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rilège - 2024년 봄
플로릴레쥬의 셰프 드 퀴진 카와테 히로야스(川手寛康)는 어느새 15년차의 베테랑 헤드 셰프가 되었다. 레스토랑보다는 카페로 유명한 미나미아오야마에서 시작한 플로릴레쥬는 모리의 야심찬 프로젝트인 아자부다이 힐즈에 입점하며 현재 씬의 최고 스타 지위를 공고히 했고, 매일 하루 단위로 풀리는 예약은 빠르게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플로릴레쥬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첫째로는 파격이지만, 실은 단순한 해체나 무작위성으로 보이지는 않는다(이는 후술). 두 번째는 한국 문화권의 화자 입장에서, 빈호의 전성빈 요리사. 자체적으로 별을 딴 지금은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 하지만 초기에는 그의 이름 앞에서 플로릴레쥬를 지우기 어려웠다.
총평: 히로야스 요리사의 데뷔는 그에게는 계속해서 그림자가 쫓아다녔다. 하나는 역시 레페르브상스, 둘은 몽펠리에의 전설적인 형제, 자크와 로렐 프루셀의 레스토랑 Jardin de Sens이다. 쌓아올린 것이 많은 이들을 앞에 두고 있다 보니 결국 그들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았을까 하는 세간의 우려는 불식되었다. 지금 히로야스 요리사의 세계관을 종합하자면, 하나는 다채로운 영감, 어쩌면 현재로서는 일본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내지 가능성을 찾기 위한 어떠한 열정이다. 아시아(특히 일본과 동남아, 약간의 한국-김치 한정)의 영감을 프랑스의 조리법으로 녹여내는 스타일은 이제는 진부하다고까지 할 수 있겠으나, 히로야스는 독창적인 감각으로 익숙한 낯섦을 다시 한 번 벗어난다.
계절감을 드러내는 데에는 쿄료리 스타일의 일본 야채가 빛을 발한다. 일본의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라고 할 수 있는 시라코타케노코(白子筍), 역시 봄의 산채를 대표하는 참나래고사리(こごみ)같은 재료의 사용은 프랑스 요리라는 기준에서 전위적이면서도, 쿄료리 기준으로는 다시 전형적인 이중의 감각을 드러내면서 조리를 통해 각각의 매력을 탁월하게 살렸다. 시라코타케노코는 부드러움을 강조한 식감에 더해 햇빛을 보지 않은 흰 야채의 매력적인 단맛, 다시 옥수수마저 떠오르게 만드는 고소함으로 층층이 무장했다. 청나래고사리와 은어 역시 섬세한 텍스처를 기반으로 역시도 은어의 단맛을 풀어내는 솜씨가 빛난다.
하지만 일본적인 것에 몰입하기 때문에 용납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야채가 아닌 반죽의 텍스처인데, 오야키부터 빵, 플랑 위에 띄운 완두콩까지 길게 이어진 전분이 질겅거리는(한국어의 쫄깃함까지는 가지 않는다) 식감을 연출하는데 일본인에게는 익숙함을 떠올리는 포인트가 되겠지만 그 이외의 맥락에서는 유의미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당장 내 왼편의 동유럽인은 빵을 한 번 먹어보고는 다시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렇게 플로릴레쥬를 이해하는 첫 단계는 일본적 재료의 문맥에서 시작되지만, 그 완성이 그곳에서 그치지 않는다. 플로릴레쥬의 주방은 단순히 관행을 좇아 계절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허를 찌르는 야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넓게 불려서 그대로 섬유질을 전시한 듯한 박고지-원래 하얀 물건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와 베이네의 극적인 질감 대비, 젖산 발효의 특징 위에 산초로 마치 고추 이전의 원시의 김치를 이해하고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김치쌈의 유기적 연결성은 극적으로 야채의 장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를 요리 전체의 맥락 속에서 녹여낸다. 톳 무스를 맛보았을 때에는 지금까지 먹은 모든 새콤달콤한 톳 무침에게 되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째서 이런 가능성을 감추고 있었냐고.
물론 완벽하지 않은 시도들도 있다. 뿔닭을 담아낸 소스는 뿔닭의 진한 맛에 강한 신맛으로 부딪히는데 좋은 재료끼리 너무 맞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스의 선명도가 높은 것은 보통이라면 칭찬할 일이지만, 뿔닭의 껍질 아래 지방이 풍성하다고 해도 베리류를 맞춰내는 푸아 그라같은 정도는 아니다(본지에서 다룬 뿔닭 중에는 프란첸에서 더할 나위 없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요리 이름마저 "兼ね合い"지만 균형점에서 만나지 못하고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와삼봉 역시 굳이 그 형태를 노출하는 것이 아이스크림의 경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지점들은 플로릴레쥬를 평가하는 데 큰 과가 되는 요소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플로릴레쥬는 일본의 방대한 레퍼런스와 프랑스의 문법을 자유롭게 오가는 자신만의 길을 탁월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일본의 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라면 이곳에서의 식사는 각별한 경험으로 남으리라. 그 재미는,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돈 키호테에서 <암라디스 데 가우라>같은 기사도 소설이 언급될 때와 같다. 맥락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배치와 용법의 탁월함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다. 성직자와 이발사가 돈 키호테의 서재를 불태우기 전 몇 권을 꼽아 "이것만큼은 유익하다"고 하는 그 순간의 재미를 식사에서 느낄 수 있다. 단순히 비교적 업력이 짧고, 프랑스에서의 경력이 있으며,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해서 그런 레스토랑들과 같은 맥락으로 엮일 여지는 전혀 없다. 플로릴레쥬와 비슷한 레스토랑을 꼽으라면, 나같으면 차라리 서울의 기가스를 꼽겠다. 기가스는 한국의 조리 문법을 굳이 차용하지 않는 차이가 있지만(오히려 서양의 전형성에 무게를 둔다) 제철의 야채가 가진 생명력을 주제로 그 야채의 전형적 인상이 아닌 탐구를 통해 식물의 진가를 추출해내고야 마는 그 버릇에는 닮은 것이 있다.
서비스: 일부러 조성한 느낌이 역력한 근대 여관 스타일 공유 식탁으로 서버의 동선이 상당히 비효율적이며-이런 탁자는 뒤에서 누군가가 돕지 않는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접객의 방식 자체도 경험에 관여도를 높이려고 하지 않는 뉘앙스, 일본어로 소통하는 경우에는 차이가 있지만 외국인에게는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듯 하다.
분위기: 공간의 구성만 보면 함께 담소라도 나누어야만 할 것 같은 개방감이 있지만 어두운 톤이 그것을 제압한다.
음료: 활자로 된 음료 목록이 없고 상담을 통해서만 주문이 가능한 어센틱 바(?) 유사의 프로그램. 논알콜 음료는 복잡하게 만들어지지만 반드시라는 느낌은 아니고, 와인은 요리와 반드시 맞는다기보다는 적절한 사정이 여럿 개입한 느낌이다. 메르시앙의 리슬링이 나쁜 음료는 아니지만 리슬링을 맞추어 낸다면 분명 다른 선택지도 있지 않겠는가? 많은 음료가 그 정도의 선에 머무르고 있다.
가격: 점심 10,000 JPY, 저녁 20,000 JPY. 음료 포함 인당 30,000 JPY 추천.
- (+81)-3-6435-8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