화를 다루는 매체는 여느 때보다도 많지만 염증의 부위 또한 여느 때보다도 가렵다. 바로 텅 빈 감각이다. "맛있다"와 "바삭하다" 아니면 "질기다" 사이에서 공회전한다. 앞으로 서울을 비롯, 한국의 요리가 어떤 방향으로 갈 지에 대해서, 먹는 사람 입장에서 어떤 의미 있는 말을 찾기 어렵다. "엘 세예르 데 칸 로카(이하 "데 칸 로카")에 대한 한국어 정보는 현재 어떤 상황인가. 셰프가 한국을 찾은 게 한 번이 아닌 만큼 시간차를 두고 쏟아놓은 정보들이 발에 채인다. 세 형제의 의견이 갈리면 소수의 의견에 따른다는 레스토랑의 에피소드, 세계 각국의 식재료를 새롭게 사용한다는 아뮤즈부쉬, 기타 어디서 무슨 상을 받았고 가격은 얼마인지..
한국어 사이트인 네이버를 이용, 레스토랑의 이름을 알파벳으로 다시 검색하면 풍경은 달라진다. 블로거들의 사진이 쏟아진다.
내가 내용을 가공하면 실례가 될테니 직접 보시기를 바란다. 나는 2012년부터 2020년 1월까지 블로그 글들을 가능한 빠짐 없이 흝었다. 여러분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번 해보시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는 이유를 이해하기 쉬우니까.
「데 칸 로카」를 만날 수 있는 출판물은 매우 많다. 나부터 이 도서 이외에 「Anarkia」, 「The Desserts of Jordi Roca」같은 서적 또한 소장하고 있다. 호안 로카가 낸 가정용 도서도 몇 개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이 「데 칸 로카」인가. 그것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데 칸 로카의 존재로부터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들은 이견 없이 세계에서 가장 가고 싶은 식당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그만큼 무수히 많은 주목을 받았고, 그들의 지혜는 요리와 책 뿐 아니라 강의, 다큐멘터리 영화, 쇼 프로그램 등으로도 가공되어 있다. 네이버를 통해서도 손쉽게 피상적인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데 칸 로카를 통해서 그래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 적어도 데 칸 로카란 대체 무슨 요리를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데 칸 로카」는 그들의 장대한 세월동안 모인 레시피의 일부를 소개하는 레시피 북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느끼건데 이러한 도서는 요리를 하기 위한 요리책은 아니다. 레시피는 데 칸 로카의 주방의 환경에 알맞게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따라할 이익이 적다. 또한 레시피의 분량이 절대적이지도 않다. 알파벳 순으로 나열된 요리들의 개수는 그들이 해온 요리들의 극히 일부일 뿐이며, 특정한 재료를 사용하라고 지칭할 뿐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므로 결과물의 복제를 상상하기도 어렵다. 어떤 페드로 히메네즈를 쓸 지, 어떤 올리브를 쓰고 하다못해 이곳은 한반도이므로 그들의 대표적인 요리인 고등어를 따라하더라도 다른 결과물일 수 밖에 없다.(고등어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블로그들의 사진을 참고하시라.) 그렇다면 대체 왜 레시피를 읊어가며 수십년을 집대성해서 종잇장으로 만들었는가. 그 이유는 책의 본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데 칸 로카가 요리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다. 그들의 요리를 맛보지 않고, 냄새맡지 않고, 듣지 않고, 보지 않고, 만지지 않고 단지 활자와 평면 속에 복제된 자료들을 통해 이해한다. 한 접시의 맛이 어떨 지는 몰라도 그들이 어떻게 요리하고, 무엇을 요리하며, 왜 요리하는지를 말하고자 하는 점이 이 책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이자 레스토랑, 데 칸 로카의 존재 이유이다.
아쉽게도 책은 스페인어 또는 영어로만 접할 수 있고, 나는 영어로 된 판본을 읽었다. 한국어 판본이 없는 가운데 사실상 이 책의 일부를 대신할 정보 또한 한국어로 찾기 어렵다. 그래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것은 독자로서 이해한 내용이므로, 본 서적 이외의 매체로 접한 데 칸 로카와의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
데 칸 로카의 메뉴는 전형적인 현대 미식 레스토랑Restaurant Gastronomique의 형식대로, 제목과 함께 사용된 재료가 나열된 형식이다. 그러나 모든 요리에서 모든 재료가 나열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누락되는 경우가 잦다. 또한 요리의 모양은 완전히 먹기 편한 것 이외의 이유를 가지고 만들어지는 경우가 거의 전부이다. 요리의 각 부분들에서 데 칸 로카를 상징하는 주제들이 있지만 이 또한 긴 역사의 일부일 뿐이다. 이를테면 데 칸 로카의 아뮤즈 부쉬는 그들의 월드 투어를 비롯, 스페인의 입장에서 이국적인 요리들의 요소들을 주제로 하며, 데 칸 로카를 상징하는 디저트로는 향수가 있다. 야생 동물 요리로 사랑받는 멧도요새나 레이저피쉬같은 구대륙의 식재료들은 아시아인들에게 낯섦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런 것들으로 끝나면 매우, 매우 곤란하다. 그래서야 사치와 향락에 빠진 여느 파티룸과 다르지 않다. 데 칸 로카의 요리의 주제는 이외에도 다양한데, 직접적으로 알랭 뒤카스와 페란 아드리아와 같은 동료들과 함께함이 언급되는 것을 넘어서, 데 칸 로카는 그 삶의 위치를 재정의한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
첫째로 지중해이다. 그 어디도 아닌 지중해이다. 지중해의 땅과 바다의 존재를 주제로 한 요리들이 있다. 데 칸 로카를 상징하는 생선 요리 중 하나인 고등어를 다시 떠올려보자. 고등어 등의 선명한 줄무늬는 고등어의 생명선과도 같다. 방금 낚은 고등어들이 가진 등의 선명한 줄무늬는 무리 내에서 서로를 인식하는 도구로도 사용되지만, 인간에게는 고등어의 삶과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이므로 선명한 줄무늬는 낚시를 구경하던 객에게는 입맛을 돌게 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등어의 무늬는 사는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고등어 줄무늬 하나를 주제로 함으로서 이러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데 칸 로카는 이러한 지중해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하고, 또 탐구해온 결과들을 계승한다. 그들의 스승은 마트베예비치Predrag Matvejević나 플라Josep Pla와 같은 글장이들이다. 지중해에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서, 이들은 요리사의 입장에서 같은 고민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이 사람들 책조차 한국에 번역은 커녕 뭐하는 사람들인지 소개조차 되지 않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이야기를 하자면 지나치게 길어질 듯 하니 혹시 궁금하면 물어보시라. 댓글창이 없지만.
둘째로는 감각이다. 이들은 다른 예술의 형식들이 가지고 개발해온 감각들을 요리에 녹여냄으로서 요리가 종합적인 경험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색이 그렇다. 데 칸 로카의 색의 활용은 크게 두 가지의 측면을 고려하는데, 첫째로는 특정한 색채가 경험의 특정한 부분을 강화하거나 약화하는 성질이다. 인류의 본능에 새겨진 색의 편견을 발견하고 이용함으로서 요리의 위치와 경험을 조절할 수 있으며, 주방에서는 이러한 색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피력하게 된다. 둘째로는 그러한 색의 내부관계다. 채도의 변화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표현한 "오렌지"같은 요리가 대표적으로, 데 칸 로카는 이러한 색의 사용에 있어 기술적 진보를 꿈꾼다. 오렌지색이라면 이제 어떤 오렌지색인지에 대하여 탐구하고 그 결과를 요리를 통해 전달한다. 궁극적으로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통해 바그너가 보여주었듯이, 기존의 인식이나 경험의 근거 자체를 새로이 정의하는 것을 목표로 할 지도 모른다. 또한 원초적으로 요리로서 색은 재료와 맛을 기억하고 또 추측하게 하는 결정적인 단서이므로, 그러한 기억의 틈새를 파고들 때에도 사용된다. 이러한 방식의 유희는 이들이 소개한 이래 세계적으로 매우 흔해졌으므로 굳이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셋째로는, 기술자로서 기술 그 자체이다. 레스토랑의 자랑이며, 요리사의 인생은 곧 요리라는 기술임에도 기술 자체를 주제로 한 요리는 많지 않다. 데 칸 로카는 현대 요리법의 대표적인 선구자로, 그러한 요리법들은 그 자체로 레스토랑의 자랑이며 그 자체를 위한 요리들이 준비된다. 수비드가 가장 대표적이지만 2010년 첫 선을 보인 휘발성 화합물만을 입혀내는 향수 요리법이나 스코틀랜드에 헌사를 바치는 증류법과 같은 기법들은 그 자체로 왜 이러한 기술들을 사용하는지를 설득할 수 있는 요리를 내놓는다. 대표작은 새우로 만든 마티니가 있다. 갑각류의 맛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이 감비니의 위대함을 조금은 깨달을 것이다.
넷째로는, 요리의 예술로서의 정체성이다. 로카 형제는 자신들의 요리사로서의 행위를 예술이 아닌 기술의 측면에서, 세공업자나 조각가로 소개한다. 그러나 이들은 곧 다른 형식의 예술, 또는 예술의 주제들을 요리를 통해 표현하여 인간의 영역에 도전한다. 근래 한국어로 된 어떤 매체에서 식사를 통해 "여름을 맛보았다"는 내용을 본 일이 있다. 여러분은 여름을 마시거나, 씹거나, 삼킬 수 있는가. 사람은 그럴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일어나는 일이다. 로카 형제는 완전히 자유로운 기술자로서 요리 위에 자신들의 삶을 녹여낸다. 비록 무수한 한국어 매체가 <데 칸 로카의 아뮤즌느 그들의 어린 시절을..>만 반복하고 있지만 칸 로카는 요리를 제공하는 방식, 요리가 제공되는 형태, 담겨진 맛과 향, 그리고 그것이 경험되는 감각의 시간적 배열 등을 종합하여 마치 하나의 다른 인간 행위를 떠올리도록 설계한다. 그것은 음악일 때도 있으며 시(詩)일 때도 있다. 음악과 시가 완전히 구분되지 않는 것은 또 다시 우리를 놀라게 하며, 요리 또한 그럴 수 있음에 그들은 도전한다. 마치 누군가가 느낀 감각과 그를 통한 감정을 내가 다시 느끼는 것 처럼. 종종 그들의 요리는 온전한 감정의 전달에 도전한다. 조셉 로카는 "삶이 그 이전보다 나아지는 경험"을 전달하고자 웨이터와 객이 대화하는 시간까지 정해둔다고 서적에서는 언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데 칸 로카」는 장장 대여섯 시간에 이르는 식사의 대장정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또 많은 것을 듣고자 하는 인간행위의 무대임을 본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비록 특정한 요리를 하는 행위, 또는 객으로서 먹는 행위의 감각은 상상이나 기억에 의존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가 요리라는 일련의 요식행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요리사들과 레스토랑, 그리고 책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왜 요리하는가, 무엇을 요리하는가, 어떻게 요리하고 언제 요리하는가, 모든 것에 인간의 일부가 담기고 그를 통해 그 사람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름들이 책에 언급되므로, 책은 그 자체로서도 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좋은 흔적이 된다. 다미안 알솝부터 안젤로 코르비토까지 다양한 이름이 지나가므로 유럽의 요리 씬의 장면 장면들을 떠올리는 재미가 있다. 「El Celler De Can Roca」의 존재를 단지 비싸거나, 또는 저렴하거나, 맛이 있거나, 또는 없거나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여러 번 들여다 볼 재미가 있는 책이다. 출판된 지 시간이 좀 지나서 할인 가격으로 구하기도 편하다. 원래 60USD이지만 아마존을 통해 현재 37.71USD에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