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 맥주 - 이 시대의 맥주

AB인베브의 맥주, 콜라보 제품, 심지어는 그냥 라거. 이런 맥주가 맛있기를 기대하면 무언가 죄 짓는 게 아닐까? 하지만 감히 그런 생각을 한다. 직업정신으로라도 맛본다. 편의점 네 캔 만원 맥주는 현재 맥주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전쟁터이므로, 종군기자를 파견해야 마땅하다. 사람들이 마주하는 맥주는 바틀샵의 예약분 보관용 냉장고가 아니라 편의점에 있다.

자츠 홉이 빚어내는 전형적인 라거의 그림을 갖춘 가운데 이취가 없이 흠 잡을데 없는 마우스필이 돋보인다. 탄산의 밀도와 조성, 홉의 쓴맛에 맞서는 조화로운 단맛이 더 바랄 것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거기에 반 발짝 더 나아가는 지점은 홉의 향이다. 씁쓰름한 고전적인 홉향 뿐 아니라 미국의 크래프트 계통의 홉, 4C 따위의 시트러스나 과실 등을 떠올리게 하는 힌트가 꽂힌다. 나는 그 순간 4캔 만원 맥주 세상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는 희망마져 보았다. 이 맥주는 편의점 맥주의 지평까지 확장할 수 있는 힘이 있구나.

잘 만든 페일 라거에 크래프트 맥주의 힌트를 첨가한 영리하고도 잘 만든 맥주로, 4캔 만원으로 편의점 맥주라는 무대에 잘 어울리면서도 빛나는 지점 또한 있다. 비록 콜라보레이션을 해야 잘 팔린다는 내부 검토 결과에 따라 불필요한 콜라보 딱지를 달고있기는 하지만, 잘 만든 맥주의 경험을 보급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고 크래프트 맥주 씬이 이루어낸 성과를 반영하여 맛보기에도 사용하기 좋다. 4캔 만원 맥주이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묽지 않고, 엉터리 상표나 가격대에서는 어림 없는 부가물에 굳이 의존하지도 않고 물, 맥아, 홉의 맛으로 완성하여 일상에도 어울린다. 이런 음식이 자꾸 나와야 한다. 소량 생산과 고가 정책에 기대어 완벽이나 유머 감각으로 중무장하는 대신, 대량 생산과 철저한 QC, 그리고 잘 빚어진 고전적 요리의 황금률을 따라 만들어져 일상에 녹아드는 음식. '캬 맥주' 때문에라도 가끔은 세븐일레븐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