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알래스카 - 백년지대계

알래스카라는 칵테일을 세상에 남긴 사람은 해리 크래덕이다. 1910년대에 먼저 이 칵테일을 자신의 책에 기록한 사람이 있지만, 「사보이」에 실리지 않았다면 이 칵테일이 기억되었을 가능성은 없다.

알래스카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이름을 말해도 대부분 모르는 수준의 인지도의 칵테일인데 비해 금주령 시대 미국을 레퍼런스로 하는 일본 바에서는 나름의 인지도를 지닌 칵테일로 살아남아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이한 칵테일이다. 사샤 페트라스케의 죽음 이후 옛 칵테일의 복각 작업을 유의미하게 이끄는 쪽은 그랜트 애커츠의 더 에이비어리 & 더 오피스정도밖에 남지 않은 현실에서 다시 옛 칵테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는 그에 답하기 위해 알래스카, 정확히는 샤르트뢰즈 그린으로 만드는 그린 알래스카를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마시고 또 마셨다.

사보이 칵테일 북의 기존 레시피는 보다시피, 3:1로 옐로우 샤르트뢰즈를 사용해 셰이크하는 칵테일이다. 하지만 내가 짐짓 내린 결론은 결국 이 칵테일은 맛을 위해서 이 레시피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샤르트뢰즈는 옐로가 아닌 그린을 쓴다. 끝의 민트 비스무리한 상쾌한 뉘앙스가 진의 주니퍼와 썩 어우러져 마티니와 달리 강 대 강으로 대치하는 흐름을 조금 더 자연스레 이끈다. 셰이크가 아닌 스터로 만드는 것은 우에다 카즈오가 고안한 아이디어인데, 그는 「Cocktail Techniques」에서 "맛을 위해서는 스터, 이미지를 위해서라면 셰이크하라"고 가르친다. 스터는 셰이크에 비해 냉각 효율이 떨어져 알래스카라는 이름처럼 차가운 칵테일이 되기는 어렵지만, 산이나 지방이 들어가지 않는 레시피의 특성상 셰이크를 할 이유는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알래스카 칵테일의 가장 큰 묘미는 그 이름의 기원을 정말 찾을 수 없는 물건이라는 데 있다. 가장 유력한 추측은 이 칵테일의 최초 기록이 1913년이라는 점을 근거로 알래스카의 준주(organized territory) 편입을 기념하는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내용일 뿐, 정확한 기원은 없다. 또한 정작 알래스카에서 즐겨 마시는 칵테일도 아닌, 그야말로 천애고아 레시피로 거꾸로 이런 불분명한 기원이 발전의 계기가 되지는 않았는가. 마시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각자 머리속에 있는 알래스카를 나름대로 적용해보려 노력할 뿐이다. 그중 대부분은 당연히 그곳의 공기조차 마셔보지 않은 상태로. 결론으로 다다른 우에다 카즈오 스타일의 알래스카 역시 그런 흐름을 따랐을 생각을 하면 즐거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또 재밌는 점은 그 우에다 선생이 셰이크하는 칵테일을 스터로 만들라고 지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셔보면 그 논리가 당연한 듯 다가오는데, 그가 단순히 셰이크를 잘하는 셰이크 명인 따위가 아님을 아주 잘 보여주는 레시피라고 생각한다. 그는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금주령 시대의 레시피를 상대로 "왜"를 물어보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런던 드라이 진에 그린 샤르트뢰즈, 1:4~1:5 정도로 스터. 생각건대 오늘날이라면 미스터 마티니의 아이디어를 빌려 조금 더 차가운 진으로 만들어볼 법도 하겠다. 내 머릿속의 알래스카는 그런 느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