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 앤 몰트 - 라온 위트 에일
이전 게시글에서 매니아들 타령을 좀 했는데, 이러한 매니아-드리븐 시장하면 빼놓기 섭한게 또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다. "라오타"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주로 목격된다면 "비어긱"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관측되기 시작한 현상이다. 지금도 크래프트 맥주 시장 동향을 쫓고 있긴 하지만 여러모로 재미와 열정보다는 현실성이 가득한 시장이므로 굳이 짜증나는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하게 되는건,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 보이는 독특한 한 가지의 경향성 때문이다. 바로 리셀 문화다. 지역주의, 소규모 고품질 생산 등의 가치를 내걸다 보니 소셜 미디어 시대 소문의 속도에 비해 맥주들은 빠르게 생산량을 늘리지 못했다. 혹은 늘리지 않았다. 그에 따라 희소성이 치솟기 시작한 맥주들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좋은 크래프트 맥주라면 웃돈을 주거나 줄을 서거나 유통처와 다소간 비밀스러운 거래를 하는게 권장되고 또 부러움을 사는 요소가 되었다. 줄을 대신 서주는 사람을 구인하거나 수량이 한정된 맥주를 교환하는 등 맥주 시장에서 맛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전쟁은 날이 갈수록 복잡하고 치열해져 간다.
그렇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오늘날 이딴 식으로 흘러가는 시장은 비단 맥주의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는 한 끼 식사를 "밥과 숟가락, 젓가락의 코라보레이숀"으로 찬미할 매체의 등장이 머지않았다. 그러나 유독 맥주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불유쾌하게 다가온다. 왜일까.
핸드 앤 몰트는 국내에서 나름대로 흥미로운 맥주들을 만들던 양조장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작품은 오크통에 숙성한 맥주 「마왕」으로, 국내에서는 제한적인 수요를 가진 형식의 맥주인 만큼 소량 한정으로만 판매되었다. 올해에는 아예 소식도 끊겼다. AB인베브가 인수한 핸드 앤 몰트는 공정을 확장해 자신의 이름값을 드높였던 맥주를 내놓는 대신 바로 이런걸 내놓았다.
네이버에 검색하는 즉시 "홈술" "수제맥주" 등의 키워드가 광고 계약에서 요구된 조건인지 모두 같은 키워드를 공염불 외듯 외는 광고 포스트들이 주루룩 등장한다. 이런 부류의 광고를 쓰는 물건들은 다루지 않겠다고 했거늘. 하지만 이미 한 캔을 비우고 감상이 완성되어 선고만이 남아 예외 처리한다.
밀맥주 특유의 질감이 형성된 가운데 놀랍도록 맛이 밋밋했다. 그나마 있는 희미한 맛의 방향은 단맛 쪽에 치중되어 있다. 풍미가 흐리고, 음용성에 집착하고, 단맛이라고?? 우리는 어떤 맥주를 떠올린다. 맥주 세상은 이렇게 흘러간다. 세계를 들먹이는 애호가들과 그들이 좇는 희귀 맥주들은 주류소매점을 스치듯이 매진되기를 반복하지만 그러한 열풍이 일상에 반영되는 모습은 바로 이렇다. 어떤 애호가들은 기뻐할지도 모른다-그들이 소유한 희귀한 경험의 가치는 더더욱 오를테니까! 이제는 놀랍지 않은 맛과 더 재미없는 캔 디자인으로 무장한 새롭지 않은 새 맥주들이 지겹다. 예약이 어렵다는 식당들, 미리 손을 쓴 사람들에게 넘어가고 없는 깡통 속 맥주들, 한 끼가 얼마 세계 3대 진미 소리를 십 년도 넘게 반복하고 있는 음식 리뷰 매체들. 나는 그 모든게 지겹다. 바이엔슈테파너와 파울라너도 독일에서는 종종 TV 광고를 하지만 그들의 무기는 새로움이나 희소성이 아니라 품질이다. 대형 마트에서 묶음으로 구매할 수 있고, 커다란 말통으로도 판다. 왜 우리는 그렇게 즐길 수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