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ia Fernandez Rivera, Condendo de Haza, Ribera del Duero 2017
신세계L&B의 대형마트 판매용 포트폴리오의 와인으로 자리가 굳어있는 뻬스께라의 와인들은 사실 맛에 있어서는 크게 논할 거리가 없다. 빈티지마다 차이가 있다지만 글쎄, 언제나 비스무리한 불볕더위에서 오는 블랙커런트향, 또 적당히 빤 나무통의 터치. 국내 굴지 규모의 수입사가 움직이는 물건인 만큼 언제나 비스무리한 편안함을 안긴다.
비단 신세계 뿐 아니라, 국내 어느 대형 마트와 와인 소매업장들을 다녀보면 이런 와인이 꾸준히 자리잡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구운 고기, 매운 요리와 적당히 어울리기 때문이다. 담배와 오크향이 그릴에 구운 고기와 연결되고, 고기에 맞설 만큼 힘도 있다. 그럼 그게 뭐가 나쁜가 싶지만, 반 발짝 물러서면 보이는 풍경이 있다. 이 가격대에서 제공되는 옵션들이 다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사람들은 고기구이가 아니면 와인을 마시지 않는가? 와인의 선택지가 이러하니 안 그렇게 되려다가도 원래대로 돌아간다.
한국에서 거의 즐기지 않는 안주류인 치즈나 염장육, 채소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적어도 일상의 요리와의 궁합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을 넓혀보아야 하지 않을까? 탕수육이나 돈까스, 피자와 같은 요리들에 짝을 맞출만한 와인들은 드넓은 고기구이의 섹션에 비해 단촐하다.
개인 차원에서야 마트에서 구매하지 않고 귀찮게도 와인 소매점을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읽는 주류 문화의 모습에 눈 감기는 어렵다. 와인이 아닌 다른 주류들은 좀 다른가? 다들 위치가 꼭 정해져 있는 듯한 풍경 사이에서, 음료의 자리가 빈 요리들이 너무나 많다. 소믈리에들을 모셔놓고 "이 요리에는 무슨 와인" 식으로 작성한 홍보 자료들은 이미 넘쳐나는데 아무 효과가 없다. 사람들을 진정으로 음료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