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briel Kreuther - 2022년 여름

이 책의 존재 때문에라도 크루더 셰프의 요리는 반드시 만나볼 작정이었다. 뉴욕은 세기를 초월한 유명점들, 21세기 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를 호령한 프랑스 요리사들의 도시이지만 반대급부로 새로운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은 많지 않다. 길잡이 노릇을 하는 각종 순위 매기기 업체들도 딱히 뉴욕의 프랑스 요리에 관심을 보내지 않으며, 도시의 주민들 역시 제국의 요리에 더욱 다양한 빛깔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그러한 맥락에 예외로 존재한다.

방문 전

레스토랑 가브리엘 크루더의 예약은 전화, 이메일 및 Resy로 가능하다. 본인은 이메일을 통해 예약하였다. 그래도 예약은 Resy를 통해 관리할 수 있다.

요리

식사에 앞서 와인 스펙테이터 리스트 어워드에서 최고 등급으로 격상된 와인 리스트를 먼저 살펴보았는데, 리스트가 주는 인상과 다르게 식사의 시작이 주는 인상은 판이하게 달랐다. 김치를 비롯, 거의 전부를 아태지역의 레퍼런스에 몰아넣은 가운데 그나마 프랑스 흔적이라도 남은 것은 크로켓이라는 형태 정도이다. 전반적으로 의도가 선명한 신맛, 열대과일향 위주의 구성으로 입맛을 돋군다는 고유의 기능, 그리고 세계적인 대도시라는 장소적 맥락을 동시에 엮은 것으로 보인다. 프레젠테이션은 흥미롭지 않았으나 니콜라시카를 연상케 하는 젤리는 나름 향이 복잡한 것이 기억에 흐리게 남았다.

Kugelhopf with scallion, chive, fromage blanc

장 조지, 르 베르나르댕 등의 전형적인 업스케일 레스토랑이 빵 바구니를 이용해 전통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면(대한민국에는 이렇게 제공하는 곳이 모두 사라졌지만 이것이 전통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가브리엘 크루더는 빵에도 강한 의견을 주입시켜 자신만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구대륙에서도 거의 남지 않은 중세식 대형 화덕을 운영해본 빵장이인 가브리엘에게 나름 빵에 대해 큰 기대를 품었는데, 비록 그는 내가 기대한 방식으로 빵을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만족시켜주었다. 남독일식 표기인 Gugelhupf가 아닌 알자스식 표기를 사용한다는 점, 케이크가 아닌 빵이라는 점, 그냥 빵도 아니고 매우 선명한 짠맛과 나름 푹신한 질감을 가졌다는 점, 그리고 이걸 베이글 스프레드를 떠올리게 하는 버터 대용품과 함께 내놓았다는 점이 눈에 띌 만한 요소이다. 첫 꼭지에 곁들이는 빵으로 제공되기는 하지만 스프레드를 발라 먹으면 거의 독립적인 요리로 기능하게 되는데, 짠맛과 향까지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큰 틀에서 틀에 넣고 만드는 다른 빵들과 질감이 유사할 법도 한데, 껍질의 두께가 기대한 것이 상으로 확보되어 있어 식사에 곁들이는 빵의 기능 역시 해낼 수 있는 묘한 물건이었다. 알자스와 뉴욕, 두 지역의 전통을 나름의 방식으로 영리하게 소화하면서, 재미까지 더한 좋은 빵이었다.

Foie gras terrine, pecan praline, riesling gelee, banana pain d'épices

첫 코스 요리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푸아 그라 테린은 그가 자신을 정의하는 요리로 소개하곤 하는 ㅛ리인데, 큰 틀에서 차갑게 내는 테린과 견과를 주제로 하지만 앞서 아뮤즈에서 잠시 선보인 바와 같이 두리안으로 영역을 세계로 넓히며, 바나나 브레드로는 북미라는 대륙을, 리슬링(때로는 게뷔르츠트라미너)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엮는다. 어찌 보면 실행의 합리성보다 내세우고 싶은 아이디어가 앞서는 요리로 불안감을 갖게 하지만 다행히도 그러한 불안감은 솜씨의 날카로움으로 불식시킨다. 테린은 힘줄이 거의 느껴지지 않게 잘 가공된 가운데 주변의 신맛을 모조리 빨아들일만큼 지방이 두텁고 두리안의 낯선 향은 딜로 다스린다. 내세운 바에 비해 팔레트에서의 놀라움은 크지 않지만, 흐름을 이어가는 요리로서 유의미하다.

Sturgeon and sauerkraut tart, royal kaluga caviar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기대했던 요리는 현재의 가브리엘 크루더를 이 자리에 올린 요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사우어크라우트였다. 벨루가가 아닌 벨루가와의 유사성이 장점인 칼루가 잡종 캐비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캐비어는 전체가 아닌 맥락 내의 구성으로 이해해야 할성 싶었다(참고로, 페트로시앙의 그맛이다). 캐비어와 자바이오네의 전형적인 조합을 바탕으로 보통 샴페인이 맡는 신맛을 사우어크라우트로, 칼루가 캐비어의 단단함은 타르트로 감싸고 필렛 한 점을 녹여내어 전체의 통일성을 갖췄다. 일면에서는 철갑상어와 그 알로 대표되는 호화로움을 보여주는 요리같지만 실상은 사우어크라우트의 섬세함이 인상을 지배한다. 사우어크라우트는 주니퍼를 넣고 만든 전통의 맛이 느껴지는데, 사바용에 사용된 향신료와 전체적으로 베인 사과나무 훈연 향이 후각을 자극해 경험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스모킹 건을 이용한 복잡하지 않은 훈연 향이긴 하지만, 사우어크라우트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Hay-smoked two week aged duck breast

아뮤즈부터 두 번째 코스까지가 白의 요리였다면 앙트레에서는 급격히 黑, 또는 赤으로 방향을 튼다. 나머지의 구성은 항상 변하지만 짚불에 익힌 롱아일랜드 오리 가슴살은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조금 더 극적인 연출을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은 안전한 조리를 내놓아 조금은 실망했다. 나쁜 조리는 전혀 아니었으며, 간만에 껍질이 썩 마음에 들게 나온 오리를 만났다는 점에서 행복한 식사였긴 했지만 긴 기간 레스토랑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를 전부 보여주지는 못했다.

앙트레에는 곁들이로 이런 한입거리를 내놓는데 염장육의 짠맛을 경험하고 나니 오리가 한풀 더 무뎌진 느낌이 들었다. 연출한 것이라면 절묘하다고는 하겠으나...

Miso-marinated strip steak

되려 예상을 깨고 수준을 보여준 쪽은 쇠고기였다. 썰어낸 모양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상당한 두께의 덩어리를 표면만 강하게 그을려 연출했는데, 오리에서는 숙성이나 짚불의 강점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쇠고기는 된장에 절인 강점이 절절히 드러났다. 염도가 고르게 퍼졌을 뿐 아니라 무른 듯 씹히는 듯한 질감이 훌륭했다. 표면에서 이끌어내는 감칠맛이 핵심이 아닌 일부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전체의 맛이 조화롭게 흩뿌려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같아서는 구겔호프를 하나 더 먹고 싶었지만 식사에 곁들이는 새 빵을 준다고 해서 짐짓 기다렸는데, 이 빵은 진정 빵장이로서 가브리엘 크루더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살짝의 신맛이 빵의 기원을 짐작케 하는데, 그보다도 껍질이 너무나 아름답게 구워져 있었다. 절묘한 바삭거림과 풍성한 향이 고온에 지진 육류 껍질의 뉘앙스와 너무나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가운데 무신경하게 덜어낸 버터 덩이와의 호흡도 아주 좋았다. 이런 타이밍에 이런 빵을 내서 다시 한번 독일 문화권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식사로서 그 효용을 설득해내 여러 방면의 즐거움을 동시에 휘어잡는다.

Cocoa nib tart

한국계 쇼콜라티에 보라 킴과 함께 자신의 이름으로 초콜릿 가게를 별도로 운영하는 셰프인 만큼 디저트도 일부러 초콜릿을 골랐고, 이후에도 초콜릿을 인심 좋게 퍼주는데 싱글 빈의 특징을 강조하는 근래의 유행과 달리 초콜릿-스러움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 기대에는 부응하지 않았다. 캐러멜과 미소를 사용해 나름 향의 짝짓기로 시너지를 유도하지만, 바라보는 방향 자체가 점잖게 잘 만든 초콜릿이라는 인상이다. 외려 과일을 이용한 디저트가 더욱 흥미로워보였다.


총평: 셰프 가브리엘 크루더는 알자스 뿐만 아니라 뉴욕 곳곳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성장했으며 그의 요리는 그러한 배경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독일어권 바깥에서 독일의 식문화 전통을 여러모로 활용할 능력을 가진 몇 안되는 셰프라는 점에서 그는 독특한 존재가치를 가지는데, 단지 알자스-독일어권의 식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나름의 맥락 속에서 조화롭게 배치하고 변형한다는 점이 그의 인기의 이유를 보여준다. 일부러 와인까지 알자스 와인으로 짝을 지어 마셨는데, 몇몇 요리는 일부러 이런 와인들만 가져다놓았나 싶은 호흡을 보여줄 때도 있었으며, 빵 반죽들은 하나하나 적절하게 구워져 있으면서도 개성이 있어 바탕이 튼튼한 레스토랑이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다만 아시아적인 영감을 활용하는 방식은 다소 천편일률적이다.

분위기: 원목와 크림 톤, 어두운 조명과 높은 층고가 주는 편안함. 야외 테이블도 선택 가능.

서비스: 업스케일 레스토랑에 걸맞는 절도를 갖췄지만 교육이 아주 섬세하지는 않다는 느낌을 준다. 전반적으로 유쾌한 톤&매너.

가격: 저녁 코스는 $155부터. 와인은 글라스에 $18~20부터, 보틀은 거의 전부가 $100 이상.

음료: 프랑스와 미국 컬트를 중심으로 고르게 넉넉한 리스트, 알자스 화이트는 당연히 괜찮게 구비되어 있지만 알자스 레드까지 선택지가 썩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자랑할 만한 양의 DRC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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