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broisie - 2024년 봄

L'Ambroisie - 2024년 봄

오로지 이 레스토랑을 다루기 위해 여행 일정을 잡았고,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오로지 계획이라고는 이 식당을 두 번 간다, 그것 뿐이었다.

방문 전에

랑부아지의 예약은 전화 또는 웹사이트를 통해 가능하다. 이메일로 자동 알림이 오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확인 절차는 없다.

요리

랑부아지는 이 시대에 알라카르트 서비스를 고집하는 거의 유일한 레스토랑이다. 모두가 사전 구성된 코스 메뉴의 이익을 한껏 누리고 있음에도 랑부아지는 그 모습을 고집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같은 것을 제안하는데 코스로 구성해봤자 그냥 세트 메뉴 할인이라는 의미밖에는 없다. 물론, 같은 글자가 써있다고 해서 항상 같은 요리를 맛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후술).

시작은 반드시 랑부아지의 샴페인으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두 날 모두 해당 샴페인을 오픈하지 못했다. 잔으로 제공하는 샴페인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메인까지 샴페인으로 끌고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첫째 날에는 잔 와인, 둘째 날에는 병 와인을 곁들였다.

Œuf à la coque

이런 요리는 정책에 따라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지만, 언급 정도는 하고 넘어가자. 랑부아지의 환대를 드러내는 껍데기째로 익혀낸 달걀은 에르베 디스 이전의 고집스러운 달걀 텍스처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절묘하게 익혀낸 노른자, 그리고 풍성한 사바용과 캐비어가 원초적인 만족감을 준다. 요즘 시대의 정교함보다는 20세기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요리이다(실제로 온도도 썩 따뜻하다).

시골풍으로 구워내는 빵 역시 극적인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지만, 무엇보다도 매우 두텁게 발달한 껍질과 넉넉한 크기가 빵의 제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레스토랑의 요리가 조금씩만 작았다면 한 덩이를 해치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Feuillantine de langoustines aux graines de sésame, sauce au curry

커리 소스와 시금치, 두 겹의 참깨 푀이유틴과 올리브유로 익힌 뉘앙스의 랑구스틴.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뽐내는 이 요리는 베르나르 파코의 요리 인생을 상징하는 요리로 자리잡았다.

먼저 소스는 크림과 약간의 버터로만 졸인 것으로 맑지는 않지만 질감은 묽은 느낌이다. 이 요리만큼은 이틀 연속으로 맛보았고, 날에 따른 편차가 느껴질 만큼 소스는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돋보이는 개성은 큐민보다도 터메릭이 앞서는 향신료의 배합. 향신료를 강하게 볶아댄 느낌이 전혀 없어 화사하게 다가오면서도 팔레트에 거의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시금치의 단맛, 그리고 참깨 푀이유틴과 랑구스틴를 부드럽게 드러낸다.

기본적으로 랑구스틴이라는 재료는 제대로 조리했을 때 아름다운 질감과 갑각류 특유의 단맛에 약간의 갑각류 향이 더해지는 재료인데 여기에 위아래의 푀이유틴은 바스러지는 질감의 대비를 더함과 동시에 깨를 부수어 씹을 때의 그윽한 검은빛 뉘앙스를 더한다. 한국식의 강한 불에 볶아댄 깨처럼 단순한 향이 강하게 피어오르지는 않지만, 몇 번 되씹을 가치가 있는 랑구스틴을 먹다 보면 자연스레 너티한 뉘앙스가 입안 전체를 즐겁게 감싸고, 이는 다시 가벼운 터메릭 뉘앙스로 후각을 즐겁게 만든다. 프랑스는 커녕 동남아시아 여느 곳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없을 듯한 독특한 요리이다. 다른 위대한 요리들을 넘어 이 요리가 이 레스토랑의 상징이 된 것은 순서상 가장 먼저 나와서이기도 하겠지만, 베르나르 파코의 독창성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 보아도 독창적이고, 여전히 감히 따라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역사적인 요리이다.

Escalopines de bar à l’émincé d’artichaut, nage au caviar Kristal

본래 껍질을 가운데에 꽃처럼 올려내는 것이 이 요리의 플레이팅의 정수가 아닌가 싶지만, 그런 것을 따지고 들기에 우리는 이 요리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먼저 이름이다. 에스칼로핀이라고 하는데, escalope라고 하면 본래 얇게 떠낸 고기를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것을 생선 요리에 접목하여 필렛을 떠낸 요리를 이렇게 호명하기 시작한 현대적 기원은 Troisgros 형제에게 있다. 그들의 위대한 요리, 연어와 소렐이라 불리는 그 요리의 본명이 바로 L’escalope de Saumon à l’oseille이다. 완벽히 평평하게 떠낸 연어 필렛으로 세계를 흔들어보고자 했던 젊은 요리사들의 야망이 느껴진다. 이름에서는 이러한 흔적을 느끼면서, 전체적인 요리의 그림에서는 Jacques Pic의 Le bar de ligne au caviar를 떠올린다. 1971년 자크 픽이 고안해낸 농어와 소스 샹파뉴 그리고 넉넉하게 올린 캐비어의 조합은 베르나르 파코에게 영감을 주었고, 파코는 섬세한 농어와 강한 감칠맛의 캐비어를 겹치면서도 자신만의 색으로 완전한 재탄생을 그려낸다. 차갑고 신선한 캐비어는 크림보다 버터가 많은 듯한 소스에서 따뜻하게 달궈져 한껏 끌어오른 감칠맛과 풍성한 향을 뽐내고, 샹파뉴의 신맛 대신 졸아든 베르무트의 힌트가 강렬한 캐비어를 탐닉할 수 있게 만들고 그 거대한 그림을 두껍게 떠낸 농어가 감싸안는다. 이 요리를 다루는 한국어 문헌들은 매우 실망스러운 기록들만을 전하는데(이 블로그는 바로 그런 점이 싫어서 만든 것이기도 하다), 약간의 사랑만 있다면 이 요리를 두고 고작해야 시각적 효과 따위의 이야기만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살짝 따스해진 캐비어는 흔히 말하는 익숙한 재료의 낯선 모습이라고 할까, 자랑하는 짠맛과 감칠맛에 더불어 약간의 향까지 피워내는데 그것이 바탕에 깔린 약간의 베르무트 뉘앙스와 아름답게 어울린다. 브르타뉴 농어는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서 괜찮은 상태를 보여주지만 아무래도 생태적인 배경상 늦여름에서 가을 넘어갈 때가 피나클이라고 보는데, 봄 메뉴에서 만나게 된 것은 유일하게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기억에 암포라를 섞어 쓰는 생산자였기 때문에 찾아 마시는 와인은 아니지만, 평범한 빈티지와 적절한 시간이 만나 감히 골라볼 기회가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 좋은 딸기 느낌부터 약간의 허브향과 버섯 뉘앙스까지 고르게 잘 발달된 인상을 주면서도 비단같은 질감이 요리와 멋드러지게 어울렸다. 무엇보다도 그 파트너를 잘 만났는데,

Navarin de homard bleu, petits légumes printaniers au romarin

7월까지 2024년의 모든 경험을 거쳐 내게 가장 큰 감동과 만족을 준 요리는 이 나바랭이었다. 나바랭 앙 오마르가 아닌 나바랭 드 오마르. 이 위대한 요리는 맛을 넘어서 프랑스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각별한 인상을 남긴다.

미안하지만, 이곳의 요리를 두고 단지 "랍스터 요리"로 말하는 분들은 오늘만큼은 나의 손님이 아니다. 다행히도 여기까지 함께해주신 독자라면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더라도 나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이 요리의 전부에 대해 말해보자. 지금까지는 항상 독자는 맛을 알고 있다-Iura novit curia가 아닌 Lector novit gustum-고 생각하지만 이 요리에 대해서만큼은 여러분이 알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가진 것을 쏟아내겠다. 먼저 이름이다. 나바랭Navarin이다. 에스코피에와 전설의 그 책을 공동집필한 Philéas Gilbert는 그리스 독립전쟁의 나바리노 해전이 이 요리의 유래가 된다며, 대승을 거둔 후 당시 전장이었던 터키에서 수급한 식재료로 흔한 라타Rata를 야채와 고기를 잔뜩 넣고 풍성하게 만들어 제공한 승전 기념 식사가 파리로 전해져 유행을 탔다고 전한다. 또 하나의 단순한 기원은 순무(Navet)에서 유래한 요리라는 점이다. 순무를 넣고 푹 끓이는 스튜는 별다른 이름 없이 프랑스 남부에서 오래도록 사랑받은 서민 요리이며, 이것이 근대에 들어 정형화된 것이 나바랭이라는 설명이다.

둘 중 명확한 정답은 없다. 얼마 전 작고한 요리계의 전설인 르 디벨렉과 프레데릭 라퐁을 위한 요리책을 공동집필하기도 했던 Céline Vence의 기록[1]에 의하면 19세기에도 이 요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쟁이 여전했다고 한다. 불어를 읽을 줄 아시는 독자라면 그 외의 논쟁에도 관심이 갈 것이다. 먼저 나바랭에 송아지고기(veau)가 들어갈 수는 있어도 기본은 양고기(mouton)가 들어가는 것이며, 야채에 대해서는 일관적이지 않다고 한다. 순무가 아니라 감자가 필수라고 하는 쪽도 있는가 하면, 지금의 Le Pré Catelan 자리에 있던 당시 파리 최고의 레스토랑인 Paillard의 요리사는 순무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 정답이건, 나바랭의 뿌리는 서민적이고 토속적인 느낌에 있다는 점과 19세기를 풍미하며 발전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에스코피에는 1934년 Ma Cuisine에서 나바랭 오 라구 드 무통과 나바랭 프린타니에라는 두 요리를 기록하는데, 앞의 19세기식 양고기 나바랭이 퀴진 부르주아를 상징한다면 뒤의 요리, 봄의 나바랭은 오트 퀴진[2]의 형식으로 자리잡아 봄을 상징하는 요리가 된다. 특히 1960년대 이후로는 나바랭 드 무통이 아닌 다뉴(d'agneau)로 어린 양고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굳어진다. 오늘날에는 기술의 발달로 나바랭의 계절성을 상징하는 완두콩과 봄 당근을 사시사철 구할 수 있지만, 그 레시피 하나를 두고 단순한 요리가 오트 퀴진에 오르기 위해 계절성을 입고 재료의 변화를 거치며 다듬어진 레시피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이쯤 되면 독자들이 의구심을 품으리라. 어린 양이라고? 위 사진을 다시 보시라. 이 나바랭은 분명 프랑스의 자랑, 오마르 블뢰로 만들어졌다.

그렇다. 거의 모든 경우 양고기 요리로 받아들여진 이 나바랭이라는 요리가 갑각류가 된 뿌리는 누벨 퀴진 시대의 거목, Troisgrois의 형제 그 중에서도 Pierre Troisgros에게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이들은 처음으로 양이 아닌 랍스터를 사용한 나바랭을 선보였다. 미르푸아와 코냑을 졸여 단맛을 당겨오기 시작한 다음 생선 육수에 토마토, 부케 가르니로 화사한 토마토 스프의 느낌을 그려내는 트루아그로의 나바랭은 시대를 풍미하는 요리로 자리잡았다.


  1. Vence, C., Tudela, D. (1978). Encyclopédie Hachette de la cuisine d'hier et d'aujourd'hui. Hachette. ↩︎

  2. 둘의 구분은 이 글을 참조하라. ↩︎

Michel Guérard의 Navarin en Homard, Vogue

이 요리는 1970년대~1980년대 혁신의 상징 중 하나가 되면서 당시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미셸 게라르의 요리 기록 또한 그 연장선이며, 1983년 프랑수아 미테랑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트루아그로가 직접 미테랑과 덩샤오핑에게 이 바닷가재 나바랭을 선보이기도 했다.[1] 베르나르 파코 역시 이러한 시대의 영향을 받아 랍스터 나바랭이라는 주제에 도전을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는 앞선 에스코피에 시대의 봄의 나바랭을 떠올리게 하는 감자와 당근, 완두콩에 로즈마리로 화사한 계절의 그림을 완벽하게 그려내면서 착실하게 볶아 정수를 뽑아낸 가재의 껍데기의 향긋함과 야채의 단맛을 훌륭하게 어울려냈다. 위대한 영감에 조화의 참신함과 균형, 맛의 집중도와 재료를 사용하는 이유까지 더해져 더 이상 뺄 수도 더할 수도 없는 완벽의 경지에 이르고 말았다. 그 맛의 깊이와 넓이에 비하면 너무나도 단순하고 정직하게 만들어지지만, 풍성함과 섬세함을 고루 갖춘, 위대한 요리다. 가재의 단맛에서 야채의 단맛으로, 로즈마리에서 토마토로, 다시 부케 가르니의 힌트로. 프랑스 요리의 전통과 누벨 퀴진의 혁신을 양손에 붙잡고 자신만의 세계를 활짝 열어젖힌다.


  1. Steffanini, L. (2016). À la table des diplomates. L'Iconoclaste. ↩︎

Meringue moelleuse aux fraises des bois, chantilly

딸기와 산딸기, 카시스라는 세 종의 베리를 사용하면서도 특히 산딸기를 내세우는 이 디저트는 산딸기 과육의 풍성한 시각적 만족감보다도 아래에 깔린 쿨리와 소스의 집중도에 반할만 했다. 붉은 과실의 계절에 맛볼 수 있는 전형적인 만족을 선사하는데,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Tarte fine sablée au cacao amer, crème glacée à la vanille Bourbon

랑부아지의 시작을 상징하는 요리가 랑구스틴이라면, 마지막을 상징하는 요리는 바로 이 타르트다. 밀도는 있지만 점도는 없는 옛방식 느낌의 아이스크림은 이 접시에서만큼은 초콜릿 타르트의 위대함을 감싸는 용도의 느낌이 더욱 적절하다. 크림이 더해져 유지방의 풍성함은 넉넉하지만 질감이 그 자체만을 즐기기에는 충분치 않다. 하지만 부르봉 바닐라의 검은빛은 타르트 사블레의 커피 뉘앙스와 만나 장관을 빚어낸다. 앞선 머랭과 같이 디저트에서는 복잡하거나 결이 다양한 느낌을 내지 않지만, 초콜릿-커피-바닐라로 한결같은 색을 이어내면서도 각자가 가진 조금씩의 개성을 더해 갈색빛에서 검은빛으로 이어지는 감각의 전체를 모두 느끼는 정서적 만족감을 준다. 디저트의 역할과 쓰임새에 대한 요리사의 확고한 철학이 돋보인다.


Feuillantine de langoustines aux graines de sésame, sauce au curry

이 날 랑구스틴에서 같은 얼개의 같은 요리임에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흔히 사람들은 이런 편차를 두고 폼이 어쩌니, 고점과 저점이 어쩌니 하는 스포츠 용어로 이를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짚고 싶은 것은 그것은 단순히 공수하는 재료의 편차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며, 하물며 여러 명이 동시에 일하는 주방에서 책임자의 건강 상태나 컨디션 따위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스포츠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고점과 저점이라는 것은 세간의 평가일 뿐, 사람의 내심을 읽어주는 키워드는 아니다. 요리의 과정은 난수 추출이 아니며, 결과의 차이에는 원인이 있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의 지향점, 밝은 카레와 어두운 깨, 시금치-푀이유틴-랑구스틴으로 이어지는 질감의 삼중주가 건재했기 때문에 또 하나의 이름으로 남았다.

아래의 푀이유틴은 시간이 지나며 시금치의 수분으로 인해 젖어들기 시작하는 것에 유의하라.

Darne de turbot rôtie aux asperges, morilles et noix de muscade

정겨운 느낌으로 조리한 모렐과 제철의 끝을 달리고 있는 아스파라거스, 그리고 사순절의 왕으로 불리는 바다의 제왕 대문짝넙치를 다른으로 큼지막하게 썰어낸 스타일은 랑부아지의 또 하나의 자랑이다. 역사를 톺아보면 곁들이는 야채나 소스는 몇 차례 바뀌지만(아마도 계절 때문에) 넙치를 익히는 스타일은 지켜오고 있는데, 두껍게 썰어 특별한 기교 없이 불에 대한 감각만으로 완성한 듯한 텍스처에는 신비로움은 없지만 아름다움은 있다. 단단한 육질과 기름진 살맛을 숨김 없이 드러내면서, 무심하게 올린 듯한 몇 점의 살점에서는 그 생명력의 또다른 측면까지 맛본다(어느 쪽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인지 센스가 좋은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스파라거스의 우아한 단맛, 올바르게 피어오르는 모렐의 향에 전반적으로 당겨오는 향신의 느낌은 넙치를 탐닉할 이유를 보여준다. 본래 더 큰 넙치를 사용해 2명이 나눠먹는 요리지만, 작은 넙치로도 솜씨를 드러내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Noix de ris de veau à la grenobloise, asperges vertes, sabayon aux câpres

거의 비슷한 바이브를 지닌 이 요리는 기드 미슐랭에서도 언급하는 육류 부문의 상징과도 같은데, 육중한 두께를 단순한 팬 프라이만으로 익히되 팬의 온도를 높지 않게 유지해 크러스트는 최대한 단단하지 않게 만들면서도, 속은 아슬아슬하게 익어 마치 요즈음의 팬 프라이들이 대비를 강하게 보정한 사진이라면 이 요리는 물감으로만 그린 수채화의 인상을 준다. 흔히 생선과 사용되는 그르노브루아-몇 년동안 모수 서울의 고등어 소스가 바로 그루노브루아를 응용한 것이었다-를 곁들여 내는데 케이퍼의 복합적인 느낌과 시트러스 뉘앙스가 흉선의 우유같은 느낌을 절묘하게 살려낸다. 근 몇 년 동안 흉선 요리라고 하면 흉선의 고기같은 느낌을 살려내는 요리를 주로 접했기에, 흉선의 지방이 주는 충만함을 소스의 그릇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빛내는 소스의 사용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재료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런 방식의 요리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다행히도 이 재료를 사랑했다.

Melba de fruits rouges et coulis, crème Chantilly

페슈 멜바를 레퍼런싱하는 이 디저트는 적색 베리류 과실만을 노골적으로 그려내는데, 각각의 구성은 앞선 두 디저트에서 보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조화로 또 다른 느낌을 빚어낸다. 껍질이 갈라지며 터지는 카시스의 단맛, 따라오는 딸기의 신맛은 제과사의 주관과 개성을 내려놓고 계절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정물화같은 매력을 뽐낸다.


총평: 호사가들은 랑부아지의 요리를 두고 클래식하다(본지의 언어로 다듬자면 전형적이다)고 표현하지만 랑부아지의 요리에 흐르는 DNA는 주관, 혁신 그리고 상상력이라고 느낀다.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여러 요리사들과 교감하며 얻은 풍성한 영감, 재료의 본질적인 매력을 꿰뚫어보는 선 굵은 직관 그리고 각각의 서비스에 대한 뚜렷한 주관 등, 랑부아지는 단순히 전통을 끓여먹는 곳과는 정 반대의 위치에 있다. 다만 20세기 후반부터 서양 요리가 만들어낸 놀라운 기술적 발전의 맥락 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이 레스토랑이 낡았다는 한심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랑부아지는 프랑스 요리의 발전상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이자, 좋은 재료로 좋은 요리를 만들겠다는 위대한 고집불통의 모습을 하루하루 다시 만들어가고 있는 전설이다. 다만 여느 오트 퀴진이 그렇듯이, 모두를 위한 요리는 아니다. 프랑스 요리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곳의 요리는 권하지 않겠다(이해니 지식이니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오만함은 사절이다). 또한 소유욕에 넘치는 사람이라면 몇몇 요리 빼고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프랑스 요리의 방대한 레퍼토리를 사용하면서도 그 밖으로 새는 일이 거의 없고, 아름다운 재료를 쓰지만 과장해서 드러내는 일이 없어 물욕을 채우고자 온 사람의 배에는 실망감이 들이찰 것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밑바닥 중의 밑바닥에서 시작했던 어린 조리사 베르나르 파코가 산전수전 다 겪는 와중에도 요리에 대한 열정을 놓치 않으며 끝내 만들어낸 것들, 리옹과 파리, 퀴진 부르주아와 누벨 퀴진, 68혁명의 전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경험으로 녹여낸 요리, 랑부아지다. 외지니 브라지에의 단순함과 신선함, 클로드 페이로의 감성을 이어받은 파코는 두 스승의 위대한 계보를 잇는다. 그의 요리에도 이름을 붙여준다면 양창수 선생의 표현을 빌려 "끝까지 생각된 요리"라고 하고 싶다. 그 존재는 이미 베르나르 파코 본인의 손을 떠나도 눈부시게 빛날 만큼 단단한 것이 되었다.

분위기: n/a

서비스: n/a

음료: 프랑스의 위대한 생산자 위주, 놀라움은 많지 않고 있어야 할 것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가격: 와인 포함 1인당 500~600 EUR, 굳이굳이 아끼고 아낀다면 400 EUR 아래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지만 이런 레스토랑에서 예산을 고민한다는 것은 또 다른 낭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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