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림 - 들깨 수제비의 길
들깨 칼국수라는 분야에서 이곳을 빼고 논할 곳은 별로 없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방송을 찾아서 일부러 나오기라도 하는 것인지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 만큼 굳이 꺼내서 이야기할 이유가 별로 없다. 다들 잘 알겠지. 그러나 긴긴 서울 생활 면요리의 사정은 나아지고 있는가? 서울에서 칼국수의 자리는 결코 넉넉치 않다. 냉면과 막국수가 해가 다르게 성장세를 이어나가는데 겨울에 칼국수를 찾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칼국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본래 대치동 「세드라」에 볼일을 보러 나왔지만 칼국수를 먹자는 음모를 꾸민 끝에 문을 열자 마자 볼일을 해결하고 나온 뒤 뱃머리를 돌려 서울의 반대쪽 끝으로 향했다. 칼국수의 답을 찾아서.
유독 서울에서는 칼국수에 보리밥이라는 앙트레가 이어지고 있는데, 전통의 구황작물 보리-삼백정책의 유산인 면요리라는 가락을 생각해보면 컨셉트가 이해가 가지만 논리적인 구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수육의 경우에도, 많은 곳들이 식사에 결핍된 단백질을 채우려 내지만 쌈과 면요리의 취식 과정의 불협화음은 가히 극적이다. 그래서 식사를 아예 짧은 코스로 구성하여 수육 쌈을 먼저 해치우는 동안 칼국수를 끓이는 방식으로 내는 곳도 있다.(대표적으로, 공주시의 「전통궁중칼국수」)
그러나 이들은 오늘 주연이 아니므로 굳이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다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엘림은 확실한 주관을 지녔는데, 두 가지 지점에 손을 썼다. 고추장의 맛의 역할을 감안하여 손을 썼고, 쌈채소를 제공하지 않는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왜 들깨칼국수인가. 사골칼국수나 바지락칼국수도 있고 이른바 육칼, 아니면 지방의 어탕국수나 건진국수 등 다른 국수요리를 변용하기도 한다. 그들과 들깨칼국수는 무엇이 다른가?
깻국을 원형으로 하는 듯한 들깨 수제비, 혹은 칼국수는 깻국의 시각에서 보면 완전한 개념오류다. 차게 먹는 음식을 급하게 퍼먹는데 불과하다. 그러나 보편적인 면 요리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 설정은 나름의 타당함을 넘어 특별함까지 있다.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바로 깨가 형성하는 묵직한 무게감body이다. 맹탕으로 마주하는 다른 국물들과는 달리 들깨 칼국수는 아무리 대충 만들더라도 들깨 덕에 지방이 풍성한 국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들깨 수제비들은 그 다음에서 실패하는데, 지방을 타고 전달할 풍성한 짠맛이나 감칠맛 등의 요소의 부재가 눈에 띄는 경우들이다. 깨는 무게감을 형성하지만 향이 썩 그럴싸할 뿐 맛을 채워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엘림의 들깨 칼국수는 현명하다. 들깨 향의 아래에는 다시마나 멸치 등을 쓴 기본적인 일번다시 비스무리한 육수를 뺀 인상의 감칠맛이 진하다. 완전하다고 하기에는 짠맛의 모자람이 거슬리지만, 들깨 국물이 가야할 길을 밝히고 있음은 자명하다. 앞으로 칼국수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가? 지방을 풍성하게 녹여내고 그 안에 맛을 품어야 한다. 사람들은 풍요로워질수록 국물에 무언가를 자꾸 띄우려고 하지만 진정 풍요로운 시대에 걸맞는 요리라면 이런 방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비록 이곳에서도 습관적으로 김치를 향하게 되니, 이제 국물 고민을 끝낼 수 있다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들깨에서 가능성을 본다. 막국수에도 들기름이 전성기를 맞았는데, 양념을 끼얹고 버무리는 요리에서와 달리 들깨는 국물에서 또 다르게 활약한다. 풍미를 더하고 지방을 더한다. 우리 국물에서 자꾸 빠지는 두 가지가 아닌가. 멋드러지게 점도가 있는 들깨 국물이 파이탄白湯보다 못할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