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텐더 - 문화의 번역과 해석
영어로 Old Fashioned Cocktail이라고 했을 때, 그리고 일본어로 オールド・ファッションド라고 했을 때 우리는 사뭇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일본식 올드 패션드라는 별도의 칵테일로 인정하는게 맞다고 보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3종류의 시트러스가 빚는 형형색색의 빛깔이다. OG 올드 패션드의 오렌지-체리가 가니쉬까지도 단맛에 무게를 한껏 싣는다면 일본식은 레몬과 라임, 각각 신맛, 쓴맛까지 더하여 판이한 해석을 보여준다.
전후 일본에 칵테일 문화가 정착할 때만 해도 라임과 같은 과일이 결코 일상적으로 쓰이지는 않았는데, 어째서 이런 방식으로 변했을까? 맛 속에 답이 있다. 올드 패션드는 기본적으로 미국 위스키라는 명백한 주인공에 어떠한 다른 주류도 넣지 않고 몇 방울의 앙고스투라 비터스만으로 덧댄다. 어떻게 만들더라도 궁극적인 목적은 그 위스키의 가장 핵심적인 풍미를 느끼는 데 있다. 그러나 과거도 지금도 날것의 미국식 위스키는 친근하지만 완벽한 술이라고는 하기 어려운데, 그 향과 알코올만 느끼며 맛의 감각을 조절하기 위해 설탕부터 오렌지, 체리까지 가락에 따른 단맛으로 혀를 달래고 비터스로는 일종의 양념을 친다. 원래도 풀바디인 증류주에 맛이 여러겹 쌓였으므로 얼음을 통해 적당히 희석하여 강한 부즈를 잡음과 동시에 균형을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쳐서 아메리칸 위스키의 어떤 특징을 살리고, 어떤 특징을 지우느냐가 만듦새를 판가름하게 된다.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옥수수를 중심으로 만든 위스키로, 잘 그을린 떡갈나무에서 베어나오는 바닐린이 팔레트의 단맛과 만나 가락을 이루는 감각의 즐거움이 이 칵테일의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마다가스카르 바닐라의 4-히드록시벤질계통의 과실향이나 타히티 바닐라가 가진 아니스향 등 미묘한 뉘앙스가 더해진 진짜 바닐라들과는 다른, 곡물의 증류주와 나무의 여타 향기들과 어울리는 위스키만의 바닐라. 그곳이 목적지이다.
호밀 위스키로 말아내는 경우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하여간 큰 틀에서 무엇이 앞서고 어떤 것들이 왜 쓰이는지는 통한다. 그 관점에서 이 일본식 올드 패션드는 어땠는가. 오렌지부터 레몬, 라임으로 이어지는 시트러스는 곧바로 음료에 개입하는게 아니라 마시는 과정에서 과육을 눌러 즙을 더하는 방식으로 연출했는데, 라임의 씁쓸함이 묽어진 비터스의 감각을 메꾸고 시럽의 단맛은 오렌지 껍질의 향기와 엮이는 식으로 감각이 그물망처럼 뒤엉킨다. 얼음이 녹아 일어나는 희석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형태로 중간 즈음부터는 아주 다른 음료가 되어버리는데, 전형적 올드 패션드의 그림이 종착이 아닌 경유지의 인상이다. 마지막 즈음의 단맛은 위스키의 향이 아닌 과실의 신맛과 짝이 맞는다.
완벽한 올드 패션드냐고 하면 단언코 아니라는 말부터 나오겠지만, 가려야 할 단점도, 또 돋보이고 픈 장점도 마땅하지 않은 위스키를 이용한 새로운 음료의 측면에서 가능성을 본다. 기존의 올드 패션드가 위스키와 단맛, 그리고 비터스의 구성에 주목했다면 일본식 올드 패션드는 시트러스에 치중한 향기와 신맛이 또 하나의 축으로 개입한, 두 축의 음료라는 점에서 티 펀치Ti' Punch같은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강렬한 라임향과 높은 알코올, 그리고 신맛의 조합은 이미 무수히 많은 칵테일에서 검증된 바 있다. 일본에서는 올드 패션드마저 단맛과 신맛, 그리고 기주의 삼두제를 만들려고 했었던 걸까. 조금만 더 밀어붙인다면 아주 새로운 장르까지 될 지도 모른다.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도 귤, 오렌지, 자몽 등을 전부 사용해 만든 시트러스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두 종류 이상의 과실향을 켜켜이 쌓는 방식은 매혹적이면서도 완성된 문법은 없어 추후 또 다른 실행의 등장을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