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개론, 광문각, 2015
식음료분야만큼 개론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 있을까. 사실 많은 서적이 본격적인 논의에 앞선 개론서에 머무르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마저도 읽지 않는다. 대신 적당히 쓰다 만 블로그 포스팅들이 입문, 개론의 역할을 빼앗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같은 곳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정보를 복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제대로 된 범용성 좋은 교재와 교수법이 없는데서 문제가 있다. 조리학과와 요리학원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이 주방으로 향하는 현실 속에서, 객이 지배하는-적어도 그렇게 믿어지는- 외식의 공간 속에서 공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식의 저변은 극단적으로 얇다. 따라서 빠르게 필수적인 내용을 흡수하고 보아야 할텐데, 그런 방향을 지도할만한 진정한 개론은 마주한 적이 없다. 예컨대 식문화에 대한 어떤 평가의 역사를 다루기 위해 장 앙뗄름 브리야-사바랭의 <미식예찬>부터 <고 미요>의 초기 연재분을 직접 읽을 수는 없으므로, 비교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정보, 예컨대 <미식예찬>의 원제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생리학> 시리즈와 엮여있다는 사실이라거나 <고 미요>의 누벨 퀴진이 누벨바그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추측 따위는 거르되 브리야-사바랭이 "치즈 없는 디저트는 눈 없는 미녀"라고 말했는데 서울의 프렌치 레스토랑에는 치즈가 실종된 현실, 채소가 지닌 고유의 개성을 극단적으로 이끌어낸 미셸 브라의 가르구이유가 가지는 의의 따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누군가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맥주개론」은 진정한 개론서이다. 맥주의 거의 모든 부분을 다룬다. 심지어는 관능 평가까지도 다룬다. 물론 개론서인만큼 테이스팅 훈련까지 시켜주지는 않지만, 정말 맥주의 가능한 전부를 고작 500페이지 안에 우겨넣는데 많은 부분 성공했다. 맥주라는 술을, 식물과 미생물이 만나 빚어내는 필연적 행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500쪽은 숨쉴틈 없이 몰아치는 재미의 폭격과도 같다. 실무자를 위한 책이지만 오히려 양조실무에 뛰어들 생각이 없는 맥주 애호가에게 일독을 권한다. 맛은 취향이라는 말로 뭉갤 수 없는 지혜의 거산을 오르라. 어떤 맥주에게는 취향이라는 말이 어쨰서 불가능한가에 대해 이해하고, 어떤 맥주가 왜 좋은 맥주인지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세상에는 UNTAPPD 점수 이상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면 열어 보아야 할 책이며, 이 책의 내용을 숙지하는 것을 조건으로 맥주 애호가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 disclaimer : 조심해야 할 것이, 이 책은 "개론서"이다. 많은 식품공학 분야 교재들이 그렇듯이 경전이 아니며 그럴 생각으로 쓰인 책은 더더욱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