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펙션 바이 포 시즌스 - 2021년 크리스마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가운데 Gourmandise raisonneé, 과일이나 차(茶)를 이용한 변주 등을 보여주었던 컨펙션 셰프의 마지막 작품은 흑임자였다. 홀케이크와 쁘띠 갸또 모두 시각적으로는 서울의 유행인 피에르 에르메의 작품들을 강하게 의식하지만 흑임자로 구성한 풍미로 다른 접근을 시도하였다.
홀케이크의 경우 주문제작 과정에서 옵션 타협이 가능한지라 공통의 경험을 근거로 하는 평가의 대상으로서는 무의미하다. 하지만 작은 케이크는 냉장고에 있는 것을 보이는대로 주문하므로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 있다.
부쉬 드 노엘을 의식했지만 부쉬 드 노엘과는 접근도, 내용물도 상이한 가운데 음식을 두고 마주볼 수 있는 셰프의 생각이 무엇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Christophe Felder의 책에서도 "바닥"이 있는 부쉬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으나, 이 경우에서는 바닥의 의미를 알기 어렵다. 흑임자는 셋 중 최고의 성공작이었다. 흑임자의 간한 고소한 맛이 바닥지의 구운 풍미와 간드러지게 어우러지며, 크림과의 조화, 동물성과 식물성 지방이 동시에 주는 지방 풍미의 만족감이 높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케이크가 한 입의 질감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점, 게다가 큰 경우와 달리 입안을 가득 매우는 볼륨이 아니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바닥지를 포함하여 내부의 배치까지 단지 크게 설계한 것을 작게 만든다고 모든 것이 같아지지는 않는데 고려가 부족했다는 인상이다. 망고 녹차, 히비스커스 센세이션의 경우 목표는 높이 사나 글쎄올시다. 이 역시 한 입 가득의 포만감이라는게 없는 크기임을 감안하면 적어도 곁들이는 홍차에 부딪힐 수 있을 만큼 풍미를 집약시킬 수단이 절실하다. 바닥의 존재 때문에 더더욱 집중하기 어려운 것은 아닌가 하는 괜한 원망도 들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큰 부쉬를 축소했을 때 바닥지는 2차원에서 축소하지만 상단부는 3차원-높이까지 축소하므로 바닥지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커지지 않는가?
이 호텔에서 케이크는 대부분 식탁 위의 곁들이의 운명을 벗어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다른 과자를 만들기 위해 힘쓴 부분은 오랜 시간동안 빛났다. 하지만 결국 지갑이 두터운 쪽의 말을 듣는게 우리나라의 호스피탈리티 산업이고 그들이 원하는 바는 정해져 있으므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과자가 될 수 있었을지 고민하는 것은 무력함만 느끼는 일이다. 은글슬쩍 쇼케이스에서 케이크의 비중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만들어둔 메뉴들을 바꿀 때가 되면 또 제누아즈냐 파트 수크레냐 수준의 선택지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지만, 이미 이곳은 그의 손을 떠났으니 행운을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