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의 근현대사 ① : 현대 피자의 탄생
I. 왜 피자의 역사인가
살기 위해 먹는 수많은 보통사람들부터 먹기 위해 산다는 몇몇 식도락가들까지 모두 친근하게 느끼는 음식이 무엇이 있을까? 그중에서도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며, 잘 앎으로서 더 나은 요리가 될 가능성이 큰 요리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 음식중에는 삼겹살과 갈비가 떠오르지만 이는 내 흥미를 자극하지 못했으며, 한국식 중식이나 햄버거 등도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만 당장의 가능성을 두고 본다면 나는 피자가 가장 급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식 중식은 형식이 정립된 이래로 사정에 따라 일이보 정도의 진퇴를 거듭하고 있을 뿐 큰 변화가 없고-짜장면의 달걀 후라이가 제거된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일 정도이다- 햄버거와 피자 중에는 피자를 논의할 이익이 많다. 피자는 프랜차이즈 매장이라 할지라도 반죽을 직접 만지는 등 주방에서 개입할 요소가 보통 더 많고, 고기를 먹고싶은 현대인의 욕망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 격없이 대화를 나누기 좋은 주제가 되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 서울의 햄버거와 피자중 무엇이 더 나를 슬프게 하는가 하면 피자이다. 더 맛있는 피자를 더 자주 먹고 싶은 욕심이 나로 하여금 이런 글을 쓰게 만든다.
II. 피자의 개념사Begriffsgeschichte die Pizza
피자(Pizza)라는 단어는 너무나 강력한 힘을 가진 나머지 거의 세계의 모든 곳에서 동일한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p/가 없는 아랍어에서는 빗자(بيتزا)이며 독일어에서는 피자의 복수형이 존재(die Pizzen)하는 등 언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Pizza의 옮김말중에는 음차만이 존재할 뿐 뜻을 옮긴 다른 말은 없다. 이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기원이 있지만 이는 검증이 어려우므로 생략하고, 그보다도 다루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오랜 시간동안 이 pizza라는 단어가 지금의 의미와는 달리 쓰였다는 점이다. 문헌을 살펴보면, pizza에 앞서 pizza, pizzelle와 같은 형태의 명사들이 특정한 음식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게된다. 그러나 이들은 반죽을 구운 빵이나 케이크라는 넓은 의미에서 주로 사용되며 지금의 이해로는 포카치아와 혼동되고 있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나폴리 방언 기록으로 가장 중요한 문서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잠바티스타 바실레의 Pentamerone에 등장하는 핀토 스마우토Pinto smauto와 같은 민화에서 등장하는 pizza/pizze의 경우가 그렇다. 이는 시칠리아~칼라브리아까지 이탈리아 남부 전역에서 발견되는 민화를 기록한 것으로 공주가 설탕과 아몬드 등으로 반죽을 만들어 남편감인 왕자를 직접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 공주가 외치는 주문에서 다음과 같이 pizza/pizze가 등장한다.
Anola, Tranola, pizza fontanola!
Tafaro e tammurro, pizze 'ngongole e cemmine! [1]
여기에서 아놀라 트레놀라는 전적으로 운율때문에 삽입된 것으로 해석되며, 다음 주문에서 Tafaro e tammurro는 엉덩이 부분을 커다란 드럼(Tamburo)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2] 다만 Masiola(2018)는 여기서 pizza의 의미를 현대의 피자로 이해하고 있는데[3] 그렇게 이해할 경우 이 이야기는 굉장히 이상해진다. 왜냐 하면 피자의 재료가 팔레르모산 설탕과 아몬드, 향기를 우린 물 등 단맛이 강한 것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후대에 칼비노가 기록한 칼라브리아의 민화 Il Reuccio fatto a mano 역시 유사한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피자라는 표현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지만 설탕과 아몬드 가루 등을 이용해 신랑감을 빚는 이야기는 수백 년의 세월을 넘어 거의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4] 이를 통해 추측해보면 바실레가 기록한 pizza/pizze는 오늘날의 피자보다는 케이크와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피자가 오늘날의 의미와 같이 식사용으로 조미한 플랫브레드를 의미하게 된 것은 19세기 경으로 보인다. 역사학자 마토치의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사전들은 피자의 의미를 포카치아와 동일하다고 기록하며, 일상적으로는 피자가 아닌 포카치아라는 단어가 통용된다.[5] 1830~40년대에 들어서자 포카치아와 구분되는 나폴리의 음식으로 피자가 구분되기 시작하며 나폴리의 민속을 기록한 문헌에서 피자가 자주 등장한다. 19세기 중반에 접어서 나폴리에서는 확실히 플랫브레드의 이름이 피자로 정착한 것으로 보이나, 이외의 지역에서 여전히 피자라는 표현은 사용되지도, 또 이해되지도 않았다.
이탈리아인, 특히 나폴리인들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피자를 팔기 시작한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흔히 미국 최초의 피제리아는 현재 32 Spring St.에 위치한 Lombardi's로 알려져있는데, 이 가게는 본래 53 1/2 Spring St.에 위치하고 있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롬바르디에 앞서 피제리아를 경영한 Filippo Milone, Giovanni Santillo라는 인물들이 존재했다고 한다.[6] 이들은 당시 이탈리아어 신문에는 자신들의 가게를 피제리아로 홍보했지만, 공식 서류에는 제빵업자(Baker)나 파이 제조업자로 등록했다. 이후에 개업한 노포들 역시 대부분 피자를 토마토 파이로 불렀다. 현재도 존재하는 브루클린의 Papa's Tomato Pies, De Lorenzo's Tomato Pies와 같은 가게들이 산 증인이다. 이처럼 피자는 19세기까지는 전적으로 나폴리에서만, 20세기에서도 이탈리아인들에 한해 통용되는 개념이고 음식이었다.
피자가 세계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연합군이 이탈리아 전역에서 파시스트들을 몰아낸 이후라고 알려져 있다. 생각건대 제대로 된 분기점은 피자 헛과 도미노 등 주요 피자 체인이 등장한 60년대라 추측한다. 프랜차이즈 피자 산업이 발달하면서 미국 피자는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손을 떠난 독립적인 요리로 분화되기 시작했고 그만큼 소비량도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았을까. 주목할만한 점으로 하와이안 피자의 탄생년도 역시 60년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1962년).
III. 피자 마르게리타
나폴리에서 피자가 라차로니들의 음식으로 견고한 입지를 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유행이 전적으로 외국은 커녕 이탈리아 중북부에도 퍼지는 일은 없었다. 이탈리아 그 어디에도 나폴리와 같이 빈민이 밀집한 도시는 없었을 뿐 아니라 언어와 식문화에 있어서 같은 나라라고 하기에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이 피자라는 음식이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음식으로 발돋움한 것은 이탈리아 통일 이후이다. 정확히 계량화된 자료는 없지만, 피자의 전국적 인지도가 마르게리타의 전후로 나뉨에 있어서는 큰 이견이 없다.
마르게리타의 이야기는 여러분도 뻔히 알고계시리라. 프랑스 음식에 질린 왕비 사보이아의 마르게리타가 피자이올로에게 이탈리아 음식을 부탁했고 피자이올로는 세 가지 피자를 대접했는데, 그 중 세 번째로 바질, 모차렐라 그리고 토마토로 이탈리아의 삼색을 그린 피자가 그녀를 사로잡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최근 연구에 의해 거짓일 가능성이 몹시 높음이 밝혀졌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 에피소드의 디테일을 이해해야 한다. 당시 천민에 가까운 피자이올로의 가게에 왕비가 직접 행차해서 피자이올로에게 박수를 쳐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는 완성된 음식을 그녀에게 보냈고, 왕비의 뜻을 전한건 궁정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피자를 높이 산다는 여왕의 친서는 1990년대까지 마르게리타의 원조를 칭하는 Salita S. Anna di Palazzo 1/2의 Pizzeria Brandi에 자랑스레 걸려있었는데, 이 문서는 궁정의 총책임자인 Camilo Galli의 명의로 작성되어있는데 실제 그 이름으로 발행된 다른 궁정 문서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어색하다. Nowak(2014)이 밝히기를, 실제 궁정의 명의(Casa Real)로 발행된 문서는 고정으로 인쇄되어 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게리타 문서는 전부 수기로 작성되어 있으며 공식적인 부서 이름도 틀리다. 그리고 궁정 문서임을 입증하는 문장 역시 이탈리아 왕정이 지속되는 동안 문서에 사용된 적이 없는 도안으로 위조를 의심케 하며, Camilo Galli의 서명 및 필체와도 일치하지 않는다.[7] 이 서류를 받은 사람으로 되어있는 전설 속의 인물 Raffaele Esposito는 실제 왕실의 허가를 받아 어떤 사업을 하긴 했지만 이는 주류유통에 관련된 것으로 피자에 대한 언급은 일절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문서에서 그의 이름은 Sig. Raffaele Esposito Brandi로 기록되어 있는데, Brandi는 그의 부인인 Giovanni Brandi의 성이다. 유럽에서는 남성이 이와 같이 모계성을 병용하는 전통자체가 없는데, 이는 왕실에서 마르게리타 피자를 인정했다는 문서가 거짓임에 더해 애초에 에스포시토의 이름에 그 아내의 이름까지 덧붙여 이런 문서를 만들었을 이유가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의심케 한다. 바로 지금의 Pizzeria Brandi를 운영하는 브랜디家가 그 범인으로 보인다. 문헌상 여왕의 마르게리타에 대한 언급이 최초로 등장한 때는 1929년으로, 나폴리의 저널리스트 Michele Parise가 이들을 취재해 쓴 기사에서 브랜디家 사람들이 주장한 것을 받아적은 내용이다. 이후 대공황 시기 즈음하여 이들은 그 내용을 전단으로 인쇄하여 나폴리에 대대적으로 광고했고 그 내용은 사실로 받아들여진 채 오늘날까지 내려왔다.[8] 그러나 그 내용의 진위와 무관하게, 실제로 피자 마르게리타는 이탈리아인을 상징하는 음식, 정확히는 통일된 이탈리아 민족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아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곧 이탈리아 중부, 북부에서도 독자적인 피자 문화가 발달했고 이탈리아는 흰 치즈와 토마토의 종주국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니, 거짓 전설이 진짜 역사를 만들어낸 셈이다.
Basile, G. M. (1995). Lo cunto de li cunti(Ed. Rak. M.). Garzanti. p. 128. ↩︎
Masiola, R. (2018). Interjections, Translation, and Translanguaging: Cross-Cultural and Multimodal Perspectives. Lexington Books. pp. 59-60. ↩︎
ibid. ↩︎
Calvino, I. (1956). Fiabe Italiane. Einaudi. ↩︎
Mattozzi, A. (2015) Inventing the Pizzeria: A History of Pizza Making in Naples. Bloomsbury. pp. 38-39. ↩︎
Regas, P. W. (2021). Who Established the Famous Pizzeria at 53 Spring Street?. https://pizzahistorybook.com/2021/09/30/who-owned-the-pizzeria-at-53-spring-street/ ↩︎
Nowak, Z. (2014). Folklore, Fakelore, History. Food, Culture, Society, 17 (1), pp. 103-124. ↩︎
ibi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