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ma, Magic Rock, IPA
캔입일이 썩 지난 느낌이지만, 다행히도 기본적인 제품의 특징은 감지가 가능했다. 물렁하다고 할 정도의 편한 질감, 전형적인 시트라 홉의 캐릭터중에서도 신 향기와 이어지는 과실 뉘앙스가 풍성하다.
말도안되게 맛있다, 이런 느낌은 아니지만 놀라운 것 없이 만족을 준다는 점에서 높이 산다. 한 때 홉의 향을 풍성하게, 그에 따라 홉의 쓴맛 또한 폭발적인 맥주들이 이른바 수입맥주라는 이름의 이미지를 꿰찬 시절이 있었지만, 오늘날 다양한 호핑 기법들을 통해 쓴맛은 조절하면서 홉의 매력적인 향들을 채취하는 방향 또한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 비교적 저온에서의 추출을 시도하거나 휘젓는 등의 방법으로 물리적인 힘을 개입시키고자 시도하는 등, 열을 가하지 않고 홉향을 뽑아내기 위한 공법들은 이미 여러 가지가 소개되어있고 그 효과로 인한 결과물은 이미 우리의 기호 안에 들어앉았다. 이 맥주는 그 경향성을 뚜렷히 내비치고 있다.
다들 별 관심은 없지만 글루텐 프리라는 점이 쓰여있는데 이 또한 기술의 산물이다. 양조 과정에서 알코올이나 풍미 등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글루텐 형성을 막는 특수 효소 투입의 결과물이다.
오늘날 크래프트 맥주 씬의 즐거움은 초기에 비해 여러모로 정체된 느낌도 있지만, 좋은 맥주를 만날 때마다 우리는 그 정신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통제하고 조절하는 즐거움, 그리고 이해하는 즐거움이 마시는 즐거움에 포함되어 있다. 슬픈 점은 이런 멀쩡한 맥주가 700원, 900원 떨이로 재고털이로 떨어져 나간 끝에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형 마트의 주류 코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