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 - 2020년 가을
한 레스토랑을 방문할 때 통상 세 번, 최소한 두 번을 식사해야 제대로 된 평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미국 음식 저널리스트 협회(AFJ) 등의 윤리강령에도 적시된 사항이다. 물론 이 규정에는 레스토랑 방문보다도 중요한, 이익충돌행위 금지 규정이 있으며, 나는 애초에 미국의, 프로 작가가 아니고, 실명 기고자가 아니므로 그들과는 무관하지만, 그만큼 레스토랑 리뷰 또한 글쓰는 이로서 '품격'이 필요함을 말한다. 그리고 그 품격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매너다. 매너. 레스토랑 리뷰는 오로지 읽는 이를 위한 글로서 남아야 한다.
하여간, 그래서 같은 레스토랑을, 같은 조건하에서 세 번째로 글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는 이렇게 내가 개인적으로 비평이 가능한 수준의 경험을 축적한 레스토랑에 대해서는 개별 접시로의 미분이 아닌, 총평 위주의 글을 쓰고자 한다. 이 글은 새로 옮긴 블로그에서 그러한 첫 글이다.
방문 전
가온의 예약 시스템은 전화, 자체 온라인 예약 시스템, 네이버 예약으로 구분된다. 앞서 네이버 예약을 이용할 때 카드 정보를 문자로 전송해야 하는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는데, 공식 홈페이지(http://gaonkr.com)에서 안내하는 사이트를 이용할 경우 시스템을 통한 예약금 결제가 가능하다.
당일 확인 전화는 따로 없으며, 기계적인 문자만 발송된다.
총평
굳이 자료 사진이 없으면 심심할 것 같으니 미리 한 장씩만 뽑아둔다. 「가온」의 요리는 전형적인 프랑스식 코스 요리를 통해 한국 요리를 끼워 맞추는 것이 기본적인 포맷이다. 이 레스토랑의 시작은 지금과 굉장히 달랐다. 故 윤정진 셰프가 이끌었던 과거 「가온」은 위치 뿐 아니라 모든게 달랐다. "고급음식=보양음식, 일식 아니면 중식"이라는 뻔한 정서의 지배 아래에서 전복과 갈비찜, 홍삼에 닭과 같은 요리를 하던 곳이다.
그러한 가온이 몇 차례 변하고 변해 미쉐린 별 셋으로 갑자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식당이 되었다. 물론 이 뒤에는 불유쾌한 이야기들이 깔려 있다. 오너가 스스로 '컨설팅' 사실을 시인하기도 했고, 애초에 들여올 때부터 기분 나쁘게 들어온게 미쉐린 가이드가 아닌가. 미쉐린 가이드를 둘러싼 오랜 불협화음들은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지만(이를테면 '삼촌의 친구가 인스펙터인데~'류의 풍문들) 공영 언론사에서 취재를 통해 확인할 정도로 자세히 알려진 것은 前 미쉐린사의 평가원이 밝힌 회고록 못지 않게 가이드에게는 위험이 되었을 테다. 따라서 올해의 가온은 나에게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오는 곳일 수 밖에 없었다. 일본에 거주하는 그 컨설턴트는 주로 일식당을 오픈하는 사람이다. 과연 미쉐린은 좀 알아도 한식을 알겠는가. 따라서 해당 논란이 폭로된 후 '가온'의 요리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가, 거기에 나는 모든 해답이 있다고 믿었다. 별 셋을 단 레스토랑 두 곳이 모두 한 명의 컨설턴트와의 의혹에 휩싸이는 일이 한식, 한국 식문화의 현주소라면 2020년에 이들이 보여주어야 할 요리의 모습은 한식의 미래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요리의 큰 틀의 형식이 전혀 변하지 않은 점은 썩 만족스럽지 않은 지점이었다. 주방은 물론 경영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알고 있으리라 믿는데, 기본적인 코스 흐름의 뼈대들이 여전히 궁중 음식과 보양 재료에 기대고 있는 점은 과연 그들이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충분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애초에 요리는 궁중 음식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데, 굳이 이름을 그렇게 씀으로서 연관성을 찾는 습관을 버리지 않고 있다. 사실 궁중의 조리 용어들은 이미 사어(死語)가 아닌가. 증이니 선이니 이런 표현은 현대 한국에서 더이상 쓰이지 않는다. 그들의 요리 또한 불완전한 궁중 레시피의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연계국'은 「시의전서」와 다르고 '해삼증'은 「디미방」의 방식이 아니다.
이런 책들이 애초에 그대로 따라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지만 레퍼런스로 쓰일 뿐 '오래된 것=그래서 좋은 것'수준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쓰인 대로만 했다면 속을 채워넣는 방식이겠지만 채워넣은 형식이 아니고 아래도 다졌다기보다는 한 입 크기 단위로 절단한 것에 가깝다.
어떤 것들은 아주 달라서 굳이 이런 이름일 필요가 없다고까지 생각이 든다. 신선로니 구절판이니 하는 20세기의 스타들이 코스에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이 코스를 구성하는데 재량을 부여받은 사람은 '고급 외식=보양식, 고급 한식=반상, 궁중'수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주방의 성격이 가장 또렷이 보여지는 지점은 오로되브르다. 봄에는 뇨끼를 응용한 수제비, 여름에는 콩국수가 나왔고 가을에는 토란들깨국이 나왔다. 토속적이고 익숙한 음식을 파인 다이닝의 경지에 끌어올린다. 「가온」같은 레스토랑이, 감히 한식의 미래상을 표방하는 곳이 해야할 일이 있고 그것을 한다. 그러나 이는 오로되브르에서 막힌다. 일 년 내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금태와 채끝의 완성도는 경탄스럽지만 레스토랑의 자유를 묶어두는 장애물이다. 셰프의 영혼이 담긴 식재료인 전복까지 자리를 꿰차고 나면 빈칸이 많지 않다. 여전히 '고급 한식을 즐긴다'라는 고정관념에 봉사하여야 할 이유가 있는 공간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 이상 어떻게 가온에 대해 이야기할까, 고민들은 가을 코스의 가격 인하와 함께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앞의 이야기는 모두 무시하라. 한 끼에 주류까지 최소 40만원 정도의 예산을 가진 레스토랑의 가격이 한 번 주저앉으니 일어서지를 않는다. 그러나 봄부터 가을까지 레스토랑의 요리를 지켜본 결과 주방 인력이나 재료 어느 쪽에서 크게 타협본 것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요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힘이 나지 않는다. 여러모로 차력을 연상케 하는 요리를 하고 있다. 아드리아 형제가 연 현대 조리법의 시대에 걸맞는 결과물들을 구현하면서도 다양한 재료를 배제함으로서 스스로를 묶었으니 이 또한 참으로 차력이다. 이곳의 아이스크림은 서버가 읊어주는 것들 이외에는 어떤 것도 들어가지 않는다. 여전히 끄넬을 뜬 아이스크림 위에 청을 붓는 것이 디저트의 끝이라는 점은 불만스럽지만, 평소에는 밥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었다니 그야말로 지극히 '파인 다이닝'스럽다. 다만 왜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그런 고생을 하는지 마음이 아프다. 이외에도 양식에서 뻔히 이용되는 몇 재료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는 인상이 강하다고 과거부터 꾸준히 짚고 있는데, 그게 소스(응이)부터 디저트까지 이어진다. 전통 요리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식재료들을 배제하여 과거가 아닌 현대의 요리를 한다. 굳이 그렇게 해야하는가 싶지만 굳이 그렇게 하는 곳이 있다.
음료의 짝짓기에서도 이러한 차력은 계속된다. 다밀라노의 바롤로같은게 짝으로 나와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셰프가 모 영국인 블로거의 가성비 혹평을 기억하고 있는 영향인가. 그런 이유를 떠나서도 장식에 불과하지 않은, 빈티지나 와인의 완성도 등에서 자유로움이 묻어나고 이는 곧 경험의 완성도와 직결된다. 바롤로가 단가를 맞추기 위해 설익었다거나 했다면 단가를 떠나서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름때 알다가도 모를 리스트를 보기도 했고 곧 리스트를 또 일부 개정할 예정이라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러모로 일반적일 수 없는 도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처참하게도 현실에 묶인 점은 와인이 나오는 온도다. 보관 온도가 낮은데 칠링까지 더해지니 참으로 한국의 술문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날숨에 김이 짙게 서리는 잔을 보니 목이 가렵다.
왜 레스토랑이 도전을 하고 있는가. 그것도 다양한 현실 속 제약에 묶여서? 나는 그것이 셰프가 스스로 자임한 한국인 요리사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더라도 어쨌거나 별 세 개를 짊어졌다. 이제는 컨설턴트도 없고 레스토랑의 대표와 셰프도 같은 사람이 되었다. 이 현실 속에서 레스토랑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지만 몇 번의 경험을 되짚어보면 쉬운 답이 나온다. 「가온」은 바로 지금 한국에서 '파인 다이닝'의 개념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이라니? 한국에 파인 다이닝의 존재는 이제 길만큼 길지 않았나?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이곳의 요리들은 관통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트러플이나 캐비어 올리면 파인 다이닝인줄 안다'는 미국인들의 조소가 한국어 자막으로 번역되는 사이 여전한 오트 퀴진의 역할에 대한 오해와 편견과 싸운다. 서비스부터 요리의, 결과 등등 모든 지점에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넣기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다. 이는 모든 부분에서 그렇다. 코스의 구성, 개별 요리의 완성도, 요리사들의 훈련과 양성, 와인과 서비스까지. 그러나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특히나, 여전히 비싼 외식 내지 한식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공간, 비즈니스나 접대의 수단으로서 기능하면서 동시에 셰프를 표현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까지 동시에 가능할 수는 없다. 한식에 씌인 멍에는 덤이다. 혼란은 필연적이다.
이렇게 짊어진 짐이 많지만 셰프의 요리에는 활기가 보인다. 표고 버섯 위에 트러플을 올려 냈을 때, 표고는 트러플을 비웃는다. 일본의 하나동코만 표고인가. 국산도 좋은 것은 좋다. 요리를 통해 이러한 마음들이 곳곳에 묻어나고 나는 그 순간마다 웃는다. 대부분의 고급 표고가 선물용 따위로나 팔려나간 뒤 라면 국물에나 쓰이고 있다면 누군가는 표고의 맛의 끝까지 가볼 필요도 있다. 명백히 레스토랑은 '트렌디'한 식자재들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공격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북쪽분홍새우, 성게, 무화과, 캐비어, 트러플 등. 나는 이것이 굴복 내지 타협일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또 뛰어넘기 위한 요리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안심했다. 가온의 저녁 식사를 쭉 톺아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토란의 부드러운 감각, 들깨의 매혹적인 향, 고집스레도 낸 대추의 단맛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맛없게 하는 요리는 없지만 무엇을 빛내야 할지는 알고 있다.
기술적인 지점에서, 모든 요리가 지나치게 음식의 질감의 다각화를 기피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신체능력에 이상이 있지 않은데도 반드시 중간에 화장실을 거치게 된다. 페어링되는 와인과 곁들이는 차에 더불어 어떤 요리도 단단하지 않고 오로되브르의 시작을 알리는 즙부터 각종 국물요리까지, 물의 비중이 참으로 높다. 특히나 요리 전체의 흐름을 관통하는 것마저 물로서, '육수'라는 점이 거든다. 모체 소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이곳의 육수는 탐스러운 감칠맛을 지녔지만 흡입하다 보면 곤욕을 치르게 된다. 이것도 한식의 일부인가. 객의 치아 건강상태가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과연 그래서 먹는 재미까지 포기할까, 주방만이 알 것이다. 이날 제일 단단한 요리는 백자편이었다. 그나마도 백자편중에는 매우 부드러운 편.
여름 코스를 지내면서 어떻게던 우리술의 자리를 우겨넣을 수 없을까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는데, 리뉴얼 직후에는 리스트에 사케까지 넣었다가 뺐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여느 때나 어느 가정의 조부모 이상을 모시는 자리나 외국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경우 이외에는 쓸모없는 짐 취급받는 '고급 한식'이다. 나는 여전히 한식이 한국 바깥 등지에서 빛나는 방식을 이 레스토랑이 조금은 더 받아들인다면 편하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름의 고집은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도 고향 노릇을 해줄 한식당은 필요하다.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하는 과분한 대우를 받았으니 조금은 주방의 편에서 글을 썼지만, 솔직히 내가 쓰고도 공감되지 않을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전적으로 주방에서 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책임이다. 이런 도전을 하기로 했다면 단지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제 요리 이외의 방식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질없는 인터뷰나 인스타그램 홍보같은 걸 넘어서, 레스토랑의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매체가 나왔으면 한다. <어글리 딜리셔스>여도 좋고 <프렌치 런드리 퍼 세>여도 좋다. 고민의 깊이도 깊고 짊어진 짐도 무겁지만 표를 내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침몰할 뿐이 아닌가. 살기 위해서도, 또 미래를 위해서도 뭐든 좀 필요하다. 한때 재료의 산지를 전부 표기한 메뉴판을 쓰기도 했는데 별 의미가 없어서 접었겠지만 단순히 사천 전복, 제주도의 눈볼대 이렇게 쓸 게 아니라 어째서 좋은 재료인지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망치고등어를 내는 철에는 나가사키 것을 고르고 계절에 따라 오사카만의 고등어와 도쿄의 고등어가 달리 나오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면 객들도 요리를 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하릴없이 참치 도매상들 이름 외우느라 바쁜 사람들도 많은 걸로 아는데 허영심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도 "동코 시타케"라면서 일본 표고는 비싼 값에 팔린다. 굳이 따라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왕에 현실에 부딪히기로 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여전히 알다가도 모를 감성이 지배하는 게 외식의 영역이니 최소한의 논리만 있어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으리라. 물론 하지 않는 지금이 나는 더 좋지만 닫는 것보다는 이런 시도라도 할 수 있으면 좋다. 이미 "성게니까 맛있다"로 영리하게 빠져나가는 시도들은 있듯이.
서울에서 철학이 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은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철학이 있는 요리를 하는 곳은 더 적다. 순수 예술가 내지 빈곤한 철학자 코스프레가 아니어서 더 좋다. 레스토랑은 삶의 공간이고 상업 예술은 전적으로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예술행위로서 레스토랑 경영을 하기로 한 셰프는 스스로가 표방하듯이 '한식의 중심'이다. 스스로가 움직이는 길에 따라 한식도 따를 것이다.
분위기: 특별히 바뀐 것 없음.
서비스: 한국에서 파인 다이닝 서비스는 어때야 하는가?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스스로 결정할 힘이 있을 것이다. 오마카세 방식으로 파인 다이닝을 시작한 데이비드 창은 레스토랑의 서비스 시스템이 격식을 차리는 척 하는 것 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던졌다. 요리야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 서비스로 나오지만 공간은 객의 취향에 맞춰 별실 위주로 운영되는데, 지난번에도 언급했듯 이러한 환경은 밀실의 벽 덕에 서버가 꼭 한 번은 식사 중간에 들어오게 된다는 사건을 필연으로 만든다.
가격: 내가 처음 본 가격은 '미정'이었다. 지금은 점심 KRW 120000, 저녁 KRW 225000이다. 한 번 내려간 가격이 올라오지를 못한다.
음료: 개편 예정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보류. 칵테일이 나름 눈에 띄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점은 기분이 좋았다. 샴페인이 식전주가 아니었다면 칵테일을 주저없이 골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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