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더멘탈 브루잉, 인섬니아
간만에 좋은 맥주였다. 버팔로 트레이스를 쓴다는 광고 멘트는, 라피트 로칠드니 무통 로칠드니 들먹이던 위스키 업계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지만(참고로 중고 버번 배럴은 소매시장에서 $200 언저리에 거래된다) 취지에 정직한 완성도였다. 정당한 강도, 적당한 농도가 있어 복잡함 없이도 한 잔을 끝까지 마실 수 있었다. 검은 음료의 단맛은 언제나 즐겁다.
문제는 맥주 바깥에 있었다. "알고 씨부래라"라고 써있는 현판 아래에서 그야말로 폭거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KRW 18000의 커리부어스트, 한국의 맛이라는 "갓도그"-갈비맛 소세지- 등을 보니 심경이 복잡했지만 내 팔자에 들어올 물건들은 아니었다. 과연 알고 씨부리려면 얼마나 알아야 하는가. 시트롱마카롱에서 나온 책이 눈에 띄었는데 이런 책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이 주방은 알고 있을까. 디드로의 후계자인 프랑스인들은 정말 분야마다 이런 책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끝이라고 이해해버리면 곤란하다. 아무렴, 샤퀴테리가 되었건 메츠거라이가 되었건 순대가 되었건.. 현대에 감히 남을 가르치려면 노즈 투 테일을 넘어서(beyond nose to tail)까지는 아닐지라도 전통이 남긴 형태들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는... 과연 저 육가공품들이 나의 부정적인 선입견을 깰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럴 용기는 없었다. 또 나는 무엇을 알고 씨부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