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스 - 禪茶一味
내게 서울에서 남산을 오르는 걸음만큼 급한 길은 없다. 부산한 회현역 금방부터 마음을 졸이고, 계단을 올라 갤러리의 1층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느릿한 엘리베이터마저 야속하다. 흙빛 벽을 보고 나면 나의 흥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터져나왔다가 사라져 버린다. 내 기억 속의 기가스에서의 한 끼는 매번 이렇게 선명하다.
치즈의 적극적인 사용이 돋보이는 몇몇 요리와 채소의 섬유질까지 녹아든 듯 선명하면서도 오일같은 집중도를 두루 갖춘 특유의 소스 스타일, 찹쌀가루를 살짝만 입혀 마이야르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찰나만을 허용하는 튀김, 그 자체로 완성을 주장하는 수준에 이르는 계절의 풀과 허브들.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떠올리게 하는 레퍼토리같은 요리부터 추억과 자유로움을 넘나드는 디저트까지. 기가스를 갈 때마다 이전의 음식을 돌아보며 어떠한 그림을 떠올리지만, 분명 익숙한 것들이 또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올 때 나는 그것을 쾌락으로 느끼고, 새롭게 덧입혀진 기억과 함께 다시 이곳을 떠난다.
인도부터 일본까지 불교 문화권에는 차의 문화가 함께하는데, 단순히 차(茶)라는 글자를 파자하면 108의 숫자가 들어있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차를 달이는 과정 그 자체가 참선이고 수행이 되며, 달인 차를 누군가와 마시는 과정 또한 그러리라는 가르침 때문이다. 물 끓는 소리를 듣고, 향을 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는 다기의 온기까지 느끼는 일련의 과정을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다례, 더 나은 수행으로 나아간다. 기가스의 요리에서 나는 그 정신을 얼핏 엿본다. 청담동 사치스러운 골목 속의 어울리지 않는 원석 같던 시절부터 이제는 농군의 꿈 같은 요리를 선보인다. 단백질을 빛내기 위한 재료가 아니라 스스로가 빛나기 위한 야채가 존재하는 곳. 이만큼 커졌으면서도 더 큰 꿈을 꾸기 바라는 내가 수행이 모자람을 느낀다.
같이 보기
기가스 - 소재주의, 신소재주의
기가스 - 2022년 봄
기가스 - 2023년 봄
기가스 - 2024년 겨울 이전 오픈
기가스 - 덕산탁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