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반 - 복건과 호키엔
특정 호텔에 대해서는 일신상의 사유로 게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과거에는 포 시즌스가 그랬다), 호텔의 영업에 대해 다루지 않는 선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은 다뤄보고자 한다.
포 시즌스 유유안의 계보를 잇고 있는 인스파이어 호텔 앤 리조트의 '홍판'에서는 위의 사진과 같은 음식을 '복건식 볶음밥'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새우와 당근이 조금 더 두드러지긴 하지만 '유유안'의 푸젠식 볶음밥과 닮은 이 요리는 그 정체성을 드러내는 역할에 더해 본 레스토랑의 품은 야심까지 느낄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한국어 메뉴판의 그 이름 '복건식 볶음밥'이 나에게는 미묘한 고민을 안기는 것이었다.
복건(푸젠)은 어디인가? 대만 섬의 중화민국과 마주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양안관계 최전선으로 광둥성과 같이 화려한 중국 남부 요리의 해리티지를 가진 지역이다. 그만큼 그 이름에서도 자부심이 묻어난다. 광둥 요리를 '칸톤 요리'라고 하는 것처럼, 나는 이 볶음밥을 '호키엔 차오판'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우리가 떡볶이를 Korean spicy pepper-paste based rice cake...로 부르지 않는 것처럼, 요리의 이름은 원어 내지 음차하는 것이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한다.
그렇다. 그들은 복건도, 푸젠도 아닌 호키엔Hokkien이다. 하지만 또 나아가서 생각해 볼 지점은 정작 이 요리는 푸젠성에서 만들어진 것조차 아니라는 점이다. 통설에 따르면 이 요리는 2차대전 막바지 전후로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발생했다고 하는데, 이 시기의 여느 요리가 그렇듯이 근현대사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감칠맛이 베어든 걸쭉한 전분 소스는 루미(滷麵)같은 요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푸젠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이를 勾芡라 한다) 정작 볶음밥에 덮어 먹는 것은 푸젠 바깥에서 처음 나타난 스타일이다.
고슬고슬하게 건조함을 느끼기 직전까지 가벼이 흩날리는 질감을 정수로 하는 중국식 볶음밥이지만, 호키엔 차오판은 걸쭉한 전분 소스를 끼얹으니 금방 눅눅해지는 볶음밥이 아닌가 여러분이 충분히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어느 정도는 올바른 생각이다. 유유안과 홍반에서 보는 테두리가 넓은 접시를 사용해 둘러내는 스타일은 다소 현대적인 개량을 거친 것이고, 전형적인 호키엔 차오판에서는 소스를 그냥 끼얹어 윗부분은 빠르게 젖어든다. 하지만 이 요리가 질감을 고스란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전분으로 점도를 잡은 소스는 일부러 들쑤시지 않는 한 전체를 적실 정도로 빠르게 스며들지 않아, 적당한 숟가락질로 가볍게 볶아진 볶음밥과 묵직한 소스의 감칠맛을 마음껏 취할 수 있다. 다만 내부의 보존을 위해 볶음밥을 강하게 누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오히려 질감을 해치는 부분도 있다고 느낀다.
결론적으로 마주한 홍반의 '복건식 볶음밥'은 어땠는가? 살짝 간이 약하지만 바르게 볶아낸 달걀 볶음밥과 강한 감칠맛의 소스는 분명한 즐거움이 있다. 호키엔 차오판의 시각적 기호를 상징하는 야채가 색을 더하고, 젖어든 볶음밥과 젖지 않은 볶음밥이 뒤섞일 때 감칠맛과 기름의 고소함을 모두 움켜쥐는 쾌락을 맛본다.
이쯤 되면 여러분도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볶음밥에 끈적한 소스 그런 음식이 있는데. 바로 현대 한국식 볶음밥 아닌가? 그렇다. 짜장을 끼얹어낸 그 볶음밥 말이다. 오로지 자체의 간과 파의 향긋함으로 승부하는 고전적 볶음밥이 객의 선호 변화와 주방 숙련도의 저하로 짜장의 맛을 전달하는 매개가 되고 만 그 요리. 나는 홍반의 볶음밥에서 한국 중식의 미래를 본다. 소스를 맛있게 먹기 위한 볶음밥은 분명 가능태다. 하지만 현실태가 되었는지는 부정적이다. 유려한 감칠맛, 한껏 점도 높은 소스를 입안에 오래 머금는 즐거움을 주는 씹을 맛 있는 닭고기나 새우의 존재감과 같은 총체적 완성도는 구현되지 않았다. 물론 물욕을 전시한 것 같이 커다란 고깃덩이로 면을 가리는 짜장면 같은 것을 꿈꾸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