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The Cookbook, Phaidon, 2018
별안간 일본 음식의 대접에 대한 작은 소동이 있었다. 한국 문화권에서 일본과 일본 요리는 어떤 존재인가? 그러한 질문은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으리라 본다. 어떤 팬도 놓치고 싶지 않은, 아니면 어떤 팬들은 반드시 붙잡고 싶은 대부분의 표현들 속에서 지금이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선택한 몇 가지 책이 있었는데, 그 중 우선해야 하는 서적은 이쪽이다. 영어권 독자를 상대로 한 일본 요리책. 이것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먼저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보자. 일본에서 요리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한 미디어를 만드는 낸시 싱글턴 하치스의 책으로, 그녀는 이미 데이비드 장의 Lucky Peach나 Food & Wine같은 유명 매체에 기고하고 다른 책도 썼다. 요리책 저자로서 첫 책도 아니다. 파이돈같은 대형 출판사와 계약하는 저자이니 아무 사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배경을 뒤로 하고서 책을 볼 때 책이 눈에 띄는 지점은 레시피의 선택이다.
전채부터 감미까지 일본 요리의 거의 모든 부분을 두루 섭렵하며 수백 개에 이르는 레시피는 저자가 전부 요리해보았으리라는 추측을 어렵게 한다. 책 쓰는 일의 스트레스를 감안하면 레시피의 숫자들이 틀린 부분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에 앞서 레시피들이 눈에 띄는 지점은 일본적이지 않은 레시피들이 착실히 실려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보통 바깥 문화의 요리에게 기대하는 지점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일본인들의 삶 속에서 존재했던 요리를 포착하고자 시도하는데, 서문에서부터 인스턴트나 편의점 식품 등에 의존하는 식습관을 걱정하는데서 책의 목적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가장 처음 볼 수 있는 레시피부터 버터가 들어가며, 디저트에 들어서서는 오븐이 일반적이지 않은 일본 가정의 사정을 언급하며 무시빵蒸しパン같은 레시피가 소개된다. 몇몇 전형적인 일본 요리들은 고전적인 제법이 아닌 간단한 버전, 책의 표현으로는 스피드スピード 레시피로 준비되기도 한다. 물론 철판 요리나 꼬치 구이같이 그것만을 위한 조리 기구가 필요한 레시피들도 수록되 있으므로, 이 책은 완전한 실전용도 완전한 감상용도 아니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온전히 읽는 책으로 어떤 교훈을 남길 것인가?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일본 요리를 정말로 좁게, 그 이미지만을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덜어낼 수 없었다. 저자가 주목한 일본 요리란, 바로 일본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먹고 살아가기 위해 만드는 모든 것을 뜻한다. 철저한 현실의 환경 속에서 주방에 들이기 어려운 고급품이나 낯선 재료 없이 레시피가 굴러가며, 정말 가정식같은 요리들만이 기록된다.
저자는 왜 이러한 책을 썼을까? 심지어 영어로? 어차피 미국이나 영국 등, 영어 문화권의 주방의 환경을 일본과는 또 다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저자가 말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저자는 레시피를 통해 어떠한 영감을 만들고자 시도했다는 점을 느꼈다. 바로 일본 요리라는 것은 환상을 채워줄 욕망의 대상이 아닌 삶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말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의 외식이나, 장인 정신이나 젠 같은 동양인 본인들도 잘 모르겠는 판타지에 대한 욕구를 채워줄 무언가로 대접받는 현실 속에서 일상의 행복, 삶 속의 지헤를 포착하고 부여잡기 위해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8년에 나온 책임에도 레시피에 대한 고찰이 정말 그대로 따라해도 좋을 만큼 충분하지 않은 부분도 있을 수 있고, 꼭 따라해보고 싶을 만큼 가슴을 뛰게 만드는 신기한 음식도 많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저술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일상의 음식을 돌아보게 만든다. 두고두고 먹을 요량으로 만드는 즈케모노 하나를 잘 만드는 것부터 우리는 요리를 왜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고, 사타 안다기디저트로 먹는 오키나와의 튀긴 빵같은 요리에서는 일본 요리 또한 세계 요리의 하나로 좋은 아이디어는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느끼고 흐물흐물하고 짜지 않은 일본 베이컨을 활용하는 레시피를 보면 에도마에의 원리로 만들어지지 않은 스시를 관광객 요리로 무시하던 지난 날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이러한 책의 의도는 마지막 단락, 셰프 레시피의 존재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다. L'Effervescence의 세컨 브랜드인 La Bonne Table의 프렌치부터 쿄료리를 기반으로 한 오마카세를 내는 Monk등의 레시피부터 소바집의 육수, 서양에서 각 나라의 셰프들에 의해 다시 해석된 일본 요리, 다시마 육수에 채소만으로 완성되는 채식 라멘부터 n/naka가 미국에 산재한 요리를 가이세키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예시들에 이르기까지. 과연 이 모든 것은 일본 요리일까라는 질문을 의도한 책의 구성은 서사의 구성이 아니지만 결말이 있다. 바로 열린 결말이다. 앞으로 일본 요리를 통해 세계를 구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몫이다.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요리를 하고 먹는다. 저자는 그러한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기록하고 또 나눈다. 치킨 스톡에 달걀물을 풀어 만드는 달걀국은 누가 봐도 중국풍 요리라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먹지 않을 것인가. 집에서 먹는 고등어 요리는 격투기 체급을 달고있는 오마카세와는 비견이 되지 않는 천한 음식이니 지갑 사정이 후질 때만 먹는 것이고 그러니까 적당히 맛없는게 당연한가. 저자가 선정한 일본 요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보고 있자면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가 무언가 해야 한다는 충동이 든다. 물론 이 책이 그 비극을 막으려고 쓴 책도 아니며, 저자는 그런 사람들은 그런대로 살라고 두고 그와는 무관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