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 메종 - 1주년 갈라 디너

지난 일주일 쯤 잠실 소피텔에서 1주년 행사를 무언가 잔뜩 했다. 언제나 소피텔 서울은 브랜드의 컨셉트에 맞춰 "프랑스식으로 하겠다" 라는 것을 잔뜩 강조하고 있는데, 단지 한국에서 흔한 스타일의 서비스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경험의 외관이 보여주는 이미지와 내실이 다른 점이 적잖이 마뜩잖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다루어보기로 하고, 페 메종의 1주년 셰프 협업 갈라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

이런 한정 메뉴를 이야기하는 것은 원래 정규 메뉴보다 우선순위가 밀려야 하지만, 페 메종에 있어서는 정규 메뉴는 큰 의미가 없다. 빡빡한 인력으로 거의 뷔페를 해치우는데 주력하며 저녁 메뉴판은 크기는 하지만 셰프가 보이는 지점이 크게 없다. 프로마주 샤리오를 운영하고 있는 등 몇몇 부분에서는 급진적인 도전 정신을 지녔지만 정작 생선은 "오늘의 생선" 한 종류로 퉁 치고 스테이크 선택지는 반대로 많은 등 한국적인 정서가 뒤섞인다. 그런 속에서 셰프의 요리는 이런 행사 때만 전면으로 등장하는데, 에는 음식의 끝맛을 와인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흥미로운 식사를 내보였던 적이 있다. 자주 열겠다고 했지만 이 행사는 모종의 이유로 사라지고 말았는데 그 명맥 아닌 명맥을 1주년 갈라 디너가 잇게 되었다.

방문 전

페 메종의 예약은 네이버 예약 및 온라인, 전화로 가능하다. 예약 약 일 주일 전, 2~3일 전 확인 전화가 두 차례 있으며 당일에는 카카오톡 알림만 보낸다.

요리


총평: 텍스트가 없어서 놀라지 마시라. 원래 나는 종종 주제 의식이 갖춰진 코스에 대해 평할 때에는 개별 접시마다 긴 코멘트를 달지 않는 방식을 사용하곤 한다. 참고로 20점 만점제의 점수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빼면 서구에서는 썩 흔한 방식이다.

먼저 요리에 대해 말하자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섬유질이었다. 정말, 정말 많은 섬유질이 있었다. 바로 이전에 보여준 자신들의 요리에 비해서도, 보통의 프랑스 요리에 비해서도 그랬다.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한국 식문화에 대해 받은 인상이라고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첫 요리부터 미르푸아의 일원인 샐러리를 생으로 먹는 설정을 내서 방향을 뚜렷히 보여주고, 고등어 요리의 피클은 그러한 인상을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이후 랍스터와 쇠고기에 사용된 밤이나 고구마 등으로의 유기적인 연결을 노린 것인지 정말 한식 스타일의 야채 요리들을 봐서 그런 것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보다도 한정된 인력으로 준비할 수 있는 방식 중 고르고 고르다보니 이렇게 된 느낌도 있는 등 감상은 복합적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신선한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준다.

또 하나의 컨셉트는 그을음이었다. 가을의 풍취를 어두운 색, 울창한 숲이나 그 아래 낙엽 깔린 그늘과 같은 것으로 상정하고 탄(炭) 뉘앙스로 전체를 이끈다. 아이디어 자체는 썩 익숙한 것인 데다가 나름 재치있는 지점도 있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을린 향을 강조한 뵈르 누아젯, 그릴에 익힌 야채와 버섯 폼-트러플 등 향의 짝짓기가 적절하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정말 가을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좋은 느낌이 있었으나 오마르 로티는 컨셉에 맞춰 에스푸마로 향을 덧댔는데 갑각류의 살과 향이 적절히 어울리지 못했다. 애증의 '스테이크' 역시 나름대로 복잡한 주를 만들기 위해 애쓴 흔적이 돋보였고, 시트러스를 그을려 봄에 선보였던 방식과 유사하게 향의 뉘앙스를 연결해 요리를 완성하는 방식을 선보였으나 무르지 않은 섬유질을 씹다 보면 감각이 폭발하기보다는 점잖게 가라앉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디저트는 언제나 페 메종의 가장 드러나는 취약점인데, 역시 반죽을 굽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적당한 무스와 소르베를 합친 무언가로 급하게 마무리했다. 빵 내부(미)의 상태도 일정하지 못한 느낌이 있는 것을 보면 이 디저트 역시 궁여지책의 설계라는 느낌이다.

와인 짝짓기에 있어서는, 와인 디너와는 달리 선택의 폭이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부르고뉴 샤르도네, 레드는 보르도 블렌드라는 안전한 선택으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식전 행사부터 디저트 와인까지 내는 등 컨셉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지만 셰프의 요리가(특히 이런 행사 때에는) 전위적인 요소나 현대적인 감각을 반영하려고 하는데 반해 와인은 딱히 그런 방향성에 공감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적당히 통맛이 밴 샤르도네에서 트러플로 이어지는 향의 뉘앙스는 훌륭했으니 큰 후회는 없다.

와인 디너와 달리 요리의 방식도 바뀌고, 해외 셰프 초청도 하는 등 굉장한 공을 들인 행사같지만 무언가 어정쩡하게 끝났다. 식사에 앞서 셰프들이 소개되었지만 결국 어디서 근무했네 같은 이야기나 지나가고 그들이 생각하는 요리에 대해 들을 시간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사람들의 목에는 KT 목걸이가 걸려있었고 이외의 테이블에는 각자 초대받은 귀빈을 접대하느라 바빴다. 관계자들과 관계자들의 관계자들끼리 하는 행사로 끝날 심산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곳의 셰프를 포함해 서울의 국제적 호텔 체인 내에는 생각보다 많은 요리사들이 근무하고 있지만 누구도 그들의 요리가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제 그들도 딱히 말하지 않는다.

서비스:

가격: 1주년 갈라 디너의 가격은 KRW 200000이었다(음료 포함).

음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