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미식과 요리의 역사, 경북대학교출판부, 2017
고백컨대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렸다. 공공대출권 제도가 도입 논의에 그치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좋은 일은 책을 구매하는 일이지만, 모든 책을 전부 구매하기에는 나도 무리가 있다. 따라서 우선순위가 있는데, 보통은 빌릴 수 없는 것들이 앞에 선다. 나는 다양한 경로로 독서하는데, e북으로 된 책들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고 종이책을 스스로 e북으로 만들어서 보기도 한다. 무거운 책은 여러모로 불편하니까. 특히 요리책은 대형이 많아서 발췌독에 곤란한 지점이 많다.
그러다 보니 e북은 캡처와 저작권 문제도 있고(엄밀하게는 종이책도 내부를 굳이 찍어 올리지 않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하여 마치 음식의 사진을 찍듯이 책을 찍는 일은 이 책을 마지막으로 굳이 하지 않으려 한다.
빌린 책에 왜 서평질인가? 이게 도의적으로 타당한 일인가? 하는 질문이 앞선다. 당연히 최선은 구매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변호하자면, 나는 서평을 하는게 아니다. 책을 소개하거나 낭독하는 수준으로 내용을 낱낱히 밝혀가며 수익을 창출하는 매체들과 동일시도 하지 말아달라. 무슨 자격으로 그러겠냐만은, 책에 관한 나의 글은 궁극적으로 여러분께서 책을 읽어보고 싶어 하게 하는데 있다. 달리 말해, 그렇지 않은 책은 애초에 다루지도 않는다. '평'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나는 나의 독자와 내가 독자로서 읽은 책 사이에 가교를 놓고 싶다. 책 안에 꽁꽁 갇힌 지혜들이 다른 이들에게 넘어갈 수 있게, 그들이 그 다리를 건너고 싶도록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단지 졸렬한 핑계에 불과하게 보일 지 모른다. 그러나 비용을 지불하기 전까지 침묵하기에는 소개하고픈 책들의 존재가 너무나 소중하다.
자, 자기변명의 시간이 길었다. "프랑스 미식과 요리의 역사"라, 이런 책은 사실 종류도 많은데 왜 하필 이 책인가. 그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먼저 책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 책은 번역본이다. 영어 중역이 아닌 불어 번역본으로, 파트릭 람부르이 Perrin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 Histoire de la cuisine et de la gastronomie françaises라는 책의 2010년 판본을 옮겼다.(저자는 프랑스어판을 2013년에 개정한 바 있다.) 제목의 '요리와 미식'은 각각 Cuisine과 Gastronomie의 대응인 셈이다.
왜 이 저자의 이 책인가? 프랑스 요리 전반에 대한 개론서로서 역할을 자처하는 텍스트들은 도처에 있다. 국내 저자들의 책들도 있고, 여행 가이드를 겸하는 책들도 왕왕 보인다. 극단적으로는 인터넷 위키에도 프랑스 요리 전반을 기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은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 중에서는 단연 앞서나간다.
첫째로, 일단 내용이 풍성하며 정확하다. 편견의 영역에 존재하여 쉬이 의심할 수 있는 부분들이 무수한 각주를 통해 정리된다. 무수한 요리책들이 마치 진리를 설파하듯 레시피를 가르치면서도 증명이 없는 현실에서 가볍게 백 여개가 넘어가는 참고문헌은 한국어 독자에게 그 자체로서 새로운 사전으로까지 기능해줄 수 있다. 또한 프랑스 요리의 역사에서 중요한 지점들에 대한 언급에 부족한 지점이 거의 없이 작은 책 안에 꼼꼼히도 담았다. 중세시대 버터가 부흥한 배경, 시대별로 요리를 바라보는 시각 등을 빠짐 없이 언급하여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돕는다.
둘째로, '미식'의 측면을 제대로 가장 제대로 다루고 있다. 앞선 부분의 연장선에서, 본서는 다른 한국어 출판물들과 단연코 구분되는 지점으로서 미식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 주관을 가진 요리를 한다는 문화를 소개하는 몇 안 되는 책이다. 비록 「시학」 「수사학」부터 시작할 수도 있는 인류의 비평의 방대한 역사를 담고 있지는 않으며, 저자의 출신 대학의 이름이기도 한 디드로 이하 백과전서파가 짤막하게 언급되는데 그치지만, 요리를 예술로서 바라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충분히 살핌으로서 저자는 '미식의 역사'를 기술한다. 특히, 고 에 미요Gault&Millau의 귀중한 초기 텍스트를 번역해둔 거의 유일한 출판물이자 가장 풍부한 출판물로서 큰 가치가 있다.
셋째로, 독자로 하여금 식문화 전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짜여있는 정교함이 있다. 저자는 가능하다면 자신의 주관을 독자에게 강요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권위와 전문성을 지녔다. 간단하게 소개헤서, 그의 가장 최근 작품이자 역작인 L'Art et la table은 피에르 가니에르와 에르베 디스가 서문을 썼고 역사학자로서의 본분의 성격이 짙은 La cuisine à remonter le temps은 미셸 게라르가 서문을 맡았다. 저자가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글을 쓰는지 여러분도 짐작이 가리라 믿는다. 책을 팔기 위해 인스타그램의 여느 계정처럼 학벌을 전시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디플롬 하나로 전문가 대우가 가능한 서울에서 파리 7대학(드니 디드로)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역사학자이자 그랑제콜인 EHESS에서 6년을 공부했으니 '딱지 장사'가 가능하고도 남는다. (기타 저자의 경력사항은 그의 링크드인 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정도 경력을 가진 저자의 글을 이렇게 편하게 볼 수 있는건 국내에서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글을 통해 자신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중서로서 적당히 편집되어 있지만 일관되게 글의 흐름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요리, 자신의 미식이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만든다. 알다가도 모를 사기업이 수여한 별이나 점수로 요리의 옳고 그름마저 결정되는 나라에서 이렇게까지 믿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이렇게 겸손한 글은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으며, 저자의 이후 출판물들과 기타 저작들,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기타 지식들을 통해 이 책을 여러분은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첫째로는 주제가 프랑스 요리이다보니 프랑스 바깥의 요리에 대해 다루지 않는 점. 베르나르 루아조의 죽음을 뒤로 하여 누벨 퀴진 시대 이후에서 책이 끝나지만, 프랑스 바깥의 프랑스 요리나 기술-서정적 요리와 같은 연관성 있는 주제들은 다루지 않는다. 둘째로는 역시 사소한 오역(포르치니를 '새송이 버섯'이라고 옮긴 부분. 차라리 느타리로 옮기는게 나았다. 최선은 포르치니로 병기하거나 그물버섯이라는 표현을 쓰면 그만이었다)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점. 역자들의 역할은 아니지만 옮기기 곤란한 불어 표현들이 참 많다는 점도 느낀다. 그래도 각주까지 한국어화한 위대함에 힘입어 여느 독자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요리 분야에 있어 이러한 역자들의 역할이 정말로 크다. 감사함을 느낀다. 그들이 저자와는 달리 온전히 요리 역사에만 몰두하지는 못하지만, 김옥진 역자가 작년 피에르 에르메의 디저트 백과를 옮긴 것을 보면 그 사랑이 계속되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라는 마음도 든다. 김옥진과 박유형, 두 역자에게 기회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쓰고나니 내가 이 책을 구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곧 구매하여 두 역자와 저자 파트릭 랑부르에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빌려서 보는 것으로 끝맺기에는 가진게 많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