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펙션 바이 포 시즌스 - 복숭아 살구 타르트
파티시에가 서울에 부임하자마자 맡은 임무는 망할 망고로 뭐라도 만들어서 사람들 이목을 끄는 것이었으므로 그가 처음 만든 케이크는 당연히 망고 세례로 가득찬 망고 타르트였고, 그 다음은 망고 빙수였다.
작년까지 알렉산드르 쉐술리 있을 때에는 마지막으로 만든 제품이 흑임자였고, 그 전에도 구르망디즈 레조네와 같이 서구 디저트 업계의 최신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컨펙션의 주방은 (곧 중요한 손님들의 원성으로 인해 엉터리로 변하긴 하지만) 서울에서 나름 독자적인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으나 문화의 갈라파고스라고 할 수 있는 현지 사정으로 인하여 용두사미같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쯤되면 포 시즌스는 외국인 직원들에게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절약하면서 한국형 럭셔리 호텔의 대열에 합류할 만도 한데 바텐더와 파티셰에 전혀 예상치 않은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관광비자를 발급 재개한 대한민국으로 손님을 맞을 준비를 단단히 마쳤다.
그러나 지미 불레이에게 대한민국은 가깝지만 쉬운 나라는 아닌 느낌이다. 부임후 시간이 지났음에도 쉽게 새 메뉴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결국 프티 갸토로 낸 답은 이 살구 타르트였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공산품에 기대면서도 창작이 원활하려면 프랑스에 기원을 두는 고전만 거듭하게 되는 느낌에 이번에는 그래도 국산 생과에 도전했는데 알렉상드르가 내세우던 '첨단 프랑스'에 반대로 외려 첨단을 달리기 누구보다 즐길 것 같은 지미의 스위츠는 마치 클래식 레퍼토리나, 재즈 스탠더드를 연주하듯 예측 가능한 주제에 기대고 있다.
그가 국산 살구가 '하코트'부터 '만금'-FTA를 대비해 육성한 비교적 신종-까지 맛이 천차만별이지만 제과 등 가공을 위해 키우는 경우는 없다시피하다는 현지의 사정을 얼마나 눈치챘을지 모르겠다. 현실적으로는 서류를 내고 발주받은 제품을 테이스팅하고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하는 식으로 완성했을텐데, 맛이 그런 맛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재배량이 무려 3위로(1위는 명실공히 사과이다) 재배면적이 넓을 뿐 아니라 본래 다양한 증류주를 시작으로 가공품으로 폭넓게 소비해왔기 때문에 같은 과일이라고 해도 다루는 방식은 아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여간 이 케이크의 완성은 물론 첫째로는 이 살구라는 여름 과일 특유의 향을 어떻게 연출하냐에 달렸겠지만, 생각건대 굳이 과일을 제과의 형태로, 특히 프티 갸토와 같이 짧고 강렬한 연출을 할 때에는 그 안에서 이룰 수 있는 복잡성, 즉 기교적인 면모와 조화, 즉 기술적인 면모를 고루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살구 타르트의 가장 흔한 형태는 Tarte abricot amande의 경우 파트와 아망드에서 캐러멜, 아몬드(견과) 향이 차례로 이어지며 살구와 닿아야 한다. 살구씨가 썩 아몬드와 유사한 맛 프로필을 보여주기에 둘의 조합은 마치 타고난 인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미의 타르트는 미세한 신맛이 느껴지는 샹티의 비중이 상당하여 살구 타르트치고는 사치스러운 느낌인데-살구가 주로 나는 지역은..랑그독이다!- 마멀레이드에 허브 종류 무언가를 넣었는지 전반적으로 화사하고 가벼운 인상을 강조하는 느낌이 강했다. 바싹 구운 파트와 역시 잘 볶은 아몬드로 이어지는 식으로 조화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보다는, 하여간 과일 인심이 좋은 인상에 치우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콘래드에 있을 때와는 방향도 성격도 그리고 만드는 데 드는 품도 다른 케이크를 아주 천천히 내놓고 있는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밀푀유나 를리지외즈를 통해 '설탕과 크림'의 셰프의 모습을 잠시 보여주기도 했지만 결국 과일 타르트 종류만 연타로 내며 초창기 포 시즌스의 전철을 밟지는 않나 우려를 낳는다. 아주 클래식 프렌치로 꺾기로 했다면 초콜릿이나 버터크림 등 다른 방향성도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쇼케이스의 구성에서도, 제품의 맛에서도 아직 뚜렷한 주관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유는 대충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나는 전임자와 같이 갈 길을 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행사가 많은 호텔이기에 여러가지 만들 기회야 많지만 그래도 전문 직업인으로서 자존심을 보여주는 곳은 이 작은 쇼케이스여야 하지 않겠는가.
- 시릴 리냑은 타르트 아망드에 피스타치오를 몰래 섞어쓰고 크리스토퍼 미할락은 카라멜리제 뉘앙스의 날을 세우는 식으로 연출하곤 했다. 이유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