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 - 2020년 여름

지난 글에서 가온의 봄철 저녁 메뉴와 페어링에 관해 다뤘다. 비록 개별 시즌을 다루는 것보다 총평을 따로 하는게 좋겠으나, 개별 코스는 그 자체로도 나름의 문맥이 존재하므로 두 가지를 뭉뚱그리는 대신 분리하여 여름 메뉴를 살펴보기로 한다.

방문 전

가온의 예약은 전화로도 가능하지만 네이버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약을 확정한 경우 메뉴에 대한 안내와 함께 확인 문자를 발송하며 별도의 예약금을 선결제하는 대신 카드 정보를 받아 패널티 발생시 결제애 활용하고 있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이용하는 김에 카드 정보를 입력하여 패널티를 부과하는 시스템(OpenTable 등)을 이용하거나, 선결제 후 환불이 가능하겠지만 수수료, 또는 선결제로 인한 객의 부담감(이를 느끼는 사람이 있더라)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방문 이력이 있더라도 카드 결제 정보를 다시 물어보는 것을 보면 폐기하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문자로 카드정보를 직접 입력하는 방식 자체에 큰 신뢰는 가지 않는다. 암호화를 거쳐 정보를 보관할 수 있는 서비스가 이미 많음을 감안하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카카오톡이 예약보증금 결제를 포함한 서비스를 런칭하기로 한 만큼 이러한 방식은 재고가 필요하다.

안내 문자로는 약도가 함께 전송되는데, 약도에서 자차를 운전하는 경우와 타인의 차량에서 내리는 경우를 나누어 설명한 점이 인상적이다. 본인은 음주를 각오하였으므로 속편히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다.(본인은 사적으로 풀타임 운전기사와 별도의 차량을 이용할 대단한 여유가 없음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방문 전일 예약 확인 문자가 다시 발송되며, 당일 확인 전화는 별도로 하지 않는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방문하는 경우 정해진 좌석으로 안내하는데, 이번 방문에서는 30분 정도 일찍 방문하였음에도 예외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별도의 응접실은 준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나같은 일반 방문객을 위해 사용하지 않거나.

요리

식사 전 차를 준비해주는데, 옥수수차(정확히는 옥수수 수염차)였다.
이날 메뉴는 점심 코스('온날', 120000KRW)과 함께 페어링(50000KRW), 그리고 식후주 감홍로(24000KRW)를 주문하였다.

와송즙 wasong

식사의 첫 시작으로 제공되는 즙은 와송이다. 이 요리는 이미 크게 정해진 문법 안에서 녹여낼 신록을 달리하는 방식인데, 청포도라고 하지만 거기에 아마 다른 것들을 포함하여 단맛과 청량함을 더해, 나물이 가진 본질의 쓴맛을 다스리고 향만 살펴내는 것이다. 와송을 함께 제공하여 요리의 재미-가공을 넘어선 "초월"-를 전시함과 동시에 품격을 드러내는 요리다. 「본초강목」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약식동원의 문맥에도 부합한다. 다만 와송은 제공되는 것을 실제로 먹어보면 알겠지만 신맛이 조금 있을 뿐 물기가 많아 맛이 흐려, 같은 문맥이라면 미나리와는 필연적으로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Champagne, Pinot Noir and Pinot Meunier, Bland de Noir Brut

점심 페어링은 두 잔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한 잔은 식전주다. 저녁은 세 단계의 페어링을 갖췄음을 감안하면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메뉴에는 증류주인 화요와 함께 단일 페어링만을 소개하고 있었으므로, 별도로 질문하지 않았다. 화요 페어링은 소믈리에가 반대하는 뉘앙스가 있었는데, 이전 글에서도 언급하였듯 나는 정격 한식에서는 술이 자신의 요리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 밑바탕에는 "가양주"가 존재한다 주장하는 사람이므로, 두 가지가 아쉬웠다.
첫째로는 역시 와인의 구성이다. 촬영하지는 않았으나 풀 리스트대신 "테이크 아웃이 가능한" 와인과 전통주로 구성된 작은 소책자(2p)만이 제공된다. 접근성 좋은 가격대의 와인들 위주로 두루 구성하였으므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겠으나, 와인 리스트가 레스토랑의 또 다른 얼굴임을 감안하면 전체 리스트에 대한 평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러한 책자를 제공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두 번째로, 그렇다면 거의 반드시 선택하게 되는 페어링의 구성의 아쉬움이다. 두 잔인데 한 잔이 식전주인 페어링은 설득력을 느끼지 못하는데, 식전주를 별도의 구성으로 생각하지 않거나, 아니면 식전주를 주문하는데 많은 이들이 주저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저녁에서는 같은 두 잔의 페어링에서 식전주를 제외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의도가 있는 부분이므로 이해한다.

콩국 soybean

첫 요리로 나온 것은 같지만 다른 모습의 콩국수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예약과 동시에 '한식의 중심'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공간의 콩국수라면 그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수/라는 글자를 뺀 콩국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데는 설득력이 있는데, 실제로 국일 뿐 국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젤리로 만든 콩 위에 잣과 오이를 쌓고, 두르고 있는 콩국은 노란메주콩과 잣, 땅콩을 거르고 또 걸러내 콩소메가 연상되는 수준이다. 콩국수라는 요리에 대한 아주 훌륭한 대답인데, 직접 콩을 갈아보면 알겠지만 정말 콩을 갈아 거르면 맛이 심각하게 묽다. 그래서 일상의 콩국수에는 여러 해법이 제시되는데,

  1. 콩물을 거르는 대신 가루를 그냥 물에 풀어버린다. 찬물에 콩가루가 쉽게 녹거나 할리 만무하므로 마침 같은 콩에서 나온 레시틴, 유청단백, 잔탄 검같은게 들어간다. 바깥에서 콩가루를 이용한 콩국수를 사먹어 본 사람이라면 분자요리를 경험한 셈이다.
  2. 맛이 강한 견과의 도움을 받는다. 시중에는 잣이나 아몬드 등을 농축한 두유 제품이 많으므로 그 도움을 살짝 받는 것이다. 콩국수의 가장 오랜 레시피를 전하는 「시의전서」에서도 깨국과 함께 블렌딩하는 것을 지시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름이 콩국수일 뿐 순수할 필요는 없다.

이 요리는 두 가지를 모두 이용하여 영민하게 해냈다. 분(粉)을 풀어냈다고 하기에는 남는 것 없이 맑은데 단맛이 정중하다. 고명과 묵 또한 제 역할에 충실해서 단맛 위에 그 향이 올바르게 피어난다. 단순히 잘 만든 콩국수라고 하기에는 콩국수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이며, 이는 제공되는 온도에서 잘 드러난다. 콩국이지만 얼음장처럼 차게 내지 않는다. 여름 요리의 보양은 극단적인 온도로 감각기관을 마비시키는 게 아니라, 친절하게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다만 오늘도 식사 이전 궁중 음식의 재해석이라며 스스로를 소개하는 「가온」이기 때문에 신중하지 못한 지점도 있다. 이게 콩국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궤변이냐면, 콩국수라는 것은 그 본질적으로 나같은 서민에게 걸맞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시의전서」말고 콩국수를 언급하는 또다른 문헌이라면 「성호사설」인데 표현을 보면 측은하다. 귀한 것들을 모조리 빼앗긴 서민의 마지막 보루로 언급되기 때문이다.성호선생사설 16권 등 정약용 저의 「다산시문집」은 더욱 노골적이다. 여름을 앞두고 뒤주가 텅 비었으니 그제서야 콩 짠 것菽盡을 먹어 버틴다고 한다한국고전번역원 역, (2002), 임오정월 소회. 정확히 啜菽盡歡이라고 하는데, 이는 菽水之歡이라는 표현을 염두에 둔 것으로 그 펀치라인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그만큼 콩물의 위치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실록」은 콩국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지만(두갱豆羹을 콩국물로 이해하면 굉장히 곤란하다.) 역시나 등장하는 경우는 궁박의 끝을 달릴 때로 전쟁통에 제사를 지내기 어렵더라도 보리밥에 콩국麥飯, 菽水으로라도 지내자는 것이다.선조실록 45권, 선조 26년 11월 24일 갑진 10번째기사 이 콩물菽水이라는 표현이 혹시 다른 음식이라면 어떨까 싶지만 언중의 쓰임새에서 이것이 바로 그것임이 드러난다. 들깨를 이용한 깻국수(들깨칼국수)가 전래되오는 호남에 가면 이 요리를 콩국수가 아니라 콩물국수라 부른다. 물자를 꼭 써야하는 이유가 바로 이 숙수라는 관용 표현 때문이라는 것을 직관으로 느끼실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콩국수를 내는 것이 잘못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이름이 콩국일 뿐 격조 높은 잣이 오히려 주인공에 가까우며(고명을 보라), 어쨌거나 현대 한식의 주요한 여름 메뉴로 자리잡은 콩국수인만큼 한식의 미래를 제시하겠다는 스스로의 모양에도 잘 맞는다. 잘 썰어낸 오이까지 모든 요소에 있어 총체적으로 새로이 완성된 콩국수에 다름아니다. 그럼 뭐가 불만인가? 앞서 말했듯 식사의 시작에 앞서 스스로를 궁중 음식의 재해석으로 소개하는 공간이라는 점이 문제다. 앞으로 궁중 음식을 드시겠다고 운을 떼자마자 대표적인 서민 음식, 궁에서는 절대로 취급하지 않을 금기가 등장하니 곤란한 것이다. 이 요리는 신분제의 주인 되는 자들이 아닌 나같이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따라서 나는 콩국수라는 주제를 선택한 데 의문을 표했으나 특별한 해답은 얻지 못하였다. 현대 한국에서 한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요리들을 주제로 삼을지, 책에서나 불완전한 내용으로 전승되는 궁중 음식을 주제로 할지 고민 끝에 이제는 앞의 주제 또한 녹여내기로 결정했다면 수긍할만 하고, 일견 환영까지 할 일이고, 그러한 결정의 설득력 또한 갖춘 요리이나, 누군가에게는 당황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단새우쌈, 감자전, 육회 sweet shrimp, potato, beef(counterclockwise from 10:00pm position)

다행히도 그러한 맥락만 없다면 가온의 이러한 변화의 시도 드라이브는 좋은 방향, 즉 맛있는 방향으로 흐른다. 비록 작년 가을의 구성과 완벽하게 동일해 보이지만, 자세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간장을 젤리화하여 균형과 함께 끈적함이 돋보이는 북쪽분홍새우는 바삭하게 튀겨낸 김의 바닷내음 뒤로 간장의 장향을 갖추어 그야말로 세 가지 향의 순서를 훌륭하게 전달한다. 비록 아삭한 배의 자리는 빠졌지만 달걀을 파우더로 전체를 하나로 뭉쳐낸 육회는 식감의 대조 안에서 기존보다 낮은 온도로 침출한 느낌의 참기름의 향과 감칠맛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주인공이 있다면 역시 이제 제철이 막 시작된 감자이다. 나 또한 지금 집에서도 며칠째 씨알 좋은 수미감자를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요리하고 있지만 도피네현재의 프로방스-알프-코트 다 쥐르 식으로 요리한 감자pommes à la dauphinoise는 과연 사랑스러운 요리법이다. 눕혀 내었지만 보이는 켜는 기술이 돋보인다. 가온이 이번에 보여준 파격은 기왕에 서구의 조리법인 김에 아예 트러플까지 올려낸 점이다. 다른 곳에서야 여름에 썸머 트러플을 쓰는게 무슨 대수냐 할 수 있겠지만 최후의 보루로 캐비어를 쓰더라도 국산이라는 단서 조항을 명기했던 곳이기에 특별하다. 그러나 그동안 스스로 자제하던 트러플을 쓰지 않다가 썼다고 해서 위대해지지는 않으니 맛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일부 성공한 듯 하다. 층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리된 감자와 함께 얽히는 맛과 향의 설득력은 상당하다. 물론 이제는 일본 요리에 더해 프랑스 요리까지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으니, 한식이라는 주제를 식재료의 원산지와 요리법의 출처 없이 풀어내기로 한 그 도전의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와 동시에 걱정되기도 한다.

광주요의 작품 중 기억에 남는 물건이 있다면 아마 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기예를 부리는 듯 하면서도 편안하다.

전복찜 abalone braised in soy sauce, served with the abalone liver and seaweed sauce

같은 이름으로 "찜"이라는 이름을 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내는 전복찜은 이제 다시 본질, 전래되는 요리법의 구현으로 회귀할까? 이 요리는 가온의 이전 오픈때부터 자리하고 있는데, 내 짧은 소견으로는 아주 전통식이라기보다는 외려 간문화적 성격이 돋보인다. 응이라는 우리의 전통적인 제법을 채택하고 있기는 하지만 신선도가 생명인 내장은 조선시대에는 으레 젓갈로 담그어진 것으로 안다. 구워 먹으라는 문헌의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소스를 만들었다고까지 추측하기는 어려운 바, 익숙한 레퍼런스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응이로 쑨 데 더해 미역까지 더해 그 방향성은 전혀 다르다. 짙은 바닷내음이 전복 살까지 뒤덮는다. 여전히 훌륭하게 익혀낸 전복은 어찌하여 이런 모양으로 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젓가락으로 집어 맛보는 순간만큼은 올바르다. 싱그러운 바닷내음과 함께 경쾌함을 느낄 수 있다. 짙은 지방의 풍미대신 은은한 단맛만이 자리잡는다. 전체를 아우르는 온도 또한 정확하다.

두견주

비록 지방 등의 개입이 전혀 없으나 미역 등의 향이 상당히 공격적이므로, 페어링의 역할이 절실한데 여기서 절묘하게 가향주의 일종인 두견주가 나온다. '면천두견주'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시판 제품을 구매해본 일이 없기에 동일한 제품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종의 리큐르라는 점에서는 통한다. 진달래의 향과 강렬한 단맛으로 입안을 말끔히 씻어내는데, 식사의 여운을 끊어주는 역할로 영민하게 작용했다. 물론 가향주의 맛이 상당히 진하므로 그 스스로도 또 체이서를 필요로 하는 점은 이 곳의 잘못은 아니다.

장어구이 hay smoked eel marinated in gochujang, then lightly grilled

이 날의 주인공인 장어구이. 지난 코스에서는 고추장에 대한 대단한 회피능력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과와 결을 달리 하는 듯 보이나 곧 같아진다. 고추장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고추도 고추이지만 풀을 쑤어서 만들어 단맛이 중심이 되는 조미료이다. 짠맛이 뒤따르지만 매운 자극에 휘말리기 십상이고 곧 요리의 섬세한 표현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추장을 발라내어 도전한다.

장어는 축양을 거쳤다고 소개되는데, 곧 굶겨 지방을 줄인 것을 말한다. 양식한 장어를 사료에서 나는-같은 '축양'이라는 말이 쓰이는 참치는 냉동 고등어를 먹인다- 불쾌한 뉘앙스를 줄이는 효과도 있으나, 그만큼 장어의 기름기가 한껏 줄어드니 고민이다. 훈연한 뒤 다시 불에 구워내므로 그런 장어라면 바싹 졸아들 만도 한데 풍채를 유지하고 서있는 모습으로 보아 구워내는 것보다는 고루 익히는 것을 마지막으로, 겉은 토치 등으로 그을린게 아닌가 추측한다.

결과물로 수분기가 충분히 남아있어 살결이 이에 저항하는 감이 조금 있는데, 지방은 적어 입안에 바로 미끄러지지 않고 씹기를 요구하는 장어가 탄생한다. 정말 펴바르듯 얇게 코팅한 고추장은 그 향만을 더할 뿐 미각을 자극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존의 간이 입맛을 일깨운다. 과연 빛나는 지점은 아름답게 썰어낸 생강과 산초다. 고추가 있기 전 우리 민족에게는 산초가 있었다. 김치도 산초로 담갔다는 옛 문헌이 있으니 가히 이 시대에 고추를 다시 앞지를만하다. 화려한 두 향이 전체적인 그림을 감싼다. 장어의 부족한 기름기가 오히려 짓눌릴 정도로 느껴진다.

전반적인 그림의 색활용은 아주 훌륭한 가운데 목적지가 알 수 없는 익숙함-기름짐과 짠맛에 대한 거부감, 불필요하게 씹는 과정을 늘리는 식감-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 발목을 잡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요리이다.

혹시 이쯤에서 끝이라 아쉬운 사람이 있지 않을까? 부디 그렇기를 바라는데, 저녁 메뉴에 대한 글의 흐름을 따른다면 당연히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장어구이가 "궁중 음식의 재해석"이라는 주제에 걸맞는가. 설마 나에게 「식료찬요」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부디 그러지 않기를 부탁한다. 식료찬요 원문을 알고도 나에게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한식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멸하는 사람일 것이다. 또한 장어를 즐겼다는 사람으로 연산군이 흔히 언급되는데 그 출처도 어딘지 모르겠지만(「일기」인가?) 함께 언급되는 재료를 보면 오히려 그를 이유로 기피해야 할 이유가 된다. 동물의 생식기를 먹으면 생식기가 좋아진다는 따위의 주장을 재해석할 여지가 있는가?

"만물일본기원설"의 동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장어구이의 레퍼런스는 명확하게 일본식 장어구이蒲焼에 있다. 꼬챙이에 꽂아 불 위에서 익히는 방법은 양국 공통이나, 그걸 장어를 오로시를 떠서 해먹었다는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제가 한국에 주둔시킨 한국주차군의 내부 문서에서 장어구이를 먹는 일본인을 보고 놀라는 모습이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근대사를 따라 장어구이는 자리를 잡아간다. 한강을 비롯해 물가에서 장어구이집들이 일제시대를 앞뒤로 성업하기 시작한 모습을 보이나 여전히 한식으로는 인식되지 않으니, 독립 이후 처음으로 가바야끼를 뱀장어구이로 부르자는 제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장어구이는 한동안 일본 요리로 인식되어, 와쇼쿠和食의 하나로 소개되거나 일본에서 전래하여 한국에서도 복날 음식으로 사랑받는다는 기록이 이어질 뿐이다. 앞서 산초가 고추 전의 우리의 숨겨진 조상이라 이야기했지만 다르게 말해 숨겨졌으니 그 혈통이 일본에 있다. 생강도, 산초도 다름 아니다.
그러나 산초도, 장어도 이 땅에 멀쩡히 자생하고 있었던 만큼 빠르게 우리 식문화에 녹아들었다. 한강부터 금강 등지 등 광복 전부터 많은 장어구이 노점들이 성업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뱀과 같다 하여 멀리하기에 너무나도 맛있는 생선이니 복날의 효자 노릇을 꿰찬 것은 금방이었다. 다만 "장어는 냄새로 장사한다"는 일본식의 방식은 우리에게 낯선데 마침 인기를 얻기 시작한 불판 문화를 적극적으로 맞이하고, 양념에 있어서도 지나친 시간과 노력으로만 빚어지는 일본식 대신 고추장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 방법론을 택하는 식으로 변모하지 않았나 추측한다.

이를 주방이 모르고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잘 알기 때문에 이 요리를 내는 것이다. 흐름을 다시 보라. 콩국, 전복의 생내장, 장어까지. 지난 방문과는 주제의식을 아주 달리했다. 현대 한국인이 먹는 요리를 주제로 그 맛의 방향성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이다. 본디 지닌 그 요리의 매력을 잊어가는 우리에게 그를 다시 설파한다. 모두를 가릴 수 있는 고추장의 역할론을 재고하고 대신 산초와 생강의 역할을 부각해내는 장어구이는 하나의 새로운 주장이다.

Vino Clarete, Tempanillo( and another undisclosed blends), undisclosed region/vintage

다음 요리와 맞추어낸 스페인의 템프라니요. 이베리아의 양식인 클라렛Vino Clarete을 맞추어냈다. 부끄럽게도 잡생각이 많아서 이 잔을 보고 보르도라고 부르는 우를 범했다.

은대구를 이용한 사슬적. 이미 충분히 말한 양식인만큼 길게 말하지 않겠다. 완성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은 의미로. 다만 고추냉이 잎은 여전히 고민거리로 남는다.

점심 때는 된장을 이용한 국물요리와 함께 나물밥을 내기에 내심 큰 기대를 하였다. 같은 밥 한 상으로 보이지만 밥 안에 이미 단백질이나 지방이 녹아들고 필연적으로 그에 맞추어 간까지 맞아들어가는 경우와 이렇게 나물만 쪄내는 경우는 아주 다르다. 밥이 온전히 짝을 맞추어서 식사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향만을 피워낼 뿐 굳이 필요하지 않은 쓴맛이 잔류하는 곤드레는 이제 걷어내도 좋겠다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곤드레가 밥 안에서 발견되어야만 이것이 곤드레밥임을 믿을 것이기에 감안할 지점이다. 그런 점을 지나친다면 마주할 수 있는 상은, 지난번과 달리 반상을 통으로 잘라낸 잔여물이 아닌, 그 자체로 오롯이 서는 한 끼의 식사이다. 한식의 한 상 차림의 구성에 대한 대답이다. 첫째로 올바르게 지은 밥이다. 비록 무슨 품종인지마저도 알려주지 않지만 갓 도정한 쌀의 힘은 확실하다. 질지 않으면서도 저항 없이 곤드레향이 풀어지는 좋은 밥이다. 밥이 부드럽고 섬세한 가운데 빛나는 것은 찬의 구성이다. 아주 올바르게(나는 가지를 말렸다는 이유만으로 어딘가에 대한 찬사를 쓰는 사람이다) 말린 가지무침, 쇠고기 장조림, 그리고 관자에 이르기까지 반찬은 일관되게 씹는 행위로 먹는 이를 인도한다. 한 상 위에서 밥의 부드러움과 녹아내리는 곤드레향, 그리고 씹으면서 느끼는 반찬의 맛의 대비를 이루어낸 것이다. 나는 왼편부터 하나씩 밥과 반찬을 맞추었는데, 관자에 곁들인 마늘쫑 즈음에서 절정의 감각마저 느낄 수 있었다. 여섯 가지의 유기중 반절이 붉은 빛을 띔에도 불구하고 식사 내내 여운이 끊기지 않는다.

두부조림의 두부만이 부드럽게 미끄러지는데, 나와는 견해를 달리하는 듯 하다.

현미로 도정한 뒤 저온에 저장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 쌀은 완전히 도정한 뒤 저장, 유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므로 이렇게 밥 짓는 것 하나로도 하나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점에서 나는 큰 행복을 느꼈다.

쌀두유빙과 Rice soybean milk ice-cream

쁘띠 푸에 해당하는 마지막과 별도로 디저트는 여전한 고민의 지점이라 생각하지만(이게 저녁에도 동일한 것이 문제다) 어쨌거나 점심 때는 무난하게 넘길 수 있다. 끄넬을 뜬 한 스쿱의 아이스크림일 뿐이지만 그마저도 처참한 느낌이 드는 곳이 서울에는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올바르게 만든 비건 느낌의 아이스크림에도 만족할 수 있다.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든 질감의 아이스크림으로 단아한 쌀과 콩의 느낌과 단맛이 절묘하다. 다만 청의 향은 매혹적이지만 과연 아이스크림이 꿀에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으며-소프트 아이스크림보다는 훨씬 어울리지만, 아이스크림이 녹은 이후에도 잔류하기 십상이다- 튀일을 대신한 것을 올리는 정도로는 한식의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양방향중 결정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 바닐라빈과 우유를 쓰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미래를 추구하는 공간이라면 종착점이 될 수는 없다.

대추과자 | 살구과즐 | 단팥묵 jujube cookie, apricot cookie, sweetened red bean

본래 메밀차가 맞추어 제공되지만 나는 디제스티프를 청하였으므로 차지를 내고 감홍로를 마실 수 있었다. 봉황문을 새겨낸 주기에 담긴 감홍로는 흐름의 마침표로 가장 적합하다. 한 병의 제공 가격(KRW 110000)과 증류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1온스 단위로 나왔으면 하는 소망은 있으나 우리 방식을 따라 예를 표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만족스럽다. 감홍로라는 술은 조주기능사 시험에 나올 정도로 대표적인 전통주 대접을 받지만 왜 이렇게 식후주로 낼 생각은 다들 안하는지 모르겠다. 쓴맛이 강해 전형적인 디제스티프와는 다른 맥락이지만 어쨌거나 식사의 흐름을 맺고 강한 여운으로 마무리를 가능케 한다. 나름의 향 또한 썩 즐겁다.

근데 봉황문이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총평: 가온의 2020년 여름의 점심 메뉴는 비록 스스로를 궁중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기는 하지만 궁중 음식과는 크게 연관성 없이, 현대 도시의 한국인들이 주로 즐기는 여름 요리들을 주제로, 그 내용으로는 그런 것들이 갖추어야 할 올바른 맛의 방향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한식을 만드는 것은 한국의 땅도, 한국의 과거도 아닌 바로 지금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이다. 오로지 주장만 있는 것이 아닌, 현대 한국인들의 식습관이나 성향까지 반영하는 점은 지금 당장의 쾌락에는 아쉬울 수 있지만, 그렇기에 더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작년의 성게부터 북쪽분홍새우, 이제는 트러플까지 무대에 올려냈다. 맥락 속에서 더욱 빛나는 요리. 그러나 맥락을 벗어놓았기에 더욱 자유로운 몇몇 한식들의 뛰어난 모습을 감안하면 발걸음이 급하다. 조금씩 바꿔내고는 있으나 포트폴리오에 존재하는 메뉴가 디테일만 달리하여 나오는 것은 짙은 의문인데, 헤드 셰프가 기업의 대표직까지 겸하게 되었으니 새로운 것은 요원해 보인다. 이는 앞으로는 치명적일 수 있다.

분위기: 비틀즈부터 쇼스타코비치, 동요나 민요에 이르기까지 알 수 없는 선율이 어쨌거나 동양의 악기로 연주된다. 볼륨은 작고 서비스까지 더불어 전반적으로 차분하다.

서비스: 그 어느 상황에서도 문을 두 번 두드리는 철저함을 갖췄다. 프라이빗 룸을 요청하지 않아도 문으로 분리된 공간이 대부분이라는 환경 자체의 문제는 있다-식사 도중 서버를 다시 한 번 마주칠 일이 생긴다는 것. 지난 번에 개수대 바로 옆에 놓여진 핸드타월이 젖은 것을 보고 블로그에 아쉬움을 남겼는데 기가막힌 우연의 일치(절대로 나때문은 아니라 확신한다)로 케이스에 담긴 일회용 타월로 바꾼 점에서 세심함이 돋보였다.

가격: 점심 20만원, 저녁 30만원의 고정 메뉴만이 존재하나 COVID-19 이후 각각 12만원/20만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저녁에 나오는 메뉴인 채끝구이를 추가할 수 있다(KRW 38,000).

음료: 저렴한 가격대에 굉장히 힘을 준 와인 리스트는 주문하는 사람의 기호보다는 업장에서 생각하는 짝짓기로 흐름을 유도한다. 와인 이외의 주류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으나 주문을 염두에 두지 않은 듯 위스키 종류는 가격이 지나치게 좋다. 자세하게 살피지 못해 많이 이야기하기가 어려운데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전체 리스트를 제공하지 않고 두 차례정도 물어야 볼 수 있다. 나에게만 그런 것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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