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nting the Pizzeria, Bloomsbury, 2015

독자 여러분은 피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미국발 프랜차이즈들, 그리고 그로 인해 영향받은 국산 체인들을 위시로 한 친숙한 배달 음식이라고 하면 적절하겠다. 치즈와 토마토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 식문화에서 피자는 여전히 썩 부담되는 가격대의 음식이다. 한 때 자웅을 겨루었던 프라이드 치킨이 KRW 20000 아래를 배회하는 가운데 피자 한 판은 이미 KRW 30000을 넘어 40K, 50K를 넘본다.

그러나 서구 세계에서 피자는 그 반대로, 일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다. 아주 최근까지, 심지어는 지금도 그렇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마차를 타고>에서 기록하기를, 동전 한 닢으로 또 하루를 연명하게 해줄 수 있는 음식, 두 닢으로는 한 가족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이 피자라고 전한다.1

이 책은 19세기 나폴리에서 일어난 피제리아, 그리고 피자이올로피자 굽는 사람들. 이 말은 영어로도 마땅한 번역어가 없다의 출현을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보고자 시도한다. 지역 풍습을 기록한다거나 그 위대함을 노래하고, 혹은 과거를 추억하는 등의 목적을 띄거나 흔히 환상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낙후된 지역의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고, 피자라는 현상의 탄생의 배경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이 위대한 피자를 남긴 위대한 사람들, 고고한 장인정신 대신 먹여살릴 가족과 직원들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영원한 지혜를 남길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책이다.

항상 책을 소개하면서 내용을 요약해 줄줄 읊지 않으려 한다. 독자가 직접 읽는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용을 조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독자중에 사서 읽을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용을 조금 알고 나면 흥미가 생길 듯 하다. 내 인생의 맛있는 즐거움이 중요하지, 피자 역사 따위 알까보냐 싶은 사람들에게도 이 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조금 다뤄보자.

피자와 피제리아, 피자이올로가 각각 분명한 일반명사로 자리잡기 이전에도 이탈리아 전역에서 포카치아와 같은 빵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런 빵만을 구워서 파는 "피자이올로"가 명확하게 자리잡은 것은 확실히 19세기이다. 이렇게 피자는 그 본격적인 탄생부터 요리가 아닌, 만드는 사람과 전문점이 함께 등장한다는 점이 매우 독특한 점이다. 피자이올로들이 등장하면서 피자가 피자가 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제시한다. 첫째는 사람이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보내며 무역도시로 번성했던 나폴리에는 다양한 지역의 이민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들 중 상당수는 빈민으로 전락했다. 이 빈민들을 나폴리에서는 lazzaroni라고 불렀는데, 18~19세기 지식인들이라면 그 존재를 알 정도로 나폴리 통치에 있어서 핵심적인 계급이 되었다. (가진 것은 없지만 머릿수가 많다보니 노점 중심의 경제, 그리고 노숙인 중심의 정치라는 독특한 나폴리의 지형을 형성한 이 자들은 후에 헤겔과 엥겔스 등에 의해 "룸펜프롤레타리아"의 현신 비슷한 것으로 취급을 받아 지식사회에도 널리 알려진다.) 지중해 무역에 연관된 대부분의 문화권의 사람들이 뒤섞이다 보니 지중해에서 가능한 식자재는 다 실험대에 올랐다.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토마토와 같이 이국적인 것, 올리브와 바질, 오레가노 등 반도 끝자락의 자생하는 저렴한 식물들, 삼면 바다에서 나오는 바닷것들 등 온갖 것들이 이 무수한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동원되었다. 지금은 피자에 쓰이는게 일반적이지 않은 돼지기름나폴리어로 sugna과 같은 것이나 현대의 마르게리타의 원형의 조합까지도 이미 19세기에 피자에 올려먹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넓적한 반죽 위에 불가능이란 없었다. 둘째는 공간이다. 앞서 살폈듯이 나폴리 인구가 폭증하면서, 나폴리는 당시 유럽 최대의 인구밀도를 지닌 도시가 되었다. fondaco2라 불리는 반지하 거주시설로 대표되는 대다수의 빈민용 주거시설에는 변변찮은 주방이 없었으며, 전업으로 가사를 담당할 주부가 있는 등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자연히 단순한 외식에 대한 수요가 매우 컸고, 이 빈민들을 먹이기 위한 직업이 탄생하기에 알맞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탄생한 피자의 전통은 빈민들 뿐 아니라 고귀한 자들과 먼길을 따라온 여행자들까지 사로잡았다.

그럼 피자를 만드는 피자이올로는 좀 잘 살았는가, 빈민을 먹여살리는 만큼 본인도 가난했다. 정확하게 말해, 이 시대 나폴리에서 빵 만드는 직역들은 가난하기로는 끝을 달리는 분야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부르봉 왕가를 걷어차고 나폴리를 복속시켰을 때 새로 작성한 조세 문서에서 빵장이들은 2두캇, 즉 모든 직업 중 가장 적은 세금을 납부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들의 벌이 또한 뻔했으리라 짐작한다. 이후 이 조세제도는 다시 7개 계급으로 재편되는데, 이때도 다시 피자이올리는 밑바닥임을 공인받는다. 소르베 판매업과 와인 유통이 무려 7계급중 2번째에 위치했다면, 같은 식음료인데도 피자이올리는 마카로니 제조업, 오팔offal 제조업, 맹물 장수와 함께 밑바닥이었다.

이토록 피자를 둘러싼 삶은 참으로 변변찮았으나, 그 덕에 피자 경제는 빠르게 복잡다단하게 발전했다. 만들어지기 전의 피자를 미리 매수한 뒤 판매하거나, 혹은 노점에 떼와서 유통하거나 배달을 해주는 피자 행상인pizzaiolo ambulante은 피자를 나폴리 대표 음식으로 정착시키는데 공헌하였고, 빈민가의 특성상 현금이 달리다보니 오늘 먹고 여드레 안에 지불a oggi a otto이라는 독특한 외상 관행이 형성되어 피자를 단순한 외식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매개로 기능하게끔 만들었다.

덕분에 피자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보이는 수많은 플랫브레드 중 단언코 으뜸으로 올라섰다. 언제나 빈민을 먹이는 단순한 플랫브레드들은 존재했지만, 단순하게 만들어지는 흰 치즈, 저주의 작물 토마토, 저렴하기 그지없는 잎사귀들과 코딱지만한 멸치들까지, 먹고 살아남기 위한 지혜들을 깊고 넓게 흡수했고 그것들이 오늘날 나폴리의 피자의 뿌리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음식인만큼, "무엇이 나폴리 피자다!" 혹은 "정확히 어떤 것부터가 나폴리 피자다!"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나폴리에서 피자는 정의라기보다는 하나의 현상이며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가난한 이들을 배불리며 홀로 남긴 이들을 공동체로 초대하는 사회적 음식이자, 미국과 일본, 이제는 한국인들까지 개입하는 세계적 축제이다. 그 어느 곳에서나 주린 이, 내몰린 이들이 있다면 그곳에는 피자 또한 존재할 것이다. 혹시 최근 파인애플을 올리는게 피자가 맞는지를 두고 다투어 본 적 있는가? 또 혹시 끝자락이 얼마나 거뭇해야 나폴리 정통인지 따위로 가르침을 들어본 적 있는가? 피자의 그 넓은 품 안에 안겨 그저 사랑만을 느껴보길 바란다.

[1]: Dumas, A. (1843). Le corricolo. Project Gutenberg. https://www.gutenberg.org/ebooks/9262
[2]: https://it.wikipedia.org/wiki/Fonda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