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밥과 달걀

볶음밥과 달걀

최근 약 2주를 정말 볶음밥에 쏟아넣었다. 두 시간까지는 각오하고 볶음밥을 위해 달렸고, 같이 먹을 이가 없다면 홀로라도 먹었다. 어느 날은 점심도 저녁도 볶음밥을 먹었다.

볶음밥이라고 하지만 내가 말하는 볶음밥이란 좁은 의미이다. 개념적으로 한국인이 사용하는 볶음밥이라는 표현을 분설하면, 최협의의 볶음밥에는 한국식 중화요리인 볶음밥이 있다. 통상 아무런 형용사도 붙지 않은 상태의 볶음밥 그 자체로, 쌀밥에 파, 달걀이라는 재료, 웍과 볶음이라는 수단에서 벗어남이 없다. 당근이나 약간의 돼지고기, 경우에 따라 새우 정도로는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는 협의의 볶음밥이 있다. 유사한 스타일이지만 한국식 중식이 아닌 대부분의 중화요리 스타일의 볶음밥이다. 차슈를 다져넣는 챠항/야키메시, 양저우차오판과 같은 이국적 색채를 띈(애초에 이국 요리이지만) 중화식 볶음밥이 여기에 속한다. 양념 베이스가 들어가기 시작하는 나시고렝이나 내는 방식이 다른 푸젠식부터는 이 범주에 속하지 않고 광의의 볶음밥에 포함된다. 볶음밥이라는 이름만으로 등장하게 된다면 예측과 다른 것이 나왔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들이다. 본격적으로 중화의 틀을 벗어난 김치볶음밥이나 후식 볶음밥도 광의의 볶음밥이다. 최광의의 볶음밥? 정말 밥을 열에 볶는 방식으로 조리한 모든 것이 포함되겠지만 무의미한 강학상 개념이다. 이 글에서는 달리 명시하지 않는 한 최협의의 볶음밥만을 다룬다.

독일부터 일본까지, 고급 식당부터 허름한 곳까지 나는 볶음밥을 찾는다.

프랑크푸르트의 "Madame Mei"에서 먹었던 트러플 새우볶음밥.

그리고 최근 오랜 업력을 자랑하는 가게들을 두루 둘러보며 하나의 의혹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 전래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의 볶음밥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하면, 바로 달걀의 분리라는 생각이다.

달걀의 분리라니, 콩소메라도 끓인다는 말인가? 사진에서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저런 사파 중의 사파같은 비주얼의 볶음밥이라도 달걀물로 만들어 하늘하늘 찢어진 모습이 볶음밥 속 달걀의 모습이다. 전형적인 다단계의 조리를 거친 볶음밥부터 시큰둥하게 달걀물을 마지막에 풀어서 엎어내는 방식이건, 달걀물에 밥을 넣어 노랗게 연출하는 방식까지 볶음밥들은 구식과 신식, 저가와 고가, 중국과 외국을 넘나들면서도 달걀이라는 것은 달걀물로 풀어 헤친다는 정신만은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근래 내가 연달아 맛보았던 옛 모습(이라고 생각되는) 볶음밥들은, 달걀을 품고 있지 않았다. 코팅이니 알알이니 하는 미사여구는 집어치우고, 달걀이 튀어나와 있었단 말이다. 의심된다면 스크롤을 올려 사진을 보라! 물론 달걀의 중복이라는 타협점을 제시하는 곳들도 더러 있지만, 옛스러운 스타일의 볶음밥에서 볶음밥 자체의 달걀은 분명히 비중이 적다. 기름에 충실히 볶은 밥과 향을 충실히 피어올리는 파의 존재감만이 압도할 뿐, 달걀의 고소한 맛은 오로지 후라이에만 존재한다.

그 이유는 어째서인가? 분주히 돌아가는 주방의 사부에게 감히 묻지 못해서 여기서부터는 추측에 불과하다. 짚어보자면 달걀이 귀했던 우리나라의 옛날을 생각해보면 달걀물을 다량으로 만들어두는 인프라의 구축이 어려웠을 수 있다. 그나마 볶음밥에는 계란국이 사이드킥으로 따라붙기는 하지만, 한국식 중식의 문을 열었던 짜장과 짬뽕에는 달걀의 여지가 없다. 화식(和食)으로 분류되던 오야코동이 짜장면 두 그릇 값에 필적하던 시대에 가뜩이나 귀한 달걀을 다량으로 소모하는 방식으로 가게를 운영할 이유가 없었지 않았나. 이러한 추측은 짜장면에 달걀이 올라가는 지역적/시대적 관행과 충돌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구체적인 근거를 대기는 어렵지만 이는 과거와 더 과거를 혼동하는 지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볶음밥에는 달걀을 사용하지 않고 튀긴 후라이를 올리는 스타일은 60년대 이후로 이미 굳어진 듯 보인다. 짜장면에 올라가는 달걀 후라이가 과연 같은 시대를 살았을까? 지역에 따른 편차가 있었겠지만 생각건대 브로일러 양계의 도입 이후가 아닌가 한다. 달걀이 올라간 짜장 또는 간짜장의 관행이 퇴색되어 일부 지역의 명물이나 노포라는 이름의 서브컬처 정도로 격하된 것과 달리, 볶음밥의 달걀 용례는 적극 확장되어 맨밥에 달걀물을 익혀 올리고 볶음밥이라 우기기도 하는 실정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두 후라이는 딱히 같은 운명을 공유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나는 이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낡은 방식의 한국 볶음밥에서 가능성과 미래를 꿈꾼다. 흰자는 바삭하게 익히면서도 노른자를 반숙, 또는 그보다 아슬아슬한 상태로 살리는 기술은 분명 달걀 먹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기름을 담뿍 머금어 바삭하게 부서지는 흰자의 즐거운 기름맛, 그리고 웍헤이로 한껏 그윽하게 향을 입히고 간단한 조미로 짭조름하게 입맛을 당기는 볶음밥을 몇 술 먹다가 노른자를 터뜨려 적시면 또 다른 즐거움이 가득하다. 나는 흰밥에 먹는 달걀이라면 애초부터 노른자를 터뜨려 센불에 바짝 익힌 납작한 후라이를 사랑하지만, 볶음밥에서 찾는 부드러운 노른자의 고소함은 또 다른 매력이다. 게다가 달걀 후라이! 그 어느 기호보다, 그 어느 미소보다 확실한 서민적 호스피탈리티의 상징 아닌가? 두 개의 노른자를 마주하는 날이라면 당신은 그 반가움에 보답을 해도 좋다!

단순히 낡은 것에 대한 안타까운 칭송 따위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달걀의 부족이라는 환경에서 등장한 모습일지라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다. 서울 뭇 호텔에서 갈색빛이 되어버린 광동식도 한국식도 아닌 무언가보다도 가끔은 이 결핍의 아름다움에 목이 마를 때가 있다.

  • 짜장 따위 때문에 점점 염도를 잃어가는 오늘날 볶음밥의 모습은 안타까울 지경이다. 전국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 가게라고 해도 어릴적 철가방에 실려 오던 이름 모를 주방장의 볶음밥보다 쾌락의 선명함이 흐릿할 때가 많다. 짜장을 내지 않는다며 당당한 자세를 취하는 곳이라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숙명이다. 볶음밥은 면 요리와 달리 애초에 완성품인 밥을 굳이 조미를 하는 음식이며, 심지어 그를 위해 차게 만들거나 물에 적시는 등 다시 못 먹을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음식이다! 약하게 조미할 것이면 왜 그렇게 볶아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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