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트브로스, 라이프 페일 에일 문수트
언제나 독자에게 접근성 없는 음식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있으면서 각종 소매점의 뜨거운 감자인 "라이프" 시리즈를 다루겠다고? 다행히도 서울의 탭하우스에서는 언제나 마실 수 있다. 제품의 특성상 유통 채널을 한 번이라도 덜 거치는 탭하우스쪽을 오히려 권하고 싶을 정도. 경쟁을 뚫고 얻었다는 소유의 만족감과 캔 라벨을 촬영하는 즐거움이 없다는 점이 발목을 잡지만 다행히도 이 사이트는 그런 욕구를 위한 공간은 아니다.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양파다. 시트라홉에서 드러나는 캐릭터로 과연 첫 몇 모금을 양파가 지배하고 있었다. 양파향은 흔히 뉴잉글랜드식으로 불리는, 곡물의 단백질 등 잔여물들이 가득해 뿌연 맥주에 어울리는 단맛과 달리 약간의 매콤함이 있어 공격적으로 느껴진다(이 향에 대한 표현이 onion/garlic-y인 이유가 있다). 예외가 존재하지만 보편적인 시각에서 양조의 실패작, 즉 이취(off-flavor)다. 신맛과 단맛 사이를 연상케 하는 향들이 덕목인 맥주에서 이러한 향이 즐거울 자리는 없다. 맥즙에서 나오는 DMS-양파향인지, 시트라에서 나오는 DM"T"S-양파향인지까지는 구분할 길이 없으나 경험에 긍정적이지 않았다. savory를 내세우며 이 향을 포섭하려는 시도들이 있지만 후술할 이유로 해당사항 없다고 본다.
다음으로는 맛의 비어있음이다(bland). 캔과 탭, 두 가지 방식으로 마셨지만 인상에 큰 차이는 없었다. 이취를 감안하더라도 양조과정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향은 느낄 수 있었지만 팔레트에서 그 여운은 이어지기는 커녕 잘렸다. 팔레트의 자극의 총량 자체가 부족하여 감각이 혼란에 빠진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안줏거리들을 곁들일 때에는 혀가 피로해져 맛을 느끼기 어려운 단계까지 진입했다.
"헤디 토퍼" 이후로 이제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구스 아일랜드는 대형마트의 구석에서 썩어가고 있으며 크래프트 주류는 이제 한국에서도 여느 사업가들이나 한 번은 눈길을 줄만한 아이템이 되었는데, 과연 이렇게 별천지만큼 깔린 맥주 양조장들이 향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동안 크래프트브로스의 "라이프" 시리즈는 맥주의 맛이나 양조와는 전혀 무관한, 하지만 사람들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라벨 디자인을 통해 맥주 스노브들을 배불려왔다. 이제는 크래프트브로스를 마시는 것이 맥주 애호가로 자칭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며, 여느 소매점에서나 불꽃튀는 경쟁이 일어난다(아니면 그들을 구워삶으라-충분한 재고처리로!). 그러나 나는 그 맛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 드라이호핑이라는 방법론이 크래프트 맥주계에서 떠오른 이유는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데, 그에 비추어 즐거움이 적다면 해답은 어디에 있는가? 혹은 이것이 이 공장이 추구하는 새로운 그림인가? 내 기억속에는 공장이 더 커졌다는 소식, 마트와 편의점 곳곳에 굴러다니는 함정들, 그리고 이제는 영화 포스터로 캔을 감싼다는 소식과 같은 것들만이 남았다. 아, 양파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