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tzén - 2023년 여름
매 휴가 때마다 각오한다. 먹는 것에 잡아먹히지 않으리라. 그리고 또 실패한다. 단순히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좋은 식사를 하고자 하는 바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느끼는 갈증이나 문제점을 외유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면 거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휴식이 되어야 할 여행은 빽빽한 일정으로 가득차고, 좋은 음식으로 지쳐버린 심신은 진정한 안식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식도락가에게는 언제나 오트 퀴진 수준의 식사는 호기심이나 비용 대비 편익에 대한 강박에도 불구하고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합리적 이성마저 마비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프란첸에서의 식사가 그 중 하나였다. 레스토랑 프란첸은 굳이 다른 찬사를 더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북유럽을 넘어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만족도와 새로움을 경험하는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쿄요리의 짙은 영향을 받은 프렌치라는, 뉴 노르딕과는 썩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는 그이지만 프란첸은 자신만의 길을 걸어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레스토랑으로 올라섰다. 물론 이러한 찬사가 여러분의 시선을 가리는 색안경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프란첸의 요리를 단순히 북유럽의 유행 중 한 갈래라고 오해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여간 그런 프란첸에 자리를 했다. 긴 식사 시간, 쉽지 않은 예약, 모든 사항을 예외로 처리하는 그러한 한 끼의 식사를 위하여.
방문 전
레스토랑 프란첸의 예약은 온라인 웹사이트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방문 전 이메일 및 전화로 세부 사항에 대한 조율을 하게 되며, 방문 전일에도 확인 전화가 있다.
요리
프란첸에서의 경험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마치 영화의 스포일러를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독자와의 현실적인 거리를 감안해 차라리 자세히 설명하겠다. 딱히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매장의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간단한 설명이 진행된다. 그리고 식사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 라운지에서의 간단한 리셉션이 시작된다. 가정집 거실처럼 꾸며진 라운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서는 건스 앤 로지스의 Welcome to the Jungle이 시작을 알린다. 이후 자세히 다루겠지만 음료의 구성이 상당히 인상적이기에 샴페인이 분명 매력적인 선택지겠지만, 코스 전체의 진행을 감안하여 가볍게 시작하기를 택했다.
프란첸을 위해 만든 라거 맥주마저도 쌀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레스토랑에 끼친 일본의 영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물론 쌀을 넣는 스타일의 맥주는 중국과 동남아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된다는 점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이들이 생각하는 일본이 실제로 대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다시 의문을 표할 수 있다.
항상 강조하지만 - 이런 종류에 대해서는 큰 코멘트를 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어떤 그림을 연출하냐만이 중요한데, 프란첸에서 오르되브르로 표현하는 식사의 구성이란 역시 프렌치라는 정체성과 더불어 글로벌한 배경과 창조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감자전 비슷한 구성에 생선 알을 더해 만드는 로라코르는 도피누아즈와 유사한 감자의 섬세한 질감과 더불어 감자의 고소한 맛이 진하여 지역 재료와 지역 요리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면,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새이버리로 풀어낸 마카롱이었다. 몇 종류의 시트러스에서 당근, 대추로 이어지는 시퀀스가 작은 한 입에서 복잡하게 얽히면서 전체를 지방이 감싸는 구성이 감각적인 섬세함과 정교함을 드러낸다. 이외에도 (앞으로 계속 보게 될) 제철을 맞은 딸기와 랑구스틴-그리고 둘 사이를 잇는 장미향 등에서도 프란첸 특유의 감각이 돋보인다.
그리고 나면 자리를 옮겨 오늘의 식사에 대한 본격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주방 투어가 진행된다. 일종의 쇼맨십이라고 볼 여지도 있지만, 뵤른 본인의 에고를 과장해서 나타내는 대신 다양한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는 요리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눈에 띈다. 물욕이 많은 사람이라면 프란첸의 까브는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음료의 경우 짝짓기를 선택하지 않았으므로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다만 첫 요리의 경우 짝짓기에 상관없이 일본술이 짝짓기로 제공되는데, "유키만만"으로 국내에서 잘 알려진 데와자쿠라였다.
계절 한정으로 나오는 나마겐슈를 낸 만큼 요리 역시 전형적인 일본주의 짝짓기에 안전한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쿄요리의 다시를 모사한 듯한 스프의 무게감에 있어 조리에 대한 자신감이 돋보였다. 찬 요리이기에 둔감하게 느껴질 법한 맛까지도 강하게 다가오는 동시에, 두 종류의 알을 쓰는데도 촉감이 어색하게 빗맞지 않았다. 물론 캐비어의 감칠맛에 기대지 않는 방법으로도 가능한 요리같았지만, 그러지 않음으로서 일본이 아닌 유럽 요리로 남았다. 방점은 역시 호지소로 손쉽게 전체를 장악한다. 어딘가에서 너무나 잘 알아왔다.
하지만 앞선 요리가 전형적인 방식에 머물러, 일본향의 프렌치라면 일본에서도 유럽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 다음의 이 요리가 나를 그대로 쓰러뜨렸다. 노르웨이 영해에서 잡힌 랑구스틴을 데친 다음 쌀풀을 아주 얇게 입혀 살짝 튀겨낸 것을 통카빈과 타라곤, 오렌지를 넣어 만든 딥 소스로 연출한 것으로 소스만 계절별로 바꿔가며 내고 있는 프란첸을 상징하는 요리 중 하나이다. 통카와 타라곤이 후각을 열어젖히는 가운데 랑구스틴의 단맛과 조리의 정도가 이 이상은 있을 수 없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우리에게는 랍스터가 더욱 유명하지만, 과연 오트 퀴진의 왕좌에 오를만한 재료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그야말로 극적이다.
- 물이 제공되는 이유는 손으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차완무시 변형의 요리는 이미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형식이고, 발드호텔 소노라에서 그 끝에 다다른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다지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일본 뿐 아니라 한국도 공유하는 것이 달걀 커드인 만큼 단순히 서양인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의심은 곧 반전되고 말았다. 이쯔음에서 프란첸이 선사하는 경험은, 엄청나게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는, 블록버스터 전쟁 영화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공간 중앙을 차지하는 주방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동적인 분위기가 흥을 돋우기도 하지만, 선보이는 음식이 그렇다. 쉬어갈 여지를 남기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가득 찬 느낌을 낸다. 굳히는 방식에 있어 러프하게라도 차완무시라고 부르기 어려운 음식이었지만, 달걀과 다시를 바탕으로 한 요리라는 최광의의 정의를 적용할 수 있다면, 이 요리는 그 안에서 가장 화려한 축에 들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죽합은 여름에 먹을 수도 없고 찾을 이유도 없는 물건이지만 북유럽에서는 여름에 만날 수 있는 재료라 반가운 것도 있지만, 죽합 이상으로 일본식으로 낸 다시의 파괴력이 좋았다. 차완무시의 열쇠가 결국은 다시마에서 우러나오는 감칠맛이라는 본질을 꿰뚫고 있는 듯, 질감을 어그러뜨려서라도 감칠맛을 당기는 느낌이었다. 어찌 보면 형식이 내려주는 답에 구속되지 않는 사람만이 도전할 수 있는 그런 요리였다. 일본이나 한국 어느 국가의 기준에 빗대어도, 분명 달걀의 질감은 실패였다. 하지만 그런 조리로 그려내는 쾌락은 각별한 경험을 가져온다.
생선은 앞서 로라카를 만들 때 등장했던 것을 사용하여 서사를 부여하는데, 정작 대구는 다소간의 약점을 보인다는 느낌을 주었다. 북해 대구는 추운 날씨를 좋아하다보니 여름에는 냉기를 찾아 영국에서 스칸디나비아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렇더라도 여름은 여름이다보니 분명 힘이 빠지는 느낌이 있다. 꿀과 지방, 샹트렐로 그 위에 맛을 겹겹이 얹어 대구에게 비어있는 자리를 채우려는 듯한 방식이 솔루션으로 제시되었는데 각각의 재료에 들어간 것이 온전한 합으로 현출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소스의 연출에 있어 특정한 방식을 회피하는 데 치른 대가가 크다.
프렌치 토스트는 기존의 트러플을 사용한 것이 프란첸을 상징하는 요리와도 같았지만, 페리고 트러플 시즌이 아닌 관계로 해당 요리는 내지 않고(트러플 자체는 호주의 블랙 트러플을 쓴다). 장어의 단맛과 쇠고기의 짠맛, 두가지가 부딪혀 내는 시너지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만 기존의 프렌치 토스트를 대체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두 종류의 단백질의 질감을 하나로 맞춘 조리의 정교함, 그리고 파를 처리하는 방법에는 박수를 보낸다. 섬세한 칼질 외에도 파의 향을 더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식이 있다.
살미아키를 레퍼런스로 하는 일종의 트루 노르망으로, 보탤 것이 없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리코리스를 먹는 이유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들어있었다. 단맛과 지방을 한 켜씩 덧대니 그 자극에 필요한게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지나간 살미아키의 강렬한 짠맛에 후회만 남긴다.
브레스 닭, 뱅존, 모렐의 삼각편대라는 남프랑스 부르주아 요리의 고전적인 레퍼토리를 가져온 뿔닭 요리는 마지막에 와서야 프란첸이 프렌치의 본산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었다. 뱅존의 견과향과 어울리는 뿔닭의 진한 맛, 트러플과 유지방, 그리고 살짝 당기는 단맛과 잎새버섯. 일본과 프랑스의 문법을 좋을 대로 흡수하면서 아울러낸다.
이즈음 해서야 비로소 빵이 제공되는데, 미뤄둔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의 빵, 아니 버터였다. 아주 부유하게 만든 브리오슈 느낌의 빵은 흠잡을 데 없는 정도였다면, 버터는 버터의 다음 차원의 영역에 있었다. 버터 문화가 있는 나라라면 어디에서든 다양한 버터를 먹어보기 위해 노력하지만, 프란첸의 버터는 그중에서도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집중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기름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기름을 기름진 빵에 발라먹어도 기름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어찌 보면 가장 호화로운 요리였다.
식사의 강한 감칠맛에서 흐름을 넘겨받는 데에는 토마토를 사용하는데, 전형적인 지중해 토마토와 달리 오히려 한국의 토마토와 유사한 프로필을 보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얼핏 보면 혁신적이지만, 역할을 해내는 것 이상의 역할은 주어져있지 않았다.
스웨덴에서 오만 디저트에 진들딸기 잼을 얹는 문화에 대한 오마주 느낌을 강렬하게 내는 복숭아-진들딸기 디저트는 마지막까지 숨쉴 틈을 주지 않았다. 다소간 풀내음을 가진 라즈베리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소르베의 질감에 흠이 없는 가운데 아래 깔린 우롱차 크림에서 나는 더 이상 판단하기를 주저했다.
여기까지 주방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다시 공간을 이동해 식후의 여운을 즐긴다. 굉자히 밀도가 높은 강행군인 만큼 이 휴식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대로 공간을 떠나기에는 너무나도 집중하고 있었기에 주저앉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소간 조금만 마시긴 했지만, 만날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가격대의...를 만났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쁘띠 푸는 오르되브르를 만드는 재료들을 그대로 사용하여 만들었다. 살미아키처럼 보이는 것은 무려 흑마늘이다. 전기밥솥으로 만드는 흑마늘의 바로 그 느낌이 이역만리 건너 땅에서 퍼져나온다.
총평: 프란첸은 여느 뉴 노르딕 레스토랑처럼 세계를 바꾸고자 하는 거대한 포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가 선사하는 세상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환상처럼만 보인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삶. 프란첸의 요리가 내세우는 가치관이다. 스웨덴과 프랑스라는 두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도, 일본에 대한 동경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자세하게 따지고 들자면 기술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프란첸은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즐거움, 그리고 경험의 지평을 넓혀가는 즐거움이 그것이다. 프란첸은 즐거운 삶을 대변한다. 프란첸은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곳 같지만, 공간을 채운 요소들을 보면 그의 영역은 시간마저 넘나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금류와 뱅존이 에스코피에나 유진 브라지에 시대를 떠올리게 하듯이.
배워갈 것은 많지 않을 수 있겠지만, 얻어갈 것은 많은 식사였다. 단순한 경탄부터 살아가며 생각하는 방식까지. 물론 보이지 않는 주방에서는 더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마저도 오늘의 교훈 삼을 수 있을까.
분위기: 흐름에 따라 공간이 계속 바뀌는데, 공간마다 설정하고 있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프란첸은 이러한 공간 변화를 대비를 위해 이용하고 있고, 그 위력은 크다. 접시에서 접시로 넘어가는 흐름만큼 공간에서 공간의 흐름 또한 극적이다.
서비스: 전문적으로 훈련된 응대 방식이 돋보인다. 기꺼이 가까워지는 방식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전형적인 프로페셔널함이 묻어난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개인에 대한 인성 평가 따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분야에서 전형적으로 기대되는 바가 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이 있다. 그것을 안다면 프란첸은 이 부분에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료: 구대륙 위주의, 흥미로운 생산자가 많은 것이 돋보인다. 그랑 크뤼에 집착해도 좋고 가격 대비 가치가 있는 와인을 찾아 뒤지는 것도 좋은 즐길거리 많은 리스트. 말이 좀 우습지만 DRC의 가격이 좋다. 짝짓기의 경우 가격이 높은 짝짓기보다 오히려 논알콜에 더욱 의미가 크다는 느낌을 준다. 좋은 랑구스틴에 좋은 슈페트레제를 어울리는 것이라면 너무 쉽게 가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